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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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머니를 ‘돌본다’는 말은, 내게는 아주 멀고 먼 이야기처럼만 느껴졌다.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무릎을 다치셨다. 말이 다치신 거지, 무릎 관절이 노화하여 이제는 ‘절대 조심’해야만 한다. 당분간 무릎을 움직이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엄마가 ‘돌보고’ 계신다. 차로 3, 40분이면 왕복이 가능한 가까운 거리지만, 거의 매일 한가득 반찬을 하고, 이것저것 챙기고, 평상시 패턴을 무너뜨린 채 당연한 듯이, 자연스럽게 할머니 댁으로 가는 엄마를 보면서 ‘역시 효녀야, 우리 엄만’,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할머니를 돌보는 엄마가 떠올랐고,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도 엄마를 ‘돌보는’ 때가 올 거라는 막연하고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파킨슨 병에 걸린, 그리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느꼈던 감정들, 징후들을 기록한 일종의 일지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어머니께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정확한 날짜와 진료 상황 등을 기록하는 것으로 일지는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저자의 고백에 가까운 이야기로 변해갔다. 저자의 직업이 기고문을 쓰고 평론을 쓰는 일이었기 때문인지, 그녀가 써나가는 글에서는 상당히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이 느껴졌다. 그저 어머니를 생각하는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찬 글이 아니라, 약간은 객관적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되었다.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저자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지’, 형이상학적으로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때때로 보였던 어머니의 ‘환각’ 증상과 시간이 흐를수록 급격하게 놓아버리는 정신은 저자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성과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하게 만들었다.




  7년 동안의, 어쩌면 지옥과도 같았던 시간을 저자는 그저 담담하고 마음을 비운 채로 이 책에 담았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그녀의 고통과 그녀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말이 7년이고 말이 치매지, 어떻게 그 시간들을 이 책 한 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에게 닥친 일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이었으며, 설상가상이었다. 어머니에게 그런 일이 생긴 후, 원래부터 귀가 거의 들리지 않던 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받았으며, 그녀 자신은 점점 눈앞이 흐려지는 녹내장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절망 속의 절망, 더 이상은 떨어질 곳이 없을 것만 같은데도 계속해서 추락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어찌되었든 이 모든 걸 견뎌낸 그녀가 신기하고 대단하게 여겨질 따름이었다.




  실제로 나는 아직 치매 환자를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없다. TV나 영화, 혹은 책 속에서 소재로 다루어질 때 접하는 것이 전부였다. 치매에 걸린 환자는 거의 인간이 아닌 모습에 가까워진다. 어린 아이로 돌아가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점점 언어능력, 지각능력 등 모든 면에서 현격하게 ‘바보가’ 되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 역시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에 따라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심지어는 견디지 못하고 부모님을 잡고 있던 얇은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여느 병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치매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위의 가족들에게까지도 그 고통을 전염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다.




  종종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절대로 치매에는 걸리고 싶지 않으시다고. 절대 가족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으시다고 말이다. 그럴 때면 “에이, 무슨 말씀! 우리 할머니는 절대 그런 거 안 걸려!”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곤 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할머니께서 얼마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계셨는지 알 것만 같다. 이 책은 <어머니를 돌보며>였지만, 내게는 ‘어머니’가 할머니로 받아들여졌다. 앞으로 더욱 자주 할머니 댁에 가야겠다. 그리고 더욱 열정적으로 할머니를 사랑해야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의 표지처럼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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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 1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6
김민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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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릿 소설을 읽고 있으면서도 한 편의 성장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의 여느 칙릿 소설들처럼 강남과 압구정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에는 이십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네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 직업과 꿈,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돈’과 ‘사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 역시 20대이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더 그럴듯하고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그동안 읽어온 많은 칙릿 소설에 길들여져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20대라면, 그리고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다면 최소한 여러 번은 고민하고 고민했을 문제. 꿈과 직업, 그리고 머릿속으로 조그맣게 그려보는 ‘나의 미래’를 이 책의 저자는 네 명의 친구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었다. 취업이냐 시집이냐, ‘취집’이냐를 두고 아마 많은 이십대가 갈등하고 갈등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유민은 올해 스물넷으로, 이름 있는 대학교에서 연극영화과를 ‘스트레이트’로 졸업했으며, 지금은 ‘백수’다. 대학교에서 만나 지금까지 함께 향락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은 혜지와 수진과 민희다. 이들 모두 근심걱정 따위는 없이,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한해서이다, 언제나 파티를 즐기고 압구정과 강남을 배회하며 플레이걸들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족할 것 없이 자랐고, 꿈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기에, 이들에게 스펙 따위는 있을 리가 없다. 스펙을 쌓을 시간이 있으면, 갤러리아 명품관으로 달려가 신상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피부 관리를 받으면 된다. 그리고 밤이 되면 화려한 클럽 거리에서 시간을 즐기면 되는 거다.




