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밀의숲 14, 조승우 감정선 무너지다

 

종영 2회를 남겨 두고 썼던 리뷰를 여기에 옮겨 본다.

리뷰를 다시 읽는 동안에도 드라마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2017최고의 드라마라고 감히 언급할 수 있고. 이 드라마는 웰메이드 드라마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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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연출 안길호, 극본 이수연

[개요] tvN 2017.06.10. - 2017.07.30. 방영종료. 16부작

[출연] 조승우, 배두나, 이준혁, 유재명, 신혜선 외

[소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이,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과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내부 비밀 추적극


 

 

영은수(신혜선) 검사의 주검 앞에서 지난 날의 회한, 미안함, 분노 등 모든 감정이 폭발했다

 

..... 드라마가 끝나고도
이 끝나지 않은 느낌은 뭐지?
..... 이 설레면서도
약간 떨리는 이 느낌은 뭐지?

 

[비밀의숲 14회를 기다리면서]

 

어제 비밀의숲 13회에서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는데. 두 가지가 계속 떠오른다.
가장 마음이 찡했던 장면 하나.
황시목 검사가 특임 해체로 인해 사무실을 급하게 비우게 되면서 화이트보드에 붙여 놓았던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의 사진을 하나 하나 떼어 내며 거기에 적어 놓은 사건 파일 등을 지울 때다.
우린 때로 어쩔 수 없이 어떤 일들은 바로 멈춰야 할 때가 있다.
그때 그 심정이란 것이. 명치끝을 쑤시는 듯이 아플 때가 있다.
황시목, 아팠을 것 같다.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은영수 검사의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
만감이 교차했을 황시목 검사. 아무리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절대 무감의 소유자라 하지만. 분명 그 순간 감정 절제선이 완전 해제 되었을 것 같다.
그 순간의 멍함이란.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것만 같은 백지 상태를 느꼈을 것이다. 차마 말로도 어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이제 비밀의숲 마지막 결말까지 남은 3. 비밀의 숲에 가려진 비밀들과 비리, 폭력들이 얼마만큼이나 들어날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되지만. 최소한 우리가 희망하는 재판정의 모습은 보여주길.
황시목이 그냥 쓰러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일은 없기를.
아무리 현실이 막장이라 해도 드라마에서는 최소한의 개연성을 보여주기를.

 

[드디어 비밀의 숲 14회 시작!!]

 

부검의 : 동료분이셨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시목 : (단호하게)시작하시죠.
..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온 시목
..
복도를 걷다가 귀에서 날카로운 이명 시작
시목 : (몹시 괴로워하며)지금은 제발.

 

 

사람들이 달려와서 복도에서 쓰러지는 시목  데려가고.
이제 황시목 검사 감정 절제의 봉인선이 무너지고 마는구나.



#황시목(조승우)
검사의 감정 봉인 해제

어린 시절 기억과 아픔과 상처와 영검사의 죽음과 충격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극도의 긴장감으로 쓰러지고 말았으니.

 

(찻잎) 아 이렇게 연민 가는 캐릭터 간만에 처음이다. .. 정말.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는, 일반인보다 극도로 섬세하게 느끼는 사람이. 그 감정을 통제하는 뇌의 일부를 잘라내버렸으니. 그래서 그 예민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그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마치 냉혈인간처럼 보이는 외톨이 검사의 외로움, 고통, 슬픔의 깊이를 어찌 알 수 있을까.

오죽하면 그 예민한 감성 때문에, 피아노 소리에 미쳐 버릴 것 같아서. 피아노 치고 있는 동급생의 손가락을 피아노 뚜껑으로 덮어 버렸을까. 물론 그 피아노 치는 친구는 오히려 그것으로 자신의 재능 부족을 손가락 부상으로 변명할 수 있게 되었겠지만 말이다.

 

#조승우 황시목 검사, 감정선이 무너지고 분노를 폭발하다

영일재 : (시목에게)지켜달라 했지.
(수석에게 눈을 부릅뜨며) 니놈이 죽였어
..
황시목 : (있는 분노 감정 모두 폭발하며, 영일재에게)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그동안 뭐 하셨습니까. 왜 숨어만 있었습니까. 겁이 났던 것은 아닙니까.

