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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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인 2011년에 이스라엘에서 처음 발표되었던 책인데, 2014년에 영문판이 나오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다음해인 2015년에 번역 소개되어 당시 서점가를 휩쓸었던 책이다.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1976년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이다. 현재 40대 중반이니까 이 책은 겨우 30대 중반에 썼다는 얘기인데... 대단하다. 원제 역시 'Sapiens'이고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제목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총균쇠의 아류작 수준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총균쇠에서 검증했던 인류의 차별적 성장이라는 역사적 흐름에 관한 통찰력이 이 책에서 다루고있는 내용을 지탱하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훨씬 폭넓은 관점에서 날카롭고 새로운 시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마치 '대부1'을 뛰어넘은 '대부2'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동안 무수히 나왔던 다른 역사책들이나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에서 이미 수없이 다루었던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의 반복에 불과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에 관한 에피소드는 벌써 몇번째 읽는 이야기인지도 모를 정도다. 하지만 최초에 인류가 생성된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만큼 깔끔하고 흥미롭게 정리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인간의 역사는 마치 '라쇼몽'처럼 특정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여러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넓혀가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멀리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중간중간 필요할 때마다 살짝 깊이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흐름에 집중하면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잘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일 수도 있는 저자의 주장들이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면서 강력하게 다가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이다.


초반부에 저자가 농업혁명으로 인해 과연 인간들의 삶이 예전 수렵채집의 시절보다 나아졌는가? 라고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편하게 살아간 줄 알았는데 사실상 더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아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많은 베스트셀러들 중에 초반부 강한 충격요법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서술법을 쓰는 책들이 많다. 예를들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경우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은 알고보니 엉터리였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서는 일본인들은 지하철에서도 대부분 책을 읽을 정도로 근면하다고 알고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웬걸 전부 눈감고 자고있더라... 우리랑 다를바 없더라...라고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통념을 정반대로 깨면서 관심을 확 끌어들이고 그 여세를 몰아서 서서히 본인의 주장에 동조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책이든 강연이든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긴 하다. 다만 그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와 충분한 자료조사가 뒷바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단순히 관심을 끌기위한 목적으로 어설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저자가 결코 허술하게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기존의 통념을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과학적 증거나 통계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충분히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듯한 만족감도 높다.



일단 저자가 글을 정말 재미있게 잘 쓴다.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임에도 너무나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총균쇠를 읽을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안들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고등학생인 내 딸아이도 꼭 읽어봤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알기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번역도 아주 좋다. 군데군데 오래된 인용문들의 말투라든지 센스있는 주석들이 가독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지금 현재 나의 삶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가치있는 삶, 그리고 행복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 말이다. 역사책을 읽었는데 마치 훌륭한 자기계발서를 읽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이 쓰여진 후 또다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했고 계속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저자도 결국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현 시점의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역사를 통해 되돌아봄으로써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색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던 것 같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어쩌면 근미래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야말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스트리밍, 전기차의 시대가 아닌가...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테슬라... 이런 거대기업들이 합병을 거듭해서 나중에는 '구글 유니버스'같은 미지의 존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아뭏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을때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들이 가득하며 저자가 제시하는 화두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들과 뒤늦은 깨달음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특히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큰 딸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할텐데 과연 읽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책 열심히 읽어도 아이들은 여가시간에 스마트폰밖에 안보니까... 어른이 모범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 그대로 이것 또한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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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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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만화책이고 작가 역시 유태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만화책을 '코믹스'보다는 '그래픽노블'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결국은 똑같은 말이고 성인 독자들을 겨냥한 좀 더 고상한 표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마블이나 DC의 원작만화들이 들어오면서 그래픽노블이 이젠 하나의 장르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 같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1948년생으로 현재 70대 중반의 만화가이다. 이 쥐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고 199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원래는 1권 2권이 따로 나온 작품인데 지금은 합본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1권은 1986년에 2권은 1991년에 각각 발표되었던 고전 명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올해초 미국 테네시주의 모 교육위원회에서 그동안 8학년 교과과정에 있던 이 작품을 폭력과 노출의 이유로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소식이 현지에서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슈화되면서 그 결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이 책이 갑자기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하며 역주행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올라오면서 현재 그래픽노블이나 청소년역사 분야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만화는 확실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있는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물론 캐릭터를 묘사하는 화풍에서도 제법 큰 차이가 있지만 페이지 전체를 구성하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이질감이 훨씬 크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흔히 일본만화로 대표되는 동양권의 만화는 행동과 대사의 연속성이 강하고 특히 대사들이 소설보다 훨씬 현실감있는 구어체라 그림과 완벽한 일체감을 가진다.그래서 컷과 컷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서양권의 만화는 컷분할과 대사에서 일단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인물들의 행동에 연속성이 별로 없어서 정적인 구도로 느껴지는 컷이 많고 대사톤도 다소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이라 뭔가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릴때 이현세나 허영만, 그리고 일본의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동양스타일의 만화만 접했던 사람들에겐 그래픽노블은 처음에 좀 적응하기 힘들 가능성이 많다. 예전에 '앨런 무어'라는 작가가 그래픽노블의 거장이라는 칭송이 자자해서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라는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처음 몇 페이지 읽다가 도통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고 재미가 없어서 찔끔찔끔 읽는둥 마는둥 하다가 결국 팔아버렸던 경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서양스타일의 그래픽노블이면서도 의외로 전세계 누구나 쉽게 접근가능한 보편적인 화법과 구성을 취하고 있다. 덕분에 아무런 위화감이나 불편함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 만화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이 작가의 그림스타일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빈틈이 전혀 없다고 해야할까... 작은 컷 안에 대충 휘갈겨 그린 것 같지만 필요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컷 한컷 그릴 때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구도를 만들고 대사를 넣고 또한 갖가지 디테일을 깨알같이 심었는지 정말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빛과 그림자 등 흑백만화의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명암대비가 돋보이고,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라는 식의 나라별로 다른 동물로 표현하는데 폴란드인인 척하는 유태인은 간단하게 돼지가면을 쓴 모습으로 그리는 등의 만화적 상상력과 직관적 표현이 극대화된 센스가 그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작가가 철저한 계산하에 그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증언을 토대로 가족의 실화를 만화로 옮긴 것이다. 실화라서 사실감 넘치고 생생한 현장감이 피부에 와닿는 건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나치의 잔악함이나 수용소의 참혹함에만 촛점을 두고있지는 않다. 그에 못지않게 전쟁의 휴유증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시각을 넓혀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이라든지,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저자가 '이스라엘'의 유태인은 어떤 동물로 할거냐는 질문에 '두더지'라고 대답하는 모습 등 의외의 생각할 거리들도 많이 던져준다.