  나름대로 이 책에는 사건사고가 많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잘 나가던 친구의 몰락 아닌 몰락, 텐프로 경험을 갖고 있던 친구의 파혼, 연예계로의 진출, 극으로 치닫는 우정이라는 것 등. 약간은 너무했다 싶을 만큼의 설정이기도 했지만, 그래서인지 더 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의 글 속에서 인생에서도, 그리고 성에서도 ‘SO COOL’를 너무나 자랑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고 다니는 지금의 이십대를 조금은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 풍기기도 했다. 실제로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성에 있어 자유분방한 ‘책 속’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뒤떨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태껏 아르바이트다운 아르바이트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아빠가 주시는 용돈으로 저축 한 번 한 적 없이 야금야금 써대고 살아온 것 같다. 아빠를 돈 주시는 기계쯤으로만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엄마는 뭐든 말만 하면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이제, 철들어야지! 내게도 찾아올 졸업을 앞두고 내 꿈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돌아보고 가슴 속 깊이 있는 나와 대화를 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 책으로 인해 정말 나와의 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좀 더 성숙해져 있을 나의 ‘멋진’ 모습을 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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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Two Lap Runners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9
가와시마 마코토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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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체육. 그 중에서도 제일 싫어하는 종목은 달리기. 달리기에서 ‘시작’하는 소리를 듣기까지 이상하게 미친 듯이 긴장이 된다. 그리고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어김없이 내 두 다리는 풀리고 만다. 털썩. 혹은 달리다 두 다리가 엉킨다.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달리는 동안에는 내 육신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꼭. 중학교 때 체력장을 하게 되면 꼭 거쳐야 할 관문이 바로 장거리 달리기다. 도대체 운동장을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 건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고,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턱을 넘어서 내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헐떡임에 그저 이대로 죽고만 싶기도 했었다. 올림픽 경기 등에서 달리기 선수들을 보면 참 별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800 two lap runners>는 바로 그, 적어도 내게는 ‘별난 사람들’ 중 한 명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800’은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그들이 신체의 한계를 견디며 기록을 내야 할 트랙의 길이이다. 남자 고교생 나카자와와 히로세, 그들은 완전히 상반되는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800미터 경기라는 스포츠를 통해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절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 탄탄하게 실력을 갖춘 이가 히로세라면, 나카자와는 그저 달리기의 매력에 빠진 ‘막무가내’ 러너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벌이면서도 친구로서 소통하는 그들의 모습은 점점 철부지 아이들이 철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들에게 경기에 따른 시기와 질투는 없었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널따란 스타디움과 그 위로 보이는 뻥 뚫린 시원한 하늘, 시원한 바람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경기장을 보면서 나카자와는 흠뻑 매력을 느낀다.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내 터질 것만 같은 심장박동을 유지하며, 뛰고 나면 찾아드는 ‘상쾌한’ 피로감에 그들은 점점 중독되어 간다. 나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일본 청소년들을 그린 소설에서는 우리나라의 것들보다 유독 ‘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또 곳곳에 드러나는 것 같다. 이들 나카자와와 히로세를 포함한 등장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창 사춘기 소년들인 그들 역시 성에 있어서도 민감하다. 나카자와와 히로세의 여자 친구들로 등장하는 아이들 중에는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가 있기도 하고, 또 그들처럼 육상에서 실력을 뽐내는 아이가 있기도 하다. 때로는 동성끼리의 사랑 아닌 사랑도 그려지고 삼각 구도가 형성되기도 하며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줄을 타기도 한다.




  그들의 육상을 향한 도전과 꿈, 우정과 사랑, 그 밖에 질투를 포함한 다양한 감정들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일본 청소년들의 청년 소설이었다. 다만 내게는 어쩌면 소재에서부터 그리 관심을 끌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책의 반을 넘어 읽기까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가 두 명의 눈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를 못했다. 제대로 책에 몰입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일본 이름은 어렵다는 생각과 뭔가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나카자와와 히로세 각각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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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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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가 발명되기 시작한 이래로, 그 안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왔다. 아주 작은 밀폐된 공간, 거울로 둘러싸여있음, 언제 추락할지 모름, 때때로 범죄의 현장이 되기도 하고 사랑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귀신을 만나게 되는 공포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엘리베이터’가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것 역시 이런 엘리베이터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서도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두려움의 대상 중 하나이다. 언젠가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보니 바닥에 검정 남자 구두 한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어 식겁했던 적도 있었고, 귀신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에는 죽어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 한 동안 엄마를 귀찮게 한 적도 있다. 