 

#유재명 이창준 수석 : 아내와 이혼을 준비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본심은 뭘까.

권력? 검사로서의 명예 회복? 아니면 돈???

 

연재 : 뭐가 미안해. 이혼 준비 뭐야?
수석 : 여자는 너 하나 밖에 없어. 그때 오지 말았어야 했어. 너 오빠 재판에. 그때 나를 보지 말았어야 했어.

 

#신혜선 영은수 : 영일재의 USB를 가져 가다

황시목 : 430. 영검사가 가져 갔습니다.
영일재 : 내가 내 딸을 죽였어. 내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아무에게도 내놓지 않고. 손에 꼭 쥐고 있던 이윤범 탈세 자료. 그것을 영검사가 가져 갔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그것을 가져 간 것은 이윤범의 비서 우실장 아닐까???

황시목 : 내내 옆에서.. 범인 찾았습니다
영검사가 본 것은 윤세원, 윤과장입니다

 

#공항 추격신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 스릴 있었다. 그리고 윤과장을 잡았다. 윤과장은 끝내 주먹을 쥐고 한경위를 내리치지는 못했다. 최소한의 양심 또는 의리.
그는 해병대 출신이고. 어깨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U.D.T. 그런데 아마도 그는 이윤범의 비서 우실장의 해병대 후배일 것도 같은데.

 

P.S.
#이규형
윤과장 : 박무성을 죽이고 김가영을 납치한 것은 이 사람인 듯. 그러나 영검사를 죽인 것은 이윤범의 비서일 듯싶은데. 공교롭게도 영검사 살해 현장의 목격자가 되어 버린 듯. 계속 수사관으로 있다가는 자신의 그전 행각이 들통이 날 것이고. 그래서 해외 도피. 공항에 왔는데. 항공 티켓이 이창준 수석실에 있었다는 것.
윤과장을 부린 사람은 이창준.
은검사를 죽인 것은 우실장(자신을 봤기에). 그리고 살인 현장을 마치 박무성 살인과 동일 행위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으나. 깔끔하지는 못했음. 그러니 영은수는 윤과장이 죽인 게 아님.

 

 

** 이 정도의 내용으로는 스포라고도 할 수 없을만큼, 본 방송은 구성이 치밀하고 심리적인 묘사가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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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드라마 [펀치] 김래원, 조재현, 서지혜, 그리고 박경수 작가

 

나에게 있어 드라마가 끝나고 후유증을 앓는 경우가 흔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 <펀치>는 몇년 전 <황금의 제국>이 끝났을 때보다 조금 더한 후유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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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연출 이명우 / 극본 박경수

[개요] 드라마, SBS 2014.12.15.~2015.02.17. 19부작 방영종료

[출연] 김래원, 김아중, 조재현, 최명길, 서지혜, 박혁권 외

[소개] 다시는 오지 못할 이 세상을 건너가면서 인생과 작별하는 남자,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 박정환 검사의 생애 마지막 6개월 기록을 그린 드라마


   

박경수 작가의 전작 <황금의 제국>은 그닥 많은 이들이 보진 않았다. 그래서 드라마 얘기를 나눌 사람도 나눌 공간도 없었다.

다만 혼자서 여러 생각을 하며 세상에 대한 자조적인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는 드라마를 끝내고 대학교때 읽었던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가난에서 태어나 성공한 사람은 황금에 제국에 들어가는 일조차 금기시 되는 일인가,

나의 염세주의론은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펀치>의 결말은 박경수 작가가 절충안을 내놓은 것 같다.

 

<추적자>는 정말 현실에서는 어려운 결말을 내놓았다. 억울한 국민이 결국은 승리하는 사회를 보여주었다.

