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고숙은 그곳에서 차를 돌리지 않았다. 밤새워 차안에서 고모를 기다렸다. 고모가 고모의 엄마와 그 엄마가 낳은 열두 살 어린 동생, 나의 아버지를 만나서, 서럽도록 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던 그 원망의 시간 내내, 고숙은 차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는 니 고모를 만나 사십 년이 되도록 니 고모 사람들, 죽은 사람들뒤치다꺼리 한 것만 해도 내 평생 할 도리를 다 한 거 같다.”

 

 

그날 밤, 여원재를 내려오면서 고모랑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 굽이굽이 눈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가 그곳에 남아있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왜 안 가셨어요, 라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냥 그 집에서 나와서는 내 차를 보더니만, 얼굴을 돌리고 다가와서는 "이제 그만 갑시다" 했다.

남원역에 도착해서 돈만 지불하고 돌아서는 니 고모. 또 말없이 기차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또 남원역 앞 택시 대기선에서 가만히 있었다.

 

인월에서 돌아오는 내내, 담배도 태우지 않고 울기만 하는 그 사람을 무슨 수로 말을 걸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방법도 몰랐다.

나는 그냥 무슨 일인지, 그냥 차안에서 또 기다렸다. 니 고모가 그냥 그대로 기차를 타고 가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인데도, 소방대도 가지 않고 기다렸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고모가 다시 나왔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여기, 잠도 자고, 머물면서 밥도 좀 먹을 데 없어요?" 한다.

 

나는 명성관으로 갔다.

지금으로 따지면 여관이기도 한데, 돈을 주면 주인집에서 밥도 해 준다.

명성관으로 가는 길에, 니 고모가 얘기를 한다.

 

"왜 기다렸소? 역에서도 날 기다렸소? 왜 그러셨소? 나는 오늘 신의주로 떠날 사람이었소." 

 

오히려 내가 말이 없어졌다. 니 고모가 말을 하니, 내가 말이 없어졌다.

 

"내가 며칠만 여기 머물다 가도 되겠소?"

 

나는 바로 "그러시오"했다.

 

그렇게 나는 니 고모랑 얘기를 섞게 되었다.

 

(5회차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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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신준모 지음, 김진희 그림 / 프롬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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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아주 어린 친구가 책을 한 권 빌려 주었어요.
책 제목은 "어떤 하루"
지은이는 신준모. 그림은 김진희.
글도 가볍고 그림도 따뜻하고. 아주 좋네요.

 

- 책에 밑줄 긋기

 

 

'밀당'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지 누군가 우위에 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꿈'의 사이즈가 클수록 '고민'도 '고통'도 크다.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는 막, 막해보는 거야.

 

 

 

이 글의 저자는 페이스북의 유명인사라고 합니다. 그의 글은 매주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일반적으로 공감이 많이 되고 그 여운이 길게 남는 문장들인 것 같습니다.

 

"삶은 단 한 번뿐, 우리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고 살아요."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세요."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것은 삶에 큰 차이를 낳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기쁨만을 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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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1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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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 모두가 읽어야 할 책

 

특히, 친일파들.. 강제로 읽혀야 합니다.
나라 잃은 민족이, 그 설움과 아픔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던 그 시절에 그들은 무엇을 했는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제발 이제라도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행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징용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한국 근대사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어떤 목적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갔던 간에 징용에 끌려갔던 식민지 조선인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구조 하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인권을 유린당해야 했다. 그리고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원자폭탄 투하로부터 고통받아야 했다.... 한수산의 "군함도"는 왜 그들의 행위가 범죄였는지, 그 범죄로 인해 식민지 조선인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군함도1권, 475쪽에 나와 있는 금화의 말.

가물가물 흐려오는 의식 속에서 금화는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싸워야 하고, 찾아야 한단다. 인간이기에 싸우고, 찾아나서야 해. 무릎 꿇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싸워야 하고, 갇혀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자유를 찾는 거라고, 우석은 말했었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는 잠자리 날개처럼 말라버린 짧고 꿈 같던 지난날이 있을 뿐이다. 봄이 와도 새잎이 돋지 못하는 고목, 마른 나무, 내 가슴의 마른 나무 한그루.

 

  사랑하는 남자 우석의 군함도 지하탄광에서의 탈출이 있던 날, 그의 무사 탈출을 위해 경비병을 붙들고 술을 먹이고 몸을 맡겼던 날. 논개까지는 아니어도 논개 이상의 마음으로 애절하게 자신을 버리던 날. 그녀는 고목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일로 금화는 인간으로서 차마 겪을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그렇게 다 부셔진 몸으로 푸석푸석 마른 풀이 되어 돌아와서는. 그녀는 우석의 생사도 마저 확인하지 못한 채. 그렇게 바닷물에 뛰어 들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투신자살. 그것만이 사랑하는 남자 우석에게 가장 깨끗이 사는 길이라 여기고. 유일하게 그녀를 사람처럼 대해 줬다 여겼던 그 사람 품에 안기듯이 그녀는 그렇게 죽는다.
군함도 1권의 후반부.. 금화의 사랑에 몰입되어... 몇 시간을 먹먹한 마음으로 울고 말았다. 딸아이가... 아... 엄마... 여전하네요.. 하면서 놀리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제 오늘 군함도 1권의 중반부 이후를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정말 먹먹했다. 지금 2권은 사무실에 있어서. 내일부터 숨가쁘게 읽어 내려갈 일을 생각하면. 또 다시 괜히 먹먹해진다.

