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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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작가의 프로필을 재확인했다. 정말 여성작가가 쓴 글이 맞는지...

영화든 소설이든 디테일이라는게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예전에 검도를 수련했기 때문에, 액션사극에서 배우들이 칼자루를 쥐는 모습만 봐도 엉터리인지 아닌지 즉각 알아본다. 감독과 배우, 또는 작가가 사소한 부분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넘긴다고 해도 경험자와 전문가는 알아본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법정스릴러라면 변호사와 검사간의 법정공방이 얼마나 사실적인지는 현직 종사자들만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디테일은 이런 것들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법이다.

이 작품에는 스쿠버다이빙이 꽤 비중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나는 젊은 시절 스쿠버다이빙을 정말 오랜시간 경험했고,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작가가 어설프게 얼버무렸다간 딱 걸리는 장면인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거슬리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실제로 다이빙을 체험해봤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여성작가가 쓴 글인지를 재차 확인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놀랍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의 섬세함이 모두 녹아있는 담대한 필력, 독창적인 소재와 캐릭터, 그리고 드라마틱한 대사와 디테일까지... 그 와중에 각 캐릭터의 설득력있는 트라우마 구축도 꼼꼼하게 챙겨넣었다. 액자구성에 플래시백 등, 다소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어 초반부는 집중이 힘들어도, 중반부가 넘어가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흡인력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장르소설 분야에서 국내 작가들의 활약이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한다. 반가운 일이다.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작가들...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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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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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는 아마도 '애거서 크리스티'를 제외하면 단일작가의 작품수로는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가 될 것이다. 그저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사실 난 그의 열혈팬이 아니다. 라임 시리즈 1,2편인 '본 컬렉터'와 '코핀 댄서' 이후로는 한번도 흡족한 작품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정도의 완성도를 다시 한번 보고싶다는 기대감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디버의 작품들은 크게 라임 시리즈를 필두로 한 시리즈물과 스탠드얼론(독립형 작품)으로 나누어지는데, 그의 경우는 전자에 비해 후자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시리즈물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의 개인적 취향과는 별개로, 아무래도 그는 시리즈물에 더 많은 애착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본작 '엣지'는 스탠드얼론이다. 역시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집어든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디버의 작품으로 믿기 힘들 정도의 졸작 수준이다. 유명작가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 책의 경우는 솔직히 집필의 의도가 의심될 정도로 내용이 빈약하다.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도 평면적이며, 대사 또한 사설이 많고 별다른 위트감이 묻어있지 않다.

중반부 이후에는 솔직히 너무 지루해서 속독으로 대충 읽고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전에 읽었던 '요 네스뵈'의 '레오파드'를 그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에 몰입해서 읽었던 것과 비교하면, 막말로 초보작가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다. '남겨진 자들' 이후 계속적으로 지적해온 식상한 페이크씬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다. 언제나 평균이상은 한다는 믿음을 가졌던 디버와의 인연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겨질 듯 하다.

<사족> 사전에도 없는 은어나 신조어를 번역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번역가를 생각하면 별로 트집잡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고심의 결과물이었을 '칠꾼'이니 '캘꾼'이니 하는 희한한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민망스럽다. 차라리 '집행자'와 '심문자' 정도로 편하게 번역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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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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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와의 두번째 만남...

시리즈물 자체에 대한 불신감이 있다보니 약간 반신반의 했던 것도 사실인데, 결국 기우에 불과했다. 첫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무지막지한 책두께를 잊게 만들고, 오히려 두꺼워서(더 오래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마저 선사한다.

이 작품은 그 두께만큼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홍콩과 아프리카, 노르웨이를 넘나드는 큰 스케일까지... 하지만 생각보다 직관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인해 전작 '스노우맨'보다 오히려 대중적이면서도 쉽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기발한 소재와 범죄수법, 입체적인 캐릭터, 적절한 컷전환과 군더더기없는 대사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소들이 철저하게 계산되어 쓰여졌기 때문에, 한번씩 무심코 지나왔던 부분을 뒤적거려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여전하다.

이제 이 작가의 스타일은 확실하게 파악이 되었다. 해리 홀레라는 시리즈물의 8번째 작품이면서도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작가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 혹은 완벽주의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조바심 섞인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언젠가 책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북유럽의 드넓은 설경을 직접 보게될 날도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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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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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로가 원해서 만나게 된 한 여자와 한 남자...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싸이코패스적 성향 때문에 서서히 벌어지는 피치못할 대결구도와 비극적인 결말...

그다지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예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줄곧 다뤄왔던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줄리아 로버츠의 '적과의 동침', 제이미 리 커티스의 '블루 스틸', 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같은 영화들이 당장에 떠오른다.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이너프(Enough,2002)'라는 영화다. 돌변하는 남자의 본성에 대한 설명부족과 황당한 후반부씬 때문에 당시 외면받은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 제니퍼 로페즈를 좋아했던 터라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이 영국에서 실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체감하기 힘들지만, 광고문구가 별다른 과장이 없다면 아마도 복고적인 소재와 분위기가 요즘 시대에는 색다르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적인 도입부에 비해 나머지는 줄곧 예견된 수순을 따라가다 평범하게 마무리짓는 모양새라, 요란한 책소개를 살짝 무색케한다. 한가지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주인공이 겪는 강박장애의 사실적인 묘사다. 풍부한 경험과 자료조사가 뒷바침되었음이 분명한 디테일한 심리묘사는 이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일등공신이다.

과연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흉기나 무기가 아닌 인간 그 자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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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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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우아한 제국'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 북유럽 스릴러...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

나는 리뷰를 쓰고서 마지막 별점을 줄 때 상당히 고심을 하는 편이다. 책의 구매가치를 살펴보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지표가 되는지라, 객관성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을만하다거나 괜찮다 정도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경우는 여지없이 별 3개다. 별 1개부터 5개까지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두었고, 대충 아무렇게나 적당히 마구잡이로 주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내게 별 5개를 받는 작품은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당연하게도 그 수가 많지 않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영화매니아라면 초반 5분 정도만 봐도 감독의 역량이나 연출수준을 가늠한다. 소설 역시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작가의 필력과 스타일이 대번에 측정되는 법이다. 바둑의 포석 단계에서 정석을 제대로 아는 진짜 고수를 상대하게 되었다는 자각을 하는 순간, 자연스레 자세를 바로잡음과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긴장감을 맛보게 되는... 요 네스뵈와의 첫만남은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시나 반전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설마 이 사람이 범인은 아니겠지 하는 영악한 독자들의 반응을 미리 예측한 두세번에 걸친 반전의 물량공세는 스토리를 괜시리 복잡스럽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그러다보니 범인의 범행방법 또한 그 동기에 비해 지나치게 복잡스러워 지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덮고도 남을 만큼, 이 작가는 무서울 정도의 집요함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 모든 상황, 모든 대사들이 철저하고 치밀한 계산아래 쓰여졌다. 별 의미없는 행동이라 무심코 흘렸던 주인공 해리 홀레의 수갑채우기 연습이 마지막 장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본 순간, 난 이 네스뵈라는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의 즐거움... 아마도 앞으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함께 내가 가장 아끼는 작가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사족>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이후 또한번 스콜세지와 디카프리오 조합으로 이 작품을 영화화하는 모양인데, IMDb 검색결과로는 아직 예정에 없는 듯하다. 190이 넘는 거구의 대머리 형사를 디카프리오가 맡는다니 과연 어떤 모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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