<황금의 제국>은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무리하면서 지금껏 꾸었던 꿈을 허무한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펀치>는 자기가 선택한 몫과 지은 죄에 대한 죄값을 치른다는 결론을 보여주었지만, 조건이 있었다, 정환의 죽음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몇개월 남겨둔 검사의 회환과 반성이 이룩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경의 피를 흘린 희생과 정환의 죽음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현실적인 결론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던 드라마 <펀치>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뜨끔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불편한 진실 앞에 고개를 못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용감했고 해냈다고 여겨진다. 세상을 향해 펀치 한 번 제대로 날린 것 같아서 나는 그 자체로 이 드라마가 작년 올해 들어 최고의 드라마라고 여긴다.

 

물론 정해져 있는 결말을 향해 가기 위해서 개연성이 탄탄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건 현실이 아닌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현실은 결론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 우연의 연속이며 이 우연에 해석을 얹어져 그럴듯한 합리화를 시킬 뿐. 드라마는 이미 해석된 결말로 그 전개 과정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해석이 앞뒤가 안 맞을 수 있다. 그건 드라마라는 장치가 갖는 하나의 특징이다. 이걸 두고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드라마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이 세 드라마를 본방을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드라마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지난해 11월부터 드라마 리뷰를 작성함)

<펀치>에 대한 리뷰를 한 회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이런 정성을 쏟은 이유가 무엇일까.

 

...

 

처음에 시청률이 낮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이런 드라마는 국민이 다 봐도 좋을텐데)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글을 올렸다한 사람쯤은 이걸 읽어 보다가 한 번쯤은 보겠지 싶어서.. 결국 사무실에서도 몇몇이 나의 열담에 귀를 귀울리고 중반부터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지금은 최고, 최고였어 라고 나보다 더 흥분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드라마에 열광했을까.

 

물론 첫번째 이유는 황금의 제국의 박경수 작가였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기대하며 봤다.

 

그리고 나는 의리녀이기때문에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의리를 지켰다.

박경수 작가는 절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숨가쁘게 몰아가는 뒤통수작법은 황제(황금의제국) 보다 더 잦아졌으며, 그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비유와 함축을 넘나드는 명대사 명문장들. ~~~~ 이건. 몇몇 시인과 소설가들을 다 합쳐도 나올까말까하는 종합선물셋트 같은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연기자들의 몫이다.

 

김래원, 이렇게 멋진 박정환을 탄생시키고 완성하다니...

 

펀치 마지막회의 조재현과 소주를 주고받은 영상장면의 해맑은 미소는 오래오래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는 당당함과 여유. 최고였다.

 

조재현, 그는 나쁜남자, 스캔들, 정도전, 역린 등에서 익히 최고를 인정받은 바, 연기력을 논할 필요조차도 없다.

그저 어쩌면 그렇게 구성진 사투리를 맛갈나게 구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김래원과 주고받는 대사가 어쩌면 그렇게 찰진 궁합인지. 요즘말로 하자면 케미폭발, 브로맨스의 결정판이었다.

 

서지혜, 그녀가 이렇게나 섹시했던가. 이렇게 대사를 찰지게 전달했던가. 미치겠다, 젠장.

그녀는 앞으로 연기의 폭이 몹시 넓어질 것이다.

 

그 외에도, 김아중 온주완 최명길 박혁권 김응수 이한위 등등 단 한 사람도 극의 흐름에 흡집을 내지 않았다.

 

초반에 김아중 서지혜 캐릭터가 불안불안했지만.. 김아중이 연기한 신하경이라는 캐릭터가 깨끗한 물착한 정의를 상징하다보니.. 물 흐르듯 흘렀어야 한다고 인정하자.

 

그리고 세번째는 명장면들이다.

 

드라마 <펀치>는 먹방도 아닌데 먹는 장면이 매회 나왔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이 짜장면을 먹는 신이다.

 

드라마 초반 총장실에서 영상 화면으로 태준과 정환이 마주보며 각각의 테이블에서 짜장면을 먹는 장면, 소름끼치도록 좋았다. 그리고 18회에서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기 위해서도 짜장면 집에서 만나고. 먹고.

 

그리고 최고의 명장면은 정환이 죽기 전에 태준에게 보낸 영상 장면.

 

영상 화면으로 소주를 한 잔씩 주고받는 남자들의 찐한 우정, 동지애, 애증...

~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이 두 사람의 애증 관계가 종지부를 찍는 장면이었다.

