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소감_세 문장

 

사랑에 모양이 있을까? 그 모양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 모양은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같은 형태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나 그 어떤 사랑도, 그 모양은 아름답고 슬프고 기괴하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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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개요] 드라마, 판타지, 멜로, 스릴러, 전쟁/ 미국/ 2018/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리차드 젠킨스, 옥타비아 스펜서, 마이클 스틸버그, 더그 존스

 

#영화를 보면서

 

삶은 달걀, (빗물, 물방울), 음악, 농아(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물고기, 사랑, 붉은 색, 녹색, 1906년대 배경, 옛날 TV, 흑백 영화, 영화관. 이 모든 소재들이 하나의 스토리(주제)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의 모양은 정의 내릴 수 없다. 사랑하는 그대가 곁에 있을 때 사랑의 모양은 존재하고 완성된다. 그리고 물속에서의 사랑(혼자 할 때도 그렇고, 두 사람이 할 때도 그렇고)은 원형적이면서도 가장 본능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 그것은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의 움직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흐르는 물방울의 모양()은 정자의 유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난자와 수정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모양이기도 하고, 아무 모양이 아니기도 하지만. 분명 사랑의 온도를 느끼게 해 주는 무엇이었다.

물의 모양이 존재하지 않고, 그릇이나 외부의 형체에 의해서 달라지듯이.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구와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모양도 빛깔도 향기도 다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닮은 사람, 사람 같지만 물고기인, 그런 괴생명체가 이토록 황홀하게 아름답고, 눈부시게 매력적이어도 되는가. (배우 더그존스가 입은 괴생명체 슈트는 정말 매력적이며 신비한 힘을 지녔다. 아니 섹시함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괴생명체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나. 나는 이 영화를 10점 만점에 9점을 주었다. 엘라이자 역할의 샐리 호킨스와 괴생명체인 더그 존스의 분량과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냉전, 전쟁, 국제적인 이권 다툼 등에 대한 설명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두 사람의 시간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고 하지만. 청소년들도 이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꼭 보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생길 정도다.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면 어떻고. 말 못하는 농아이면 어떻고. 상대가 괴생명체이면 어떤가. 눈빛과 표정과 몸짓으로 뜨거운 심장의 울림과 진심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게 사랑인 것을.

 

전체적인 색조와 분위기, 음악, 스토리의 흐름이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1970년대 명화극장을 주말마다 보고 있을 때의 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스며들었다. 이 영화를 과연 판타지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괴생명체의 신비한 모습과 신비한 능력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사실주의 묘사에 가깝다. 우리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과학과 현실이 각박해지면 해질수록 ’, ‘종교’, ‘마술’, ‘기적등에 의지하지 않는가. 이 영화 속의 괴생명체는 아마존의 신일수도 있고, 우리 본성에 내재하는 순수일 수도 있고. 어찌할 수밖에 없이 표출되는 사랑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요즘 녹색이 대세야라는 대사가 등장하며 미래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녹색은 자칫하면 바다의 썩은 녹조를 닮아 버린다. 영화 초반부 조력자인 자일스가 혼신의 힘으로 그려 낸 명화의 중심에 붉은 색 파이를 그렸다가 기획자의 비난을 받는다. 생명, 사랑, 뜨거운 열정, 인간애 등이 난도질당하는듯이 버려진 인상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 엘라이자가 사랑의 감정이 생긴 후로 녹색에 대한 반발과 구속되지 않은 자유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초반부의 녹색의 헤어밴드와 모자가 중반부부터는 붉은 색으로 바뀐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사랑의 절정과 종반부를 향해 가면서. 붉은 색 외투, 구두 등으로 완벽한 붉은 색을 구사하면서. 청록색(또는 녹색)과 미래의 자본을 상징하는 듯한, 스트릭랜드가 뽐내기 위해 구입한, 그 잘난 캐딜락을 부셔 버린다. 이렇게 작가는 드러내 놓고, , 생명, 심장, 사랑, 뜨거움 등을 상징하는 색으로 붉은 색을 선명하게 활용한다.

 

나는 샐리 호킨스를 좋아한다. 아니 그녀의 매력에서 빠져 나오고 싶지가 않다. 그녀는 영화에서 대사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눈빛, 표정, 동작, 몸짓, 침묵, 그리고 완벽한 수화 대사. 이보다 더 다른 것이 필요할 수 있을까 싶게 그녀는 캐릭터에 몰입하고 관객들이 집중하게 한다.