비록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생존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용소에서 부부가 마침내 재회하는 부분에서 많이 울컥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세월을 겪어왔기때문에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는 언제나 동변상련의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내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지도 새삼 깨닫게되었고 늘 옆에 있는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화 그 자체에서 오는 생생한 간접 체험과 탁월한 만화가의 손길이 만났을 때 관연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바로 이 작품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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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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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가 또는 일본문학의 신이라 부를 정도로 일본이 자랑하는 작가이고 인간실격은 그런 그의 대표작이다. 작년에 전도연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작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냥 제목만 동일한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 덕분에 갑자기 이 책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서점에서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 버전이 나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 김춘미씨 번역의 민음사판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약 13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작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도입부의 첫 문장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라는 문장인데 이것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김춘미씨가 번역한 버전을 우리는 거의 정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번역판들은 어떤가 궁금해서 미리보기 서비스로 이 부분만 비교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이 민음사판이 착 달라붙으면서 감기는 느낌이 강했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느낌이랄까... 번역가가 최대한 원문의 문장배열과 구성을 살린 직역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이질감없이 스며들 수 있는 적절한 단어의 선택에 촛점을 맞춘 듯 했다



일본 작가의 글에는 고질적인 일본 특유의 화법이 있다. 예를들면 '이중부정'같은 것인데 '~なければならない' 즉 '~하지 않으면 안된다'같은 표현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처럼 쓸데없이 말꼬리를 길게 늘려서 표현하는 습성이 있다. 어떻게보면 일본의 국민성이 묻어있는 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교묘하게 본인의 의지가 빠져버린 책임회피형 또는 유체이탈형 화법이다. 


그래서 번역가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들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직역하지않고 적당히 우리식으로 의역해서 현지화하는 경우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원래 일본문학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날아가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가능한 한 원문의 느낌을 해치지않기 위해 번역가가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필력을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작품은 거의 대부분 주인공 화자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부분들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공감할 수 있냐 없냐를 떠나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심리 그 자체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며 따라가게 된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압축된 간결한 대사들과 때로는 짧게 때로는 아주 긴 호흡의 문장들을 다채롭게 구사하기도 하고 딱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보여주는데도 전혀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 등, 이 작가가 정말 똑똑하고 글을 잘 쓴다 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느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생으로 39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온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 修治)이고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는 필명이다. 본작 인간실격은 그가 죽은 해인 1948년작으로 거의 마지막 후기 작품에 해당한다. 부유한 집안에서의 출생과 내연녀와의 동반자살 시도라든지 정신병원 입원 등,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인 소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48년이면 일본이 2차대전의 패배로 인한 혼란과 침체를 겪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 젊은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들에게 가면처럼 이용했던 '익살'이라는 돌파구는 보는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그 익살이라는 가면이 벗겨질 때마다 주인공은 끝없이 추락하게 된다.