 

"총장님, 나 갈랍니다. 감옥에서 만수무강 하십시오"

 

이 역설적인 표현에서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감옥에서, 죄값을 치르시오." "그래도 만수무강, 건강하십시오."라는 정환의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유머 한 마디 "총장님, 진짜 귀마개 안 어울립니다 하하하" (조재현이 스스로 설정했다고 알려진 귀마개 소품에 대한 정환의 애정어린 농담)

~ 나는 결국, 이 장면에서 울다가 웃다가... 미쳐버리겠네요, 젠장.

 

++

 

<펀치> 드라마가... 아직도 1회부터 19회까지... 머리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황금의제국>이 끝나고도 몇달을 황금의 제국이라는 영상에서 헤어나질 못했는데.

 

다시 박경수 작가의 또 다른 펀치가 나올 때까지는 애타게 기다려야겠네요... ㅠㅠ

 

#명대사 명장면

 

1.

조재현의 이태준 검찰총장.

그의 구수한 사투리, 맛깔나는 먹방 대사, 비유와 함축이 돋보이는 명대사. 잊지 못할 것이다.

"정환이 이놈아가 약속을 지켰데이"

 

2.

김래원의 박정환 검사. ~ 저 해맑은 미소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정환씨 잘 가요~~~~ 당신은 최고였습니다~!!!!

"자기 짐은 자기가 각자 지고 갑시다"

 "총장님, 나 이제 갈랍니다~"

 

3.

짜장면을 먹는 이태준&박정환

그들의 공통점인 가난, 서민, 성공, 물거품 등등을 상징하는 음식, 짜장면.

 

4.

최연진 검사 역을 맡았던 서지혜.

정말 섹시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축하해요, 젠장

 

5.

조강재 검사 역의 박혁권. 그는 저울의 중심 역할을 한 듯 합니다.

극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적절하게 태준과 정환을 왔다갔다.. 참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량은? 마지막 방송이 그에게 정말 억울하게 되었지요.

"정환아, 나 정말 억울하다"

 

 

6.

총장님~~~ 귀마개 정말 안 어울려요~~~ (이 말, 반어법인 것 아시죠^^)

정환이 생각나고 날씨 추울 때면, 꼭 꺼내서 하세요~~~

 

++

이제 정말 <펀치>를 보내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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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신의주로 떠나지 못한 이유는

 

*

 


나는 니 고모랑 어찌 해 볼 생각이 있어서 그 사람을 신의주에 못 가게 말린 것이 아니었다.

명성관에서 한달쯤 지난 뒤에, 한달 전에 보았던 몰골하고는 백팔십도 달라진 해골이 따로 없는 몰골이 되어서, 남원역으로 가자고 했다. 신의주로 떠난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조선으로 안 온다는 것이다.

.. 그 말을 듣자 나는 안 된다고 그랬다. 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도 있고, 동생도 있고, 그리고 어디 있는지 모르는 언니도 찾고 여동생도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랬다.

 

그 사람...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참 이 양반이.. 왜 내 인생을 자꾸 간섭하고 그러요" 한다. "나를 책임질라요, 처자식 있는 사람이 그럴 수 있소?" 그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

 

그날 이후, 고모는 단 한 번도 신의주에 가지 않았다. 붙드는 고숙은 책임진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두 분은 60년이 넘게 한 집에 살았다.

고숙은 처와 자식을 두고 집을 나왔고, 고모는 그렇게 평생 처녀 호적이면서 자식 하나 얻지 못했지만,

남원 땅의 최고의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다.

 

고숙은 그날 명성관에서 "나를 책임질라요"라는 고모의 말을 가슴에 새기셨는지.

 

한 맺힌 고모의 원망과 미움이 그대로 서려 있는 죽음이지만, 고모의 엄마의 주검을 자식 손에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유교적 절차와 형식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거두게 하였고,

다 죽어가는 고모의 언니 내외를 찾아서, 언니의 남편을 비명횡사하지 않도록 돌보면서 길바닥에서 죽지 않게 하였고. 그 언니는 마지막 생애를 고모와 한집에서 십여 년 살다가

결국은 나랑 한 방에서 주무시다가,  옆에서 잠자듯이 평온하게 가시게 하였고.