 

나는 버려졌었고.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있고. 그럼 나도 괴물인가요?”

 

괴생명체를 구출하기 위해서 화가 자일스를 설득할 때. 그녀는 소리 없는 웅변을 했다. 어느 웅변의 목소리보다도 더 크고 더 힘차고 더 분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표현했다.

그 심장을 떨리게 하는, 그녀의 표현과 동작은. 슬프고도 강렬했다.

 

이 모든 감동은 영화를 봐야만 알 일.

아름답고 기괴하며 슬프고도 매력적인 영화.

이 영화 강력 추천합니다.

 

(영화 내 사랑도 제가 강력하게 추천했었지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에 대한 표현 과정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 샐리 호킨스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메시지는 어쩐지 꼭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꼭 보십시오.)

 

#영화를 보고 난 후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과연 어떤 관람 평을 할까. 겨우 설득해서 함께 갔는데 영화가 실망스러우면 어떡하지. 그냥 혼자 볼 걸 그랬나. 그냥 뻔한 스토리면 어떡하지.

 

정말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하고 갔다.

그리고 지금, 영화가 끝난 후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영화의 감동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어땠어? / 아주 좋은데.

- 판타지 싫어하잖아 / 이건 판타지가 아닌 것 같고, 메시지가 뚜렷하잖아.

- 사람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 좋은 영화라서 볼 것 같은데.


이런 대화를 나누며. 당일 영화 관람 티켓만 있으면, 원래 가격의 50프로도 안 되는 값으로 제공해 주는 음식을 프라이데이에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삶은 달걀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 영화 관람 이후. 꽤 새로운 시선과 느낌으로 삶은 달걀을 대할 것 같다. 조금은 생명력 넘치는 대상으로, 조금은 더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금 야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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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팬서]

 

아프리카 원시성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대자연과 폭포에서의 액션 씬  

 

#소감_세 문장

 

아프리카의 자연, 리듬, 육체, 여성성 등의 어휘가 영화 관람 후에도 계속 머물러 있다. 아이언 맨을 꽤나 좋아했던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영화다. 아프리카의 폭포 절벽 끝에서 이루어지는 육탄전, 부상열차 옆에서 싸우는 두 블랙 팬서의 스타일리쉬한 의상과 그에 걸맞는 액션 씬 등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감독] 라이언 쿠글러

[출연] 채드윅 보스만, 마이클 B.조던, 루피타 뇽, 마틴 프리먼, 다나이 구리라

[개요] 액션, SF, 드라마, 2018 미국, 12세 관람가

 

 

#영화를 보기 전에

 

마블은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가? (여기 영화에서도 한국의 부산이 나온다고 하던데.)

아이언 맨만큼의 다채롭고 깔끔한 슈트 의상이 제작되는가?

최근 몇 년 동안은 어벤져스, 히어로 등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보질 않았는데. 재미가 있으려나?

 

 

#영화를 보면서

 

아프리카의 대자연, 리듬, 원색, 모래, 표범, 여성의 힘을 고스란히 느끼는 기분. 마블 영화에서 이런 스타일이 흔한 일이던가,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인가 싶다.

나는 북소리를 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내내 원시적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도 좋았고, 액션도 좋았다.

 

인류는 앞으로 어디로 흘러 가는가. 그곳은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그 근원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작가는 던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과 동시에 희귀 금속 비브라늄을 보유하고 있는 와칸다.

그곳의 왕좌를 얻기 위한 싸움과 왕좌에서 앉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던지고 있는 와칸다.

 

와칸다의 왕자 티찰라는 스스로 왕좌의 자리를 되찾고, 블랙 팬서로서의 의무도 잊지 않으면서. 희귀 금속 비브라늄을 보유한 나라의 숙명이 무엇인지 찾아 낸다.

 

여타 히어로, 어벤져스 영화보다는 속도감과 파괴력이 약하다. 그러나 그런 면들에서 나는 높은 평가를 한다. 대자연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티찰라의 행보와 아프리카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생각이다.