이 책. 전국민이 모두 읽어야하는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친일 행적을 남겼던 모든 이들에게는 강제적으로라도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작가의 30여년의 집필. 그 대장정의 노력과 정성과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들에서는 작가님을 찾아가서 '고생하셨습니다' 말씀을 드리고 싶을 정도이다.

군함도 1,2권을 모두 읽고 후배에게 선물을 했다. 책은 그렇게 파도의 물결처럼 내 손에서 너의 손으로, 또다시 너의 손에서 누군가의 손으로 이렇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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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2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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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함도 1,2권을 모두 읽고 난 후의 나의 소감은 한 마디로 '부끄럽다'이다. 지금껏 나는 하시마섬 군함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기나 했었는지.. 차마 부끄러워서 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은 수면 위로 보이는 '얼음덩어리'일 뿐입니다. 이 소설이 독자 여러분에게 저 어두운 바닷속 그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죄악과 진실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마주하는 '순간'이 되어준다면 "군함도"의 작가로서 저는 제 몫을 다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한수산 작가의 말에서..)


예능 프로 무한도전에서 기획으로 다룰 때까지만 해도 '음.. 김태호 피디가 또 괜찮은 일을 하군' 정도였으며. 올 봄에 영화 '군함도'가 제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 소지섭, 송중기. 꼭 보러 가야지'하며 영화와 영화 배우에 대한 설렘만을 피력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도서관에 들렀다가 '군함도' 세 글자의 제목을 발견한 후. 그래 영화한다고 했지. 무슨 얘기일까. 그 원작을 한 번 봐야겠다. 영화를 재밌게 보기 위해서. 정말 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책을 꺼내 들었다. 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이건 부끄러움이다, 이건 아픔이다, 이건 슬픔이다, 이건 통곡이다, 이건 분노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 민족이 당한 핍박과 아픔과 설움을 문장으로 읽어낸다는 것, 그 문장의 사이사이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문자로 해독한다는 것은. 칼로 베인 살끝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아팠다. 그 아픔과 살끝에 저며오는 고통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건 그냥 소설로(물론 사실적인 자료와 해석을 바탕으로 서술이 되었기에 거의 르포/다큐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다. 더더욱 2시간짜리 영화로 끝낼 일이 아닌 것 같다. 춘천 어디선가 올린 '까마귀' 연극으로만 될 일도 아닐 것 같다. 최소한 30부작 이상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독도 교육에 버금가는 '일제 강점기 하의 강제 징용, 강제 징병, 강제 위안부' 등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하여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내 주변인들에게 이 책 '군함도'를 꼭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나처럼 우리의 역사를 무슨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공부한, 얄팍한 지식인들에게 더욱 경종을 울리는 소설. 이런 소설을 꼭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27년 대장정에 가까운 깊은 노고에 감탄하고.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에 눈물이 솟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일본의 책임과 사죄에 대해 분노한다.

그리고 내 짧은 필력으로는 도저히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배경, 자료, 작가의 의도, 원폭 피해 등을 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 '작가의 말'을 고스란히 그대로 여기에 옮겨 적어 보고자 한다.

 

나가사끼 조선인 징용공 피폭자를 결코 역사와 망각 속으로 흘려보낼 수 없다는 기저 위에 나는 그분들을 만나 강제 노역에 처해졌던 해저탄광 현장을 함께 걸으며 '여기서 살았다' '저기서 울었다' '이 해안 절벽에서 자살을 결심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역사를 복원하고 문학으로 기억한다는 작가적 의무 속에서 27년을 보냈습니다.
이 소설의 출발은 토오꾜오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 하나를 만난 1989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강제징용과 피폭이 뒤얽힌 이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과 함께 취재를 시작한 나는 1990년 여름 나가사끼를 거쳐 히로시마로 올라가며 다양한 원폭 피해자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 한수산 작가의 말 (군함도 2권에 마지막에 실린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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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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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아버지 학교] 밑줄 긋기

 

연탄-아버지 학교 13

(시인 이정록)

 

아비란 연탄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둔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아비란 연탄같은 거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

 

어느 구절에서도 아버지의 한숨이 들리지 않는 것이 없다.

헉헉대며 뿜어 올리는 아버지의 긴 한숨.

 

연탄장 하나로 온 방안이 뜨끈해지고

연탄장 하나로 온 식구가 매달려 밥을 먹던 그 시절. 아버지 한숨으로 불길이 되던 그 시절.

그러다가.. 어느 날.

연탄장 하나 낮달처럼 하얗게 창백해지고 가벼운 재가 되면 내 아이들 뛰어다니는 골목길을 위해

한몸 아낌없이 재로 가루로 으스러지고 부서졌지.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야.

아버지의 한숨은 아버지의 땀이고 아버지의 수고이며 아버지의 더 할 나위 없는 사랑이야.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고 마는 아버지의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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