막내 여동생을 찾아 내서 운봉으로 시집 보내고, 아들 딸 다복하게 많이 나아서 잘 건사하게 하였다. 그 후손들이 아직도 지리산 자락 어디쯤에서 훈장님을 하고 계신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팔순이 넘으신 고모 내외가 우리 아버지 장례를 온갖 정성을 다해 치러 주셨다.

그렇게 가실 분들은 가신 분들대로 뒤치다꺼리를 다 해 주셨고.

고모의 열도 넘는 조카들의 대소사 행사에 참석하시어 위엄이 넘치는 그래서 더욱 자리가 빛나게 되는 어르신의 면모를 다 보여 주셨다.

 

고모의 생애에 고숙은, 결코 손해나는 오지랖이 아니었다.

고숙의 생애에 고모는, 결코 손해나는 여인이 아니었다.

 

두 분의 만남은 곧 연리지이다. 둘로 태어나 하나가 된 나무, 나무님.

 

고전소설 중에 김시습의 이생규장전이 있다.

남녀의 인연으로는 삼생의 인연이 있단다. 전생, 이생, 후생의 인연. 그 삼생이 다 이루어졌을 때.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된단다. 그래서 이생은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내를 현처처럼 돌보았고, 그녀가 명부로 떠나자 그녀를 따라 떠나면서 마지막 후생의 사랑을 완성하려 했단다.

 

고모와 고숙은 아마도 전생에 자식을 많이 두었나 보다. 나도 그 자식 중에 한 명일 것이고.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고모의 자식이다. 이렇게 거두고 거둔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아마도 이생에서는 자식이 없었나 보다

 

고숙과의 금슬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을 만큼 고숙의 사랑은 엄청났으니 말이다.

 

태어나야 할 자식들이 엄마 아빠를 시샘하여 잉태되지 않았으리라.

 

고모 고숙이여, 후생에서는 둘 만의 아이를 꼭 낳으셔서 후생의 평범하고 소박한 사랑 이루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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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고모는 내가 자기를 붙든 것이라고 한다. 그날 여원재를 다녀 온 이후, 지금까지 남원에 살게 된 것이 나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신의주를 못 가게 했고, 내가 처량해 보여서 고모가 남아 준 것이라고 한다.

 

거참,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니 고모는 명성관에 머무르는 동안 아편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나는 그게 못할 짓이라고 날마다 찾아갔다.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볼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알아볼 때는 울기만 했다.

울고 또 울고.

그렇게 한 달이 넘은 것 같다. 나는 날마다 그 사람을 찾아갔다.

그 사람이 나를 붙든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책임이라도 져야할 사람처럼, 그렇게 날마다 찾아가서, 술도 뺏고, 아편도 못 피게 하고 그랬다.

그러던 몇날 며칠이 지나고, 니 고모가 자기를 책임질 수 있냐고 했다.

멍 하더구나. 내가 그 사람을 책임질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고숙은 말을 멈추고 잠시 수돗가 펌프를 응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여원재에서 넘어와서 그 길로 신의주를 바로 갔더라면,

내가 무슨 오지랖으로 그 사람 삶에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남자 만나서 더 행복했을라나... 싶기도 하고.

 전처 부인을 죽인 여자라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고, 전처 자식들 눈치 보면서 명절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집안 대소사 지내면서, 첩이라는 속닥거리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다.

 

   

   - 팔십 평생 호적에 처녀 인생, 우리 고모만 가엽구나 가엽구나

   - 눈 맞은 남자 하나 육십 평생 같이 해도 호적은 남남어허 어허라

 

...

 

우리 고모 왈.

 

나의 친할머니께서 다른 집으로 아들 하나 낳아 준다고. 재가하러 가야한다고당신이 낳은 딸 셋 중에 위로 두 딸을 모두 각각 남의 집에 식모로 팔아버리고 그렇게 인월로 들어갔더란다

인월에 가서 아들 하나 낳고는 남편이 죽어버리니 생고생 개고생 지옥고생 한다는 소식이 들렸더라.