  이 책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엘리베이터를 중심 배경으로 하여 일어나는 사고(事故)와 사고(思考)를 그리고 있다. 저자 기노시타 한타는 ‘악몽 3부작’으로 일본에 ‘악몽 열풍’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악몽의 엘리베이터> 말고도 ‘악몽의~’들이 더 있나보다. 그 중에서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에서 처음에는 오가와가 느끼는 악몽, 그리고 마키의 악몽, 마지막으로 사부로의 악몽을 순서대로 그들 각각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술에 가득 취한 아르바이트생을 데려다주고서, 데려다주고서, 데려다주고서. 문득 눈이 떠졌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천장의 모습. 순간 온몸이 긴장되기 시작하고 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머리가 띵한 와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은 엘리베이터 안이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세 명의 남녀. 수상쩍기 그지없는 모습들을 하고 있다. 오가와의 악몽이 시작된다. 그들은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추었다고, 그래서 오가와가 기절을 한 거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비상벨을 눌러도 응답은 없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도, 주머니 속의 핸드폰도 없다. 그저 밖에서 누군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음을 눈치 채고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기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 있으려니 그들은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밀폐된 공간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몸과 마음까지 옥죌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저마다 갖고 있는 사연을 줄줄이 풀어 놓는다. 다들 기구하다면 기구한, 암울하다면 암울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한편으로 오가와는 자신의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한다. 인생, 사랑, 죄책감, 진실, 자기 안의 모든 것을. 역시 밀폐된 공간은, 그리고 구출될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을 반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회한의 장소, 뉘우침의 장소, 고백의 장소, 그야말로 고해성사의 자리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이것도 엘리베이터의 기능 중 하나일까, 단순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 외에?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오가와에게만 악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이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몽이었다. 물론 악몽의 배경과 의도는 오가와와는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오가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2장, 3장에서 점차 밝혀진다. 그리고 점점 사고는 더 큰 사고를 부르며 일파만파 커진다. 오가와의, 마키의, 사부로의 의식 속에서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점점 끔찍한 공간으로 자리잡아간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들 각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코믹 스릴러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예측되는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예측 불허.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오가와를, 마키를, 사부로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별로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엘리베이터 버튼 맨 꼭대기의 노란 ‘비상 버튼’이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는 유독 커 보인다. 앞으로 당분간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다른 생각은커녕 온몸을 긴장시키게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스스로 죄를 많이 지었다 싶은 사람은 이 책 보기를 주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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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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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셰익스피어의 존재 자체를 뒤흔든 책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만 이렇게 소식에 무디고 무뎠던 걸까? 그렇다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말은 무엇이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칭송을 받고 있는 것들은 다 뭐란 말이지. 아니면 이제 와서 진실이 드러난 걸까? 이 책, 처음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소설일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를 읽어나가면서 잠깐, 이게 뭔가, 했다. 내가 짐작했던 스토리가 아니잖아. 정말 셰익스피어가 없다는 말이라고 해보겠다는 건가?




  이 책의 결론부터 얘기하면,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실은 우리가 철학자로 잘 알고 있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자료의 출처들은 거의 대부분이 확실하다. 의심에 대한 접근 방법은 우선 독자들의 호기심 자극이다. 물론 제목에서부터 충분히 독자들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맹의 부모 밑에서 자란 셰익스피어가 과연 놀라운 영어 실력을 발휘하여 위대한 작품들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점.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마을이 인구가 극히 적었다는 점과 실제로 한 사람으로서의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 등.




  그렇다면 왜 동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하는 걸까? 그 이유가 바로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뒤흔드는 이야기가 되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프랜시스 베이컨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한 편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베일에 가려진 출생과 수많은 사건, 일화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공식적으로 알려진 기록에 의하면 프랜시스 베이컨의 부모님은 니콜라스 베이컨과 앤 베이컨이다. 그러나 그 베일을 들춰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숨겨진 아들이었음이 드러난다. 이건 정말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듯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낸 책들 속에 교묘히 삽입했던 암호들, 그것들을 풀어내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암호 해독에 사용되었던 기계들과 사람들의 노력으로 점점 더 진실은 빛을 발해간다. 우연과 노력으로 인해 진실에 가까워져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내가 알고 있던 프랜시스 베이컨과 셰익스피어의 진실들이 이렇게 새로이 써지고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셰익스피어 존재의 진위에 대한 점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의 삶을 포함하여 동시대 여러 인물들의 삶과 사건들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특히 더 좋았던 것 같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왜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쓸 수 없었는지, 그가 처했던 상황들, 위기들은 어땠었는지, 그의 고뇌는 어떤 형식으로 표출되었었는지, 그의 험난한 인생은 어느 쪽으로 나아갔었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그의 삶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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