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고모와 고숙의 만남, 사랑, 생애

 

1. 펌프 마중물처럼

 

고모. 고모는 왜 고숙이랑 살아요?”

고숙은 왜 고모랑 살아요?”

 

오늘 또 질문을 시작한다. 나는 왜 자꾸 이 질문을 할까.

국민학교 4학년 열두 살짜리가. 애어른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야.

아홉 살에 학교를 들어가서 조숙한 병에 걸려서 그런가. 어린 것이 학교 도서관 책을 모두 다 읽어서 그런가. 마룻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다가 또 질문병이 도지고 말았다.

 

고모는 왜 고숙이 좋아요?” 또 묻는다. 그러자 고모는,

아 이년아, 사람이 좋으니까 살지. 왜 좋아가 어딨어. 근디 허구헌날 왜 자꾸 그렇게 물어 쌌냐 이?”

육십이 넘은 고모는 내 옆에서 담배를 연신 피워 댄다.

 

에구, 오늘도 시원한 답을 듣기는 글렀그만.’

쇳덩어리인데다가 몸매가 매끈하니 참 잘 생긴 저 놈의 펌프. 아따, 펌프질을 해서 물이나 한바가지 시원하게 올려야 쓰겄다.

 

어린것이 발랑 까져서는, 저것을 몸뚱아리라고, 그리고 또 잘 생겼다고 하다니. 너무 연속극을 많이 봤어.’

 

어제도 펌프 몸통을 끌어안고 만지면서 '딱 좋게 잘생겼다' 했다가 고모에게 구박을 들었었다. 아주 딱 좋은데. 강아지 안듯 안으면 딱 좋은데. 고모는 맨날 날 뭐라 한다.

 

고모는 대답을 잘 안 한다. 어쩔 땐 그냥 '밥 마이 먹고 어서 커서. 고모만치 나이 먹으면 다 알게 되는디. 뭘 물어싸'만 한다.

내가 육십까지 살지 안 살지도 모른디 그런다.

그러다 고숙에게 묻고 말았다. 내 질문병이 참지를 못했다.

 

그날 무슨 날인지 고숙이랑 나랑 둘이서만 마루에서 시원하게 수박을 먹고 있었다.

고숙의 잘 생긴 백발이, 정말 물결치듯이 은빛으로 빛나는 백발이 아주 맘 먹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날.

 

남원에서 우리 고숙 백발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도 있지.’

 

아무튼 우리 고숙이- 나보다도 육십이 더 많으신 우리 고숙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

 

고숙은 고모 언제 만나셨어요. 고모가 참 예쁘셨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할아버지 같고, 점잖게 입 다무시고, 근엄한 얼굴이라서. 나는 고숙이 언제나 무섭고 어려웠다. 최불암 같은 아저씨 얼굴인데, 그 아저씨처럼 웃거나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래서 평상시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먼저 말도 잘 못 부치던 나는, 무슨 용기가 나서 그날은 고숙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 앉으면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고모집에는 사진첩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키 작은 병풍들이 많았다. 내 배꼽까지에 닿는 창문 가리개 같은 한쪽이 6폭짜리인 키 작은 병풍들.

책 한 면만한 크기에 젊은 여자가, 웃지 않은 얼굴인데, 웃음이 있는 것 같은 예쁜 얼굴로 있었다. 사진마다 서양옷으로 각기 다른 옷차림, 다른 모자. 그렇게 고모집에 있는 키 작은 병풍들은 모두 고모 사진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신식여성처럼 보이는 옷차림. 대개가 흑백사진으로 멋진 여성- 신여성같은 여자가 고모였다.

 

우리 고모가 1915년생이니까. 참말로 앞서간 여성이었지. 담배도 잘 피고. 옷도 멋져 부리게 잘 입고.’

 

고모는 사진이 많았다.

 

젊은 날 처녀 시절, 사진작업에 참여 - 요즘으로 말하자면 - 패션 모델로 주로 화보를 촬영 했다. 150센치 조금 넘는 아담한 키, 계란처럼 잘쭉하니 둥근, 모나지 않은 얼굴. , , , , 달인의 손끝에서 잘 빚어진 송편마냥, 절대로 기계로 빚어진 느낌이 나지 않는, 아담하니 서로 조화를 잘 이루며 균형있게, 얼굴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고모는 당신의 젊은 날의 초상으로 사진을 보물처럼 끌어 안고 사셨다.

그 옷차림의 자태는 완벽했다

흐트러짐이 없는데도 꾸미지 않은듯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작고. 담배도 많이 피는 할머니라니. 욕쟁이처럼 욕도 맨날 하고.

고숙은 그런 고모가 지금도 좋으신가.

고모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 주시니 말이다.

찬장에 있는 그릇도 꺼내 주시고. 시장 가서 동태도 사다 주시고.

마늘도 까 주시고. 우엉도 다져주시고. 만두도 빚어 주시고. 세수대야에 물도 받아다 주신다.

고모가 맨날맨날 좋으신갑다.

 

...

 

드디어 고숙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니 고모를 두 번째 만났던 날은, 내가 먼저 고모를 찾아간 것이다.

인월로 내가 찾아간 것이지. 마중을 간 셈이지.”

 

 

(2회차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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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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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두장씩만 읽었다. 내게 시린 모습으로 다가오는 소년을 어떻게 맞이해야할지, 자신이 없다. 모른척 했거나, 아무말없이 가만있는것은, 나 또한 어긋난 역사에 동참했거나 한편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소년은 한발한발 들어오고있다. 우리들의 불편한 침묵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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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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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조금 어려워서... 읽고 또 읽고 했으나. 아직도 어렵다. 역시 시 언어에 내포된 의미는 깊은 성찰이 있거나, 찰나의 감정에 대한 순도 백프로의 공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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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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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7월에 구입해서 두고두고 읽고 있습니다. 이책은 아들에게 주려고 맘 먹은 책입니다. 7년뒤, 아들이 서른이 되면 내나이 오십칠세가 됩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도 이책의 주인공 아들과 엄마처럼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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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여행 -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아름다움 프리미엄 가이드북
오주환.오석규 지음 / 상상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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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와 건축. 이제 시작하는 공부를 위해 우리 문화부터 살펴보는 여유의 시간을 찾는다. 그렇게 시작한 책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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