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언젠가 -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안녕.

  얼마 전에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읽으면서도 그랬고, 이 책 <안녕, 언젠가>를 읽으면서도 이렇게 자주 쓰이는 ‘안녕’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무겁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심장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 같은 단어가 그 뜻이 달라지는 말들이 꽤 있기는 하지만, 유독 ‘안녕’이라는 말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일본 소설을 한 덩어리로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일본 소설은 모두 ‘이런 종류의 스토리’를 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런 종류’라고 하면, 올바르지 않은, 이를테면 연인을 두고 바람을 핀다든지 배우자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다든지 하는, 그렇지만 그것을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그려내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서 저속하고 불결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일본 소설이라면 덮어두고 멀리했었다. 이해되지도 않았으며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바로 그런 류! 이들 때문에 사랑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나를 포함해 하나둘 늘어나는 거 아니냐는 뭐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다가 한 권 한 권 우연히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고, 점점 그 속에서도 어떤 감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사고 역시 자연스럽게 변화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만 사랑인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 다양한 사랑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사랑이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 역시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재라고 한다면 어쩌면 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안정적인 가정과 갑작스럽게 찾아온 희열이 느껴지는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혼자가 있는 유타카에게 어느 날 나타난 낯설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대단한 부자인 토우코가 등장한다. 토우코는 부단히 의도적으로 유타카의 삶에 뛰어들었고, 그런 토우코를 유타카는 뿌리치지 않는다. 그렇게 유타카의 인생은 순식간에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두고 불같은 사랑이라고 하는 거겠지. 이제 남은 것은 유타카의 내면적인 갈등이다.




  ‘당신은 죽음을 앞두고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아니면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인가’ 하는 짤막한 질문을 통해 츠지 히토나리는 이 책을 오롯이 표현해내고 있었다. 평생을 두고 서로를 잊지 못했던 유타카와 토우코. 이들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에서, 육체적인 욕망을 통해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으로 매듭지어졌다. 서로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던지 간에 이들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불과 4개월 동안. 한 남자는 결혼을 앞둔 잠깐의 일탈로, 한 여자는 전남편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으로. 장난처럼 시작된 그들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줄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이쯤 되어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약혼자 미츠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조신하게 유타카만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미츠코는 참으로 안쓰러운 피해자가 되었다. 물론 그들의 비밀을 모른 채 어쩌면 평생을 유타카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테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자신에게 가해진 배신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어쩌면 정말 비극적인 운명의 장난이 유타카와 토우코를 괴롭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가슴앓이 없이 그 어떤 희생과 후회 없이 서로만을 생각하고 서로만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미츠코만이 점점 더 불쌍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진정한 사랑이었으면 고작 네 달 동안의 사랑했던 기억을 안고 평생을 살 수 있는 건지 하는 생각에 한 편으로는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그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다.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셋 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츠지 히토나리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라고 한다면 사랑받았던 기억과 사랑했던 기억이 똑같아지는 경우가 되지 않을까. 행복에 대한 기준을 사랑에만 놓고 본다면 일치된 그 기억이야말로 비로소 완성된 하나의 온전한 사랑과 기억이 되어 죽음을 앞두고도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분명 그들의 사랑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랑이 진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 역시 동시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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