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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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무 살.

  청소년기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는 시기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물학적으로는 엄연한 성인이지만 내면에서는 아직도 어린 스스로와 싸우고 성장하는 시기가 아닐까. 사회에 한 발을 담그고 나머지 한 발은 아직도 주춤대며 미적미적 거리는 시기. 여전히 방황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시기. 이 책에는 그런 스무 살의 주인공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떤 사건 사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책 의미 있게 읽힌다.




  스무 살의 치즈는 대학가기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아르바이트 인생을 선택한다. 프리터. 엄마와도 떨어져 살게 되면서 치즈는 도쿄에 있는 깅코 씨 댁에 머물게 된다. 깅코 씨는 엄마의 먼 친척뻘 되는 할머니다. 치즈와 깅코 씨는 그렇게 50년이라는 시간적, 물리적 갭을 공유하며 함께 살기를 시작한다. 그다지 시끌벅적하지도 않은, 그다지 활기 넘치지도 않은, 쥐죽은 듯 조용하게 둘은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며 조금씩 정이라는 것을 나누어 간다. 깅코 씨는 치즈처럼 점점 젊어지는 것 같고, 치즈는 깅코 씨처럼 점점 ‘할머니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깅코 할머니는 눈에 띄게 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때로는 설거지도 며칠씩 미루기 일쑤고 청소도 안할 때가 많으며, 댄스 학원 할아버지와 귀여운 사랑을 하기도 하는 어린이 같기도 하다. 다만, 치즈가 힘들어할 때면 슬쩍 슬쩍 한 마디씩을 던지는데 그것들이 치즈의 마음을 울리고 독자의 마음을 울리며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해 준다.




  <혼자 있기 좋은 날>의 주인공 치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족에게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아 엄마와도 왠지 모르게 서먹서먹하고, 연인이 생겨도 어느 샌가 보면 뻥 차여있기 일쑤다. 그들은 치즈에게 이별을 고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곧 헤어질 것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변심했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변화된 행동들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안 봐도 그리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 간다. 사랑과 이별이 어쩌면 그렇게 간단할 수 있는 건지, 치즈는 납득되지 않고 견디기가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미 뒤틀린 관계를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치즈에게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너무나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마 모든 것이 새롭고 동시에 어렵게 느껴지는 스무 살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치즈를 통해 완벽히 그려낸 것이리라. 한편 치즈에게는 조금은 유별난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사람들의 소소한 물건들을 ‘회수하는 일’. 그리고 나중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다. 비싼 물건들을 슬쩍 하는 게 아니니까 절대 ‘훔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는 하지만, 때때로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치즈는 회수한 물건들과 함께 혼자 있는 날을 즐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혼자 있는 날을 즐기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세상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만을 끌어안고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제대로 된 생활 같은 것 따위는 자신에게는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치즈는 일찌감치 자신에게 말한다. 낙심해 있는,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치즈에게 할머니는 말해준다. 세상에는 안도 없고 밖도 없다고. 세상은 하나뿐이라고 말이다. 할머니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가며 치즈는 깅코 할머니와 사 계절을 보낸 후, 사회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OL’이 되어. 이제 치즈에게도 살아갈 이유 같은 것이 생긴 거겠지.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은 일찌감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치즈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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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에 12kg 빼주는 살잡이 까망콩
정주영 지음, 채기원 감수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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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이어트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점점 신경 쓰게 되는 부분이 바로 몸매관리가 아닐까 싶다. 몸집이 커다란 사람들을 보면 돼지라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고,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당사자에게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살아가기에 다이어트는 평생 동안 안고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점점 더 마른 체형을 선호하게 되고, 스스로의 몸매에 대한 욕심은 점점 더 끝을 몰라 간다. 그에 따라 각종 다이어트 식품부터 약품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다이어트 시장에 넘치고 넘친다. 적정한 체중은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거지만, 요즘 들어 점점 비만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어린 아이들의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비만도 병이다. 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점점 더 막기가 힘들어진다.




  이 책의 저자 정주영은 우선 남자다. 100킬로그램이라는 거구로 살아가면서 온갖 다이어트를 다 시도해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다이어트 방법이라면 모두 이 저자가 해본 것들이었다. 물론 모두 실패에 그쳤지만. 체중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로 그는 상처도 많이 받았을 테고,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살기도까지 했었다는 저자는 치료 목적으로 ‘까망콩’을 만났고, 단 넉 달 만에 몸무게가 반절로 줄어들었다. 체중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고질병처럼 안고 있었던 여드름도 정말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밝아졌다. 엄마도 몰라봤을 만큼 그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했고, 이제 그는 지난 숱한 시간동안 도저히 누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마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살잡이 까망콩>은 살을 잡아주는 까망콩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만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엔가 문제점이 있다. 식습관에서도 그렇고 움직임 패턴이라든지 습관이라든지 날씬한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누구든 ‘생각보다’ 쉽게 날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있다. 죽도록 굶지 않아도 되고, 쓰러질 정도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까망콩을 먹으면서 과식을 주의하고, 저녁이면 쇼핑하러 돌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뭐 이정도면 다이어트 중에서도 누워서 떡먹기만큼 쉬운 다이어트가 아닐까.