열 두살에 남의 집에 식모로 팔려가서, 육년 살이 생고생 개고생 끝에 콧물 닦고 눈물 쏟아 모은 돈으로

새롭게 살아본다고아편쟁이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단다.

 

그 길로 신의주로 넘어갔다가, 삼년 만에 옷때깔 몸때깔 사람때깔 사방천지 알아보는 이 없을 정도로 요조숙녀 뺨치고 신여성 저리가라는 모양으로 남원 땅에 내려왔단다.

 

여원재 고개 넘어, 니 할매 만나서 욕한바가지 실컷 퍼붓고, 떡살가루 눈 가득 쌓인 곳에 열두 살 어린 한을 쏟아버리고 나올라 했단다. 그런데, 니 아버지, 어린 동생 보고, 그 못사는 살림살이 보니, 어찌도 사는게 원망스러운지 모르겠더란다. 그 길에 차안에서 확 죽어버릴까 그 일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벌써 남원역이란다.

그길로 바로 신의주로 돌아갈까 망설이며 기차를 기다리다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꾸만 뒷골이 당기더란다.

인월에서 이 할망구나 나를 못가게 하는 것이구나- 했단다. 있는 정 미운 정 모두 잘라버리고 돌아서려는데,

자꾸 뒷통수가 뜨겁더란다.

역사에서 나와 보니, 그 택시 자동차가 그대로 있더란다.

 "저 양반이... .. 요상한 일이네. 내가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저 양반이 있네..."

 

남원에 왔다가면 고모 인생술술 풀릴거라 여겼단다.

열두 살에 자신을 팔아버린 모질고 인정머리 없는 모정만 끊어내면 새 삶을 살 것이라 여겼단다.

그런데... 에고 에고... ..." 이 소리를 육십 평생 하며 살 줄이야, 그때 어찌 알았더냐.."

 

우리 고모, 한숨마다 섞어 가며 하신 말씀이다. "내가 그때 인월을 왜 갔다냐.“

 

(6회차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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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소감_세 문장

 

사랑에 모양이 있을까? 그 모양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 모양은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같은 형태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나 그 어떤 사랑도, 그 모양은 아름답고 슬프고 기괴하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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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개요] 드라마, 판타지, 멜로, 스릴러, 전쟁/ 미국/ 2018/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리차드 젠킨스, 옥타비아 스펜서, 마이클 스틸버그, 더그 존스

 

#영화를 보면서

 

삶은 달걀, (빗물, 물방울), 음악, 농아(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물고기, 사랑, 붉은 색, 녹색, 1906년대 배경, 옛날 TV, 흑백 영화, 영화관. 이 모든 소재들이 하나의 스토리(주제)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의 모양은 정의 내릴 수 없다. 사랑하는 그대가 곁에 있을 때 사랑의 모양은 존재하고 완성된다. 그리고 물속에서의 사랑(혼자 할 때도 그렇고, 두 사람이 할 때도 그렇고)은 원형적이면서도 가장 본능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 그것은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의 움직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흐르는 물방울의 모양()은 정자의 유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난자와 수정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모양이기도 하고, 아무 모양이 아니기도 하지만. 분명 사랑의 온도를 느끼게 해 주는 무엇이었다.

물의 모양이 존재하지 않고, 그릇이나 외부의 형체에 의해서 달라지듯이.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구와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모양도 빛깔도 향기도 다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닮은 사람, 사람 같지만 물고기인, 그런 괴생명체가 이토록 황홀하게 아름답고, 눈부시게 매력적이어도 되는가. (배우 더그존스가 입은 괴생명체 슈트는 정말 매력적이며 신비한 힘을 지녔다. 아니 섹시함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괴생명체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나. 나는 이 영화를 10점 만점에 9점을 주었다. 엘라이자 역할의 샐리 호킨스와 괴생명체인 더그 존스의 분량과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냉전, 전쟁, 국제적인 이권 다툼 등에 대한 설명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두 사람의 시간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고 하지만. 청소년들도 이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꼭 보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생길 정도다.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면 어떻고. 말 못하는 농아이면 어떻고. 상대가 괴생명체이면 어떤가. 눈빛과 표정과 몸짓으로 뜨거운 심장의 울림과 진심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게 사랑인 것을.