원시적인 것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는 것. 아름다운 자연을 유지하면서 최첨단 기술력을 발휘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세계 인류가 앞으로 해야 할 모든 과업의 기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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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살인자의 기억법

 

#소감_세 문장 :

 

영화적인 연출과 문학적인 행간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그 간극을 채우는 일이 관객의 몫이라면 기꺼이 수용하리라. 영화 보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소설을 책상 위에 두고는 읽지 않았다.

 

 

[개요] 범죄, 스릴러, 2017, 15세 관람가

[감독] 원신연

[출연] 설경구, 김남길, 설현

 

 

 

#배우 설경구

 

 나는 설경구의 팬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 관람도 스토리 및 연출에 대한 관심보다는 설경구라는 배우가 '김병수'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는지 관객의 몰입에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 알고 싶어서. 기대감을 갖고 본다.

그런데 관객인 내가 김병수에 몰입되는 정도보다 배우인 설경구가 캐릭터 김병수에 몰입하는 정도가 더 큰 것 같다. 한편으로 그의 연기와 연기를 위한 노력에 대단하다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마음마저 들고 만다.

그는 왜 이토록 연기에 몰입하고 마는가, 아니 왜 이런 어려운 연기에 자신을 몰아넣고 마는가, 캐릭터의 괴기스러움과 자책감, 딸에 대한 부성애, 심리적인 압박감 등이 무겁게 다가온다.

영화적인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매듭짓기 위해서는 민태주(김남길 분)의 사연이 불가피했나 보다.

후반부 민태주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독백하는 부분은 어쩐지 김병수만의 스토리적인 부분과 심연의 고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매듭지으려는 강박적인 조급함을 버리고. 김병수만의 잃어가는 기억과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가는 기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천착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냈다면. 이 영화는 더 큰 재미와 여운을 남겼으리라.

그리고 민태주는 그런 김병수의 기억을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악인역할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비중을 나름 균형 있게 안배하려다 보니 영화적인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지고 밋밋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는 간만에 스릴러 영화 한 편 재밌게 보고 왔다고, 위안을 만든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의 농담을 마주친다. 결코 웃을 수 없는 농담을 말이다.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너무나 적확한 표현에 유쾌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간담이 서늘해진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사금파리보다 더 날카롭게 빛나는 한마디에 으스스해질 정도다.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살인 행위와 살인의 과정을 생생한 언어로 비유한다.

시인이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인 것처럼 주인공 '병수'는 실제로 그렇게 숙련된 킬러이다.

 천부적인 살인자,

살인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그런 그가 치매를 앓는다,

그리고 혼돈이 시작된다죄의식 하나 없는 인간이 의식과 기억 사이를 오고 가며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다 기억하려고 애를 쓸수록 그것은 무의미한 망상에 불과하다.

은희를 살리기 위해, 은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는 의식은 이미 무의식의 지배에서 농락당한 또는 패배당한 망상일 뿐이다 .

간결하고도 명료한 빛나는 문장들로 이루어낸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영화와 문학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서로 같을 수도 없고, 같은 빛깔이 되어서도 안 되는고유의 영역이다. .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따로따로 아름답다.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김영하 작가는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에 방문하고 온 것 같다.

글 쓰는 일을 여행에 비유했던 것만큼 그만의 글여행 경험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아주 좋은 작품을 읽었다. 신선했다.

농담의 공포, 악마적인 재능과 허물어가는 인간의 의식 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고통.

 

(없다, 비다, 아무것도 아니다)의 세계로 돌아가는 인간의 마지막 여정 .그 망가지는 인간 기억의 여정을 참으로 빛나는 언어로 잘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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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조용한 열정

 

[개요] 드라마, 2015 벨기에/영국, 12세 관람가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

[출연] 신시아 닉슨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는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은 영화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다룬 예술 영화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전국에 몇 곳 없어서, 겨우 서울 명동역 CGV에서 자리를 찾아 비싼 값을 치르고 보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동네에서 상영도 안 한담. 시에 관한 얘기, 시인의 생애에 대한 다큐 같은 내용? 너무 지루하고 졸립거나, 너무 이해할 수 없게 난해하면 어떡하지.

