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무 살.

  청소년기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는 시기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물학적으로는 엄연한 성인이지만 내면에서는 아직도 어린 스스로와 싸우고 성장하는 시기가 아닐까. 사회에 한 발을 담그고 나머지 한 발은 아직도 주춤대며 미적미적 거리는 시기. 여전히 방황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시기. 이 책에는 그런 스무 살의 주인공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떤 사건 사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책 의미 있게 읽힌다.




  스무 살의 치즈는 대학가기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아르바이트 인생을 선택한다. 프리터. 엄마와도 떨어져 살게 되면서 치즈는 도쿄에 있는 깅코 씨 댁에 머물게 된다. 깅코 씨는 엄마의 먼 친척뻘 되는 할머니다. 치즈와 깅코 씨는 그렇게 50년이라는 시간적, 물리적 갭을 공유하며 함께 살기를 시작한다. 그다지 시끌벅적하지도 않은, 그다지 활기 넘치지도 않은, 쥐죽은 듯 조용하게 둘은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며 조금씩 정이라는 것을 나누어 간다. 깅코 씨는 치즈처럼 점점 젊어지는 것 같고, 치즈는 깅코 씨처럼 점점 ‘할머니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깅코 할머니는 눈에 띄게 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때로는 설거지도 며칠씩 미루기 일쑤고 청소도 안할 때가 많으며, 댄스 학원 할아버지와 귀여운 사랑을 하기도 하는 어린이 같기도 하다. 다만, 치즈가 힘들어할 때면 슬쩍 슬쩍 한 마디씩을 던지는데 그것들이 치즈의 마음을 울리고 독자의 마음을 울리며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해 준다.




  <혼자 있기 좋은 날>의 주인공 치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족에게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아 엄마와도 왠지 모르게 서먹서먹하고, 연인이 생겨도 어느 샌가 보면 뻥 차여있기 일쑤다. 그들은 치즈에게 이별을 고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곧 헤어질 것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변심했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변화된 행동들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안 봐도 그리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 간다. 사랑과 이별이 어쩌면 그렇게 간단할 수 있는 건지, 치즈는 납득되지 않고 견디기가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미 뒤틀린 관계를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치즈에게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너무나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마 모든 것이 새롭고 동시에 어렵게 느껴지는 스무 살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치즈를 통해 완벽히 그려낸 것이리라. 한편 치즈에게는 조금은 유별난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사람들의 소소한 물건들을 ‘회수하는 일’. 그리고 나중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다. 비싼 물건들을 슬쩍 하는 게 아니니까 절대 ‘훔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는 하지만, 때때로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치즈는 회수한 물건들과 함께 혼자 있는 날을 즐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혼자 있는 날을 즐기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세상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만을 끌어안고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제대로 된 생활 같은 것 따위는 자신에게는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치즈는 일찌감치 자신에게 말한다. 낙심해 있는,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치즈에게 할머니는 말해준다. 세상에는 안도 없고 밖도 없다고. 세상은 하나뿐이라고 말이다. 할머니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가며 치즈는 깅코 할머니와 사 계절을 보낸 후, 사회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OL’이 되어. 이제 치즈에게도 살아갈 이유 같은 것이 생긴 거겠지.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은 일찌감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치즈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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