 

전체적인 색조와 분위기, 음악, 스토리의 흐름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1970년대 명화극장을 주말마다 보고 있을 때의 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스며들었다. 이 영화를 과연 판타지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괴생명체의 신비한 모습과 신비한 능력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사실주의 묘사에 가깝다. 우리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과학과 현실이 각박해지면 해질수록 ’, ‘종교’, ‘마술’, ‘기적등에 의지하지 않는가. 이 영화 속의 괴생명체는 아마존의 신일수도 있고, 우리 본성에 내재하는 순수일 수도 있고. 어찌할 수밖에 없이 표출되는 사랑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요즘 녹색이 대세야라는 대사가 등장하며 미래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녹색은 자칫하면 바다의 썩은 녹조를 닮아 버린다. 영화 초반부 조력자인 자일스가 혼신의 힘으로 그려 낸 명화의 중심에 붉은 색 파이를 그렸다가 기획자의 비난을 받는다. 생명, 사랑, 뜨거운 열정, 인간애 등이 난도질당하는듯이 버려진 인상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 엘라이자가 사랑의 감정이 생긴 후로 녹색에 대한 반발과 구속되지 않은 자유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초반부의 녹색의 헤어밴드와 모자가 중반부부터는 붉은 색으로 바뀐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사랑의 절정과 종반부를 향해 가면서. 붉은 색 외투, 구두 등으로 완벽한 붉은 색을 구사하면서. 청록색(또는 녹색)과 미래의 자본을 상징하는 듯한, 스트릭랜드가 뽐내기 위해 구입한, 그 잘난 캐딜락을 부셔 버린다. 이렇게 작가는 드러내 놓고, , 생명, 심장, 사랑, 뜨거움 등을 상징하는 색으로 붉은 색을 선명하게 활용한다.

 

나는 샐리 호킨스를 좋아한다. 아니 그녀의 매력에서 빠져 나오고 싶지가 않다. 그녀는 영화에서 대사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눈빛, 표정, 동작, 몸짓, 침묵, 그리고 완벽한 수화 대사. 이보다 더 다른 것이 필요할 수 있을까 싶게 그녀는 캐릭터에 몰입하고 관객들이 집중하게 한다.

 

나는 버려졌었고.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있고. 그럼 나도 괴물인가요?”

 

괴생명체를 구출하기 위해서 화가 자일스를 설득할 때. 그녀는 소리 없는 웅변을 했다. 어느 웅변의 목소리보다도 더 크고 더 힘차고 더 분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표현했다.

그 심장을 떨리게 하는, 그녀의 표현과 동작은. 슬프고도 강렬했다.

 

이 모든 감동은 영화를 봐야만 알 일.

아름답고 기괴하며 슬프고도 매력적인 영화.

이 영화 강력 추천합니다.

 

(영화 내 사랑도 제가 강력하게 추천했었지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에 대한 표현 과정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 샐리 호킨스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메시지는 어쩐지 꼭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꼭 보십시오.)

 

#영화를 보고 난 후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과연 어떤 관람 평을 할까. 겨우 설득해서 함께 갔는데 영화가 실망스러우면 어떡하지. 그냥 혼자 볼 걸 그랬나. 그냥 뻔한 스토리면 어떡하지.

 

정말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하고 갔다.

그리고 지금, 영화가 끝난 후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영화의 감동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어땠어? / 아주 좋은데.

- 판타지 싫어하잖아 / 이건 판타지가 아닌 것 같고, 메시지가 뚜렷하잖아.

- 사람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 좋은 영화라서 볼 것 같은데.


이런 대화를 나누며. 당일 영화 관람 티켓만 있으면, 원래 가격의 50프로도 안 되는 값으로 제공해 주는 음식을 프라이데이에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삶은 달걀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 영화 관람 이후. 꽤 새로운 시선과 느낌으로 삶은 달걀을 대할 것 같다. 조금은 생명력 넘치는 대상으로, 조금은 더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금 야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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