 

그만 기우(杞憂)에 그칠 쓸데없는 걱정을 혼자 다 하면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를 보면서

 

, 내가 오늘 새로운 별명을 하나 얻겠구나.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그렇게 처절하게(언성을 높이며) 여성 인권에 대해서 대변할 일이 아니었어. 이 영화를 함께 보는 지인(知人)들은, 나를 떠올리겠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내가 계속 겹쳐지는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신경질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심오한 설득력. 내가 어쩐지 그녀를 약간 닮은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무엇보다 인물의 생각과 그 생각을 피력하는 방식이 좋았다. 독설로 가득 찬 분노는 더욱 좋았다. (나도 정말 특이한 취향을 지닌 사람이다.)


한 생애의 비애, 고독, 엄격함, 은둔자의 냉정함 등을 처절하게 도려내는 듯이 날카롭게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화법. 맘에 들었다. 에둘러 얘기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한 감독의 작법이 좋았다.
혹자는 인물의 생애를 연대기적 구성으로 지루하게 구성-연출했다 할 수도 있겠지만
에밀리의 생애에서 가족, , 사색, 죽음, 고독, 냉정함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다 보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두 시간 동안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배우 신시아 닉슨(에밀리 디킨슨 분)의 열정이 크게 한 몫 했다 여긴다.
특히 창가를 보며 사색에 잠기는 모습, 종교에 대한 깊은 성찰, 가족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때의 그녀의 모습, 등등은 그 자체로 시인인 듯한 몰입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어쩌면 제목처럼,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꽤나 묵직하고 깊은 열정을 치열하고 가혹하게 뿜어냈는지도 모르겠다.

뜨겁지 않으면서 소용돌이치는 열정이 더 날카롭게 더 단단하게 내면을 담금질하는 듯한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녀의 고독과 아픔이 어쩐지 고스란히 내것인 냥, 강한 몰입감으로 느껴졌다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내 안에 그런 깊은 슬픔과 고독이 있다는 것일까. 그건 정말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말이다.
시인의 삶이라 하여, 지고지순한 삶이라 하여, 저토록 처절하게 냉혹하고 냉담하고 고독할 필요도 없을텐데 말이다.

꽤나 오래도록 가슴 시림이 남게 하는 영화였다.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

 

19세기와 20세기의 감수성을 연결하면서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냈던 미국 시인.

청교도 집안에서 정치인 아버지 아래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성경과 신화,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즐겨 읽었다.

거의 매일 시를 지어서 작품 수가 2000여편에 달하지만, 생전에는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디킨슨의 시는 17세기 형이상학파 시풍을 닮았지만, 그녀의 간결한 스타일과 이미지즘적 경향은 매우 현대적이다.

주로 슬픔과 죽음을 소재로 다루었고, “냉정하고 고독한 은둔자의 깊은 비애를 노래했다.

<출처 :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밀리 디킨슨, 민음사, 2017)>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편 ;

 

저 하찮은 돌멩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행복할까 저 하찮은 돌멩이들은

길 위에 홀로 뒹구는,

성공을 걱정하지도 않으며

위기를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

그의 코트는 자연의 갈색,

우주가 지나가며 걸쳐 준 것

태양처럼 자유로이

결합하고 또는 홀로 빛나며,

절대적인 신의 섭리를 지키며

덧없이 꾸밈없이 -

 

 

- 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시이다.

 

 

#사족(蛇足)

 

아주 오래도록 만남을 유지하는 지인들의 모임이 있다.
그분들과 오늘(2017.12.03.) 12시에 영화를 보았다. 아침 1030분에 만나서. 가벼운 아침을 먹고 말이다. 워낙 이벤트를 잘 준비하시는 총무님 덕분에 이번 영화 감상도 특별했다.
이 총무님은 우리들의 부족한 문화 욕구를 자주 꽤나 멋지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다. 그분 덕에 아주 색다른 경험을 큰 어려움 없이 하곤 한다.

오늘은 서울 명동역 8번 출구에 있는 명동 CGV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조용한 열정'[더스페셜패키지]로 보았다. 매표소는 11, 영화관은 10(일반적이지 않은 시스템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페셜패키지의 내용은, 영화 관람+씨네 라이브러리 1시간 +시집1, 영화포토 엽서, 시집만들기 재료 등으로 푸짐했다.
정말 오늘 처음 경험한 씨네 라이브러리는 기묘한 설렘을 가득 안겨 주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으로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곳 씨네 라이브러리는 나에게 신세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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