SNS로 실시간 소통하며 거침없이 감정표현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너무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화두가 아닐까 싶다. 다만 작가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관한 문제에 너무 과하게 몰두했던 것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참 생각이 많아서 슬픈 짐승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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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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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여기 알라딘에서 3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재작년인 2020년에 나온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작년말에 번역되어 나왔다. 원제는 'Why Fish Don't Exist' 직역하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고, 사실 책의 내용에 비추어 엄밀하게 번역한다면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냥 좀 더 알기쉽고 직설적이면서도 강한 화법으로 처리를 한 것 같다. 이 제목을 보니까 갑자기 오래전에 제목만으로도 엄청난 어그로를 끌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유튜브도 썸네일이 중요하듯이 책도 제목이 중요하긴 하다.


저자 룰루 밀러는 직업이 과학 전문 기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녀의 논픽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장르가 굉장히 특이하고 복잡하다. 기자출신답게 기본적으로 필력이 좋아서 이야기를 시종일관 흥미롭게 끌고가는데 정말 책을 딱 잡으면 중간에 끊기가 힘들 정도로 대단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번역도 흠잡을 곳이 없고 각 챕터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삽화도 인상적이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과 '어류', 즉 물고기다. 거기에 작가 자신의 내면적 성장과 치유의 코드를 섞어넣었다.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는 각각 '우생학'과 '분류학'이라는 반전 키워드가 등장하여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의 흐름을 180도 뒤엎어버리는 구성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마치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되짚어보는 전기물처럼 보이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의 자기계발서인가 싶기도 하다가, 후반부에는 업계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사회고발 르포같은 느낌도 난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절묘하게 섞여있고 거기에 충격적인 반전까지 더해져서 색다른 재미의 책읽기와 함께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한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총장을 역임했던 어류학자로 생물학계에서는 대단한 업적과 함께 존경받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나면 이 낯선 인물에 대해 거의 박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되는데 작가가 그의 모든 저서와 기록물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재조명하고있는 덕분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의 치부까지도 들여다보게 되고 알고보니 열렬한 우생학 지지자였다는 것...



초반에는 저자의 인생멘토처럼 화려하게 등장시켜 본받고싶게 만들다가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나락으로 보내면서 독자들에게 확실한 충격요법을 선사한다. 어떻게보면 이미 죽은지 한 세기가 다되어가는 사람을 거의 부관참시하는 수준인데, 이것이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가 최초로 밝혀낸 새로운 사실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전부터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별 관심이 없던 것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이겠지...


저자가 진짜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흐름 그대로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되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좌절에도 굴하지않는 긍정적 에너지에 감동받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가 우생학을 지지했던 그의 비뚤어진 사상을 뒤늦게 알게되어 크게 충격을 받고 실망을 하게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알려진 우생학과 관련한 그의 논란을 먼저 접하고서 이것을 이슈화시키기 위해 책을 쓰기로 하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왕이면 드라마틱한 재미가 가미된 구성이 낫겠다 싶어서 일부러 모른척 하다가 뒤늦게 알게되는 설정으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후반부에는 또 '캐럴 계숙 윤'의 'Naming Nature'라는 책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분류학을 다룬 그 책에서 발견한 '어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과연 저자에게 얼마나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전세계의 물고기를 찾아서 이름 붙이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한 인물과 절묘하게 대칭선상에 위치하는 이 명제를 엮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어류'라는 종은 사실 하나의 종으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이 이론을 확신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에게 연락해서 일일이 확인을 받는 장면도 나오기는 하는데... 글쎄... 어류, Fish, 물고기라는 이름이 의미가 없는 말이라면 벌써 학계에서 난리가 났을테고 생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당연히 교과서에도 적용이 되었겠지...


