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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평생을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다 퇴임한 후 한적한 시골에서 마음에 딱 맞는 집을 발견하고, 동갑인 아내와 오붓한 노후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에밀과 쥘리에트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은 맞은편에 살고 있는 이웃집 남자의 방문으로 악몽으로 변한다. 항상 같은 시간에 찾아와 아무 말없이 자신의 안락함을 누리는 이웃집 남자는 거구의 70대가 넘은 남자이고 의사라고 말하지만, 심술궂고 몰상식한 무개념의 이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나를 존경했다. 나는 나 자신이 선천적인 권위를 타고났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강한 인간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다만 나는 교양있는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교양있는 이들을 대할 때면 나는 여유에 넘쳤다. 그런데 뻔뻔스러운 인간을 만나기가 무섭게 내 그런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 p88
이웃집 남자 베르나르댕의 방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그의 침묵과 단답형 대답에 몸둘바를 몰라하는 쪽이 에밀이 되면서 에밀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어느날 그와 아내가 경멸해 마지않는 방법, 즉 교양에 어긋나도록 베르나르댕을 쫓아낸후로도 그의 안절부절한 증상은 가시지 않는다. 이미 베르나르댕은 못된 방법으로 에밀을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같은 시간에 침을 흘리게 만들어 놓았던 것일까?
'처음에 매일 두 시간씩 우리 집에 와서 죽치고 앉아 있었던 그의 태도는, 다른 죄수의 독방을 침입하는 것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가엾은 죄수의 모습이었다. 먹는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면서도 그가 그렇게 폭식을 했던 것은 권태의 절정에 달한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 양태였다. 자기 아내에 대한 그의 가학적 성향역시 감금된 자의 형태였다. ' p216
그들 부부의 강요에 초대된 베르나르댕의 아내의 모습의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수 없을 만큼 그저 살찐 생물체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에밀이 쫓아낸 베르나르댕의 자살시도로 그의 집을 둘러본 순간 에밀 부부는 베르나르댕의 정기적 방문이 그의 유일한 숨통이었음을 알게된다.
이야기는 중반부터 이웃집 남자 베르나르댕의 실체를 보여주며 그의 삶이 죽을수도 없는 영원한 삶을 살아야 하는 벌을 받는 사람인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아내와 45년간 살아온 남자, 집안은 쓰레기와 온갖 냄새로 숨쉴수 없을 정도인 상태로 25개의 시계는 집안 곳곳에서 시간을 제촉하는 모습을 하고 살고있었다.
단순한줄 알았던 스토리가 괴기스러운 이야기로 넘어가는듯 하지만, 마침내 한 편의 연극을 본듯한 느낌이 든 까닭은 에밀이 이웃집 남자로 부터 시작된 이 상황으로 인해 사고하고, 분석하고 마침내 자신이 내린 결론에 의해 행한 행위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철학적으로 고찰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