  뭐, 흔히들 말하는 뻔한 다이어트 책이 아닌가 싶었다, 처음에는. 그러나 까망콩에 대한 물리적 효과와 성분들이 함께 담겨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까망콩 다이어트라는 새로운 다이어트 법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다. 최근 들어,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블랙푸드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졌고 검은콩을 재료로 한 음료부터 과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식품들이 가공되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도 강조했듯이 가공식품은 가공식품일 뿐이다. 진정한 다이어트 효과를 원한다면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까망콩을 취해보자.




  무엇보다 다이어트는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즐기면서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것 같다. 모든 걸 다 차치하더라도 주인공의 의지가 참 대단한 것 같다. 아무리 이건 다이어트 중에서도 쉬운 편에 속한다 하더라도 분명 힘든 고비도 있었을 것이다. 즐기려고 했었다지만 때로는 원래의 식성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살인보다도 무서운 악플이라는 공격에 상처받은 저자가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는 그가 좀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을 그를 생각하면 그가 까망콩을 만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 지금도 어디에선가 예전의 그처럼 상처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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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미스트의 긍정코드 100 - 긍정적인 삶으로 이끌어주는 미셀러니
닉 인먼 지음, 문세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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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옵티미스트. 낙관주의자 또는 낙천주의자로 번역되는 말이다.

  인터넷 ‘네이버 용어사전’의 기술을 빌려보자면, ‘비관이나 우울함, 불행, 이기주의, 외로움 등과는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모든 것을 긍정만 하는 것과는 차별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즉, 어려운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들,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옵티미스트 긍정코드 100>은 조금은 독특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옵티미스트가 되는 길에 대한 방법을 줄줄이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그냥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타주의’부터 시작해 ‘세계의 종말’이라는 단어에 이르기까지 100개의 키워드를 설정해 놓고 저자가 그에 대한 풀이를 술술 해 놓는다. 때로는 ‘긍정적이지 않은’ 서술도 있고 비판하는 글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저자의 풀이를 읽어나간다. 뭐, 기호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읽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단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우리는 적어도 약간의 옵티미스트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준비가 되어 있거나. 




  처음에 언급해두었던 사전 기술 속 ‘행동하는 긍정주의자’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꼽는다면 ‘로빈슨 크루소’와 ‘헬렌 켈러’가 그 주인공일 것이다. 그들이 왜 옵티미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무조건 좋다고 해서이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그에 맞게 어려움을 극복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나 고통 속에서 그들은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그 희망을 바라보며 결국엔 이겨낸 것이다. 세상에 물론 이렇게 대단한 ‘위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위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평범한 우리들이라면 그들 같은 극한 상황 속에 처하기는 쉽지 않으니, 그들보다는 좀 더 나은 위치에 서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보다도 더 쉽게 희망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떤가. 밝은 빛이 조금은 가까이 보이지 않는가.




  이 책의 저자 참 센스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그럴듯한 비유들의 등장에 무릎을 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너무 극한으로만 벌려 놓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며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 전신의 살갗이 벗겨지거나 화상을 당한 후 살아남는 것, 배 젓는 노예로 강제 징집되는 것, 정신이 멀쩡한 채로 정신병동에 수감되는 것, 딸랑 칼 하나만 차고 있는데 포병 중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 이대로만 생각해본다면 어느 누구도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메모 해 놓고 책상머리 혹은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꾸 보면 지금의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 것 같다.




  요즘은 누구나 입만 열면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나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진정 아무도 없다! 모든 게 마음먹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우리 가슴 속에 긍정 코드를 심어놓는다면 그 긍정코드는 우리를 옵티미스트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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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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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안녕.

  얼마 전에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읽으면서도 그랬고, 이 책 <안녕, 언젠가>를 읽으면서도 이렇게 자주 쓰이는 ‘안녕’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무겁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심장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 같은 단어가 그 뜻이 달라지는 말들이 꽤 있기는 하지만, 유독 ‘안녕’이라는 말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일본 소설을 한 덩어리로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일본 소설은 모두 ‘이런 종류의 스토리’를 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런 종류’라고 하면, 올바르지 않은, 이를테면 연인을 두고 바람을 핀다든지 배우자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다든지 하는, 그렇지만 그것을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그려내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서 저속하고 불결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일본 소설이라면 덮어두고 멀리했었다. 이해되지도 않았으며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바로 그런 류! 이들 때문에 사랑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나를 포함해 하나둘 늘어나는 거 아니냐는 뭐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다가 한 권 한 권 우연히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고, 점점 그 속에서도 어떤 감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사고 역시 자연스럽게 변화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만 사랑인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 다양한 사랑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사랑이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 역시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재라고 한다면 어쩌면 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안정적인 가정과 갑작스럽게 찾아온 희열이 느껴지는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혼자가 있는 유타카에게 어느 날 나타난 낯설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대단한 부자인 토우코가 등장한다. 토우코는 부단히 의도적으로 유타카의 삶에 뛰어들었고, 그런 토우코를 유타카는 뿌리치지 않는다. 그렇게 유타카의 인생은 순식간에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두고 불같은 사랑이라고 하는 거겠지. 이제 남은 것은 유타카의 내면적인 갈등이다.