구글에서 캐럴 계숙 윤과 Naming Nature를 검색해보면 별거 안 나온다. 세계적으로 대단한 주목을 받았던 흔적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학계에서도 그냥 흥미로운 관점 정도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신경 안쓰는 화두인데, 작가 혼자 너무 호들갑떠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얻게 되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편견들을 버리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계발서에서 흔하게 나오는 이런 아전인수격 궤변을 제일 싫어한다. 마지막에 저자가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듯 흥분해서 반복적으로 얘기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꺼내는 느낌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동성 배우자에 관해 필요이상으로 많이 언급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양성애적 성향에 고민하다 결국은 편견을 버리자는 결론을 통해 자기합리화와 함께 스스로 당당하고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뭏든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책이기는 한데, 그 주제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관을 좀 억지로 끼워맞추듯이 엮고있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이 책이 나왔던 2020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는 결국 관계자와 학생들의 건의에 의해 '조던 홀' 등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관련한 기념관의 이름을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류'라는 명칭이 없어졌다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과는 달리, 한 역사적 인물의 의미있는 업적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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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살인자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 1
스테판 안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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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고 원제는 'Offer Uten Ansikt', 구글번역으로 돌려보면 '얼굴 없는 희생자' 정도로 해석이 된다. 영문번역판 제목도 'Victim without a Face'로 거의 그대로 직역을 한 셈인데, 우리나라에서만 피해자를 살인자로 제목의 의미를 완전히 정반대로 바꿔놓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제목이 내용과 훨씬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스테판 안헴은 1966년생으로 현재 50대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다. 2000년대에는 주로 범죄스릴러 장르의 TV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다가, 2010년대에 와서는 책을 쓰는데 주력하면서 이 작품의 성공을 발판으로 주인공인 파비안 리스크 형사의 시리즈물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오고 있다.



거의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할 정도의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현재까지 이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는 모두 6편이 발표된 상태이고, 우리나라에는 그 중에서 초기 두 작품이 순서대로 먼저 번역되어 나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파비안 리스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리즈 1편이 되겠다. 북유럽 스릴러는 이제는 일본 추리물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로 형성해도 좋을만큼 다양한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나름 확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북유럽이라 하면 일단 스칸디나비아 반도, 즉, 노르웨이, 스웨덴 , 핀란드 이 세나라가 딱 떠오르는데 여기에 보통 덴마크, 그린란드, 아이슬란드까지도 포함해서 지칭하고 있다. 그린란드야 뭐 어차피 덴마크 땅이니까...



아뭏든 차가운 날씨와 백색의 눈, 투명한 얼음, 끝없는 숲... 그리고 왠지모를 적막함과 고요함이 연상되는 지역답게 북유럽 스릴러들은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렛미인'이라는 영화만 보더라도 스웨덴판 원작과 미국판 리메이크작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짐에도 작품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천지차이다. 뭔가 살을 에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 그런게 있다. 이 작품도 읽다보면 그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와 함께 수위 높은 잔인함과 선정성 등, 북유럽 스릴러만 가지고있는 특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단 이 작가는 필력이 아주 좋다. 프로작가다운 노련미가 있으며, 특히 '서사'를 짜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의외의 범인이나 기발한 반전 같은 트릭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해나간다는 큰 줄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 보다는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간의 이해관계와 갈등 등, 풍성하고 디테일한 스토리의 '흐름'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작가가 쌓아올리는 치밀하고 디테일한 서사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난 좋았다.



각 캐릭터들의 개성도 강하고 잘 절제된 대사들도 수준이 높다. 다만 주인공 캐릭터와 관련한 사연에 관해서는 떡밥만 뿌리고 설명을 안해주는데 이것은 은근히 후속편을 염두에 둔 장치로 보여진다. 확실히 시즌제 드라마를 써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작가도 '요 네스뵈'처럼 주인공을 좀 가학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같은 경우만 봐도 어떤 편에서는 손가락이 잘리고 또 어떤 편에서는 입이 찢어지는 등 회가 거듭될수록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파비안 리스크도 처참할 정도로 거의 당하기만 한다. 혼자 멋있는건 다하는 얄미운 주인공보다야 차라리 이런 캐릭터가 낫긴 한데... 하여튼 북유럽의 주인공 형사들은 보는 사람을 좀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의 주요배경은 스웨덴의 '헬싱보리'라는 도시다. 처음에 주인공이 스톡홀름에서 이 헬싱보리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옆이 덴마크라 마치 옆 동네 드나들듯 쉽게 왔다갔다 하는 장면들이 나오고, 심지어 맥주 사러 독일까지도 마실가듯 다녀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좀 신기했다. 그리고 중간에 아이들과 해수욕하러 간다는 대화 같은 걸로 추측하자면 북유럽치고는 상당히 따뜻한 지역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스웨덴 소설에서도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가 나와서 의아했는데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아래위로 길쭉해서 다양한 날씨가 존재하는 것 같다.


번역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거슬리는 부분이 거의 없는데, 외국 장르소설들 번역이 이 정도만 되어준다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범죄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최종 빌런 즉, 범인에 관한 캐릭터 구축이 좀 부실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흡인력있는 서사와 드라마가 정말 강력해서 600페이지가 넘는 긴 분량에도 흥미를 잃지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아마 다음에도 이 파비안 리스크 시리즈는 한 편쯤은 더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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