  ‘당신은 죽음을 앞두고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아니면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하는 짤막한 질문을 통해 츠지 히토나리는 이 책을 오롯이 표현해내고 있었다. 평생을 두고 서로를 잊지 못했던 유타카와 토우코. 이들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에서, 육체적인 욕망을 통해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으로 매듭지어졌다. 서로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던지 간에 이들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불과 4개월 동안. 한 남자는 결혼을 앞둔 잠깐의 일탈로, 한 여자는 전남편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으로. 장난처럼 시작된 그들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줄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이쯤 되어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약혼자 미츠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조신하게 유타카만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미츠코는 참으로 안쓰러운 피해자가 되었다. 물론 그들의 비밀을 모른 채 어쩌면 평생을 유타카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테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자신에게 가해진 배신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어쩌면 정말 비극적인 운명의 장난이 유타카와 토우코를 괴롭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가슴앓이 없이 그 어떤 희생과 후회 없이 서로만을 생각하고 서로만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미츠코만이 점점 더 불쌍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진정한 사랑이었으면 고작 네 달 동안의 사랑했던 기억을 안고 평생을 살 수 있는 건지 하는 생각에 한 편으로는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그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다.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셋 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츠지 히토나리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라고 한다면 사랑받았던 기억과 사랑했던 기억이 똑같아지는 경우가 되지 않을까. 행복에 대한 기준을 사랑에만 놓고 본다면 일치된 그 기억이야말로 비로소 완성된 하나의 온전한 사랑과 기억이 되어 죽음을 앞두고도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분명 그들의 사랑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랑이 진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 역시 동시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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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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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책을 다 읽고 나서 정말 기막히게도 잘 지은 이 제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조지나에게 일어난 믿지 못할 일들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그려진다. 이 책의 저자 바바라 오코너는 어린 소녀의 상처받은 마음, 그리고 치유되는 마음, 그리고 성장해가는 내면을 정말 세심하고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읽는 내내 조지나에게 빠져들고 동화되어 헤어나기가 어려웠다.




  귀엽고 깜찍한 소녀 조지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아빠와 집이 사라져 있었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순식간에 거리에 나앉게 된 조지나 가족-엄마, 조지나, 그리고 동생 토비-은 겨우 차 한 대만을 건져 길거리 인생의 길에 접어든다. 눈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다. 한창 민감하고 예민한 청소년기를 겪고 있기에 조지아가 느낀 충격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혹시나 친구들이 알아챌까봐 항상 전에 살던 집 근처를 배회해야만 했던 조지나를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하루 종일 궂은일도 마다 않고 일한 엄마를 그러나 조지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조지나가 너무 어렸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직은 너무나 여리고 순수한 소녀. 조지나의 머릿속에 부모님이라면 자식들에게 만족과 풍족함을 주어야 하고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조지나의 눈에 엄마는 넉넉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잠잘 수 있는 따뜻한 침대 하나조차 줄 수 없는 ‘형편없는’ 부모의 역할을 한다고만 비쳤다. 보이는 게 전부인 어린 조지나에게 엄마의 남모를 노력은 헤아려지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잠을 잘 수 있는 아늑한 집을 사기 위해 조지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프로젝트를 만든다. 혼자 구상하고 혼자 계획했으며, 마지막 실행은 동생과 함께. 노트를 만들어 개를 훔치기 위한, 무엇보다 집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적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정말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애처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계획을 행동에 옮기고 점점 시간을 흘려보내며 조지나가 깨달아가는 과정은 대견하게 느껴졌고, 기특하게만 여겨졌다.




  순수함, 그 자체인 조지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옳은 길을 걸어간다. 여기에는 어떤 교육법 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잘못을 물론 방관만 해서도 안 되는 거지만, 무조건 윽박지르거나 ‘사랑의’ 매를 든다고 해서 아이가 꼭 다시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바바라 오코너는 조지나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것 같다. 만약 조지나가 너무 어린 나이에 닥친 괴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수긍하며 살아갔다면, 그렇게 내적으로 성숙한 모습이었다면, 어쩌면 조지나 이야기는 그리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지나는 ‘어린’ 조지나다웠다. 밝고 명랑하며 쾌활했고, 때로는 적당히 자기만 알고, 적당히 엄마를 미워하고, 적당히 닥친 현실에 괴로워하며, 적당히 창피해하는 아이였기에 이 작은 소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어린 조지나의 성장소설이면서, 가족소설이고, 그 외에도 사랑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에 완벽한 소설이다. 같은 분량의 다른 책들에 비해 아주 급속도로 읽히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었다. 조지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딱 맞는 단어와 문장과 표현으로 되어 있어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가슴 아픈 상황을 적절하게 재미있으면서도 완벽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 그 효과가 톡톡히 빛을 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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