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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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은 1993년생으로 이제 막 30대로 접어든 젊은 여류작가이다. 20대 중반에 '관내분실'이라는 단편으로 등단하면서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받은 이후 단숨에 한국SF문학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스타작가로까지 올라선 것 같다.



'지구 끝의 온실'은 그동안 중단편만 써왔던 작가가 처음으로 내놓은 장편소설인데, 21년 8월에 출간된 즉시 베스트셀러를 기록함과 동시에 수많은 나라와 출판계약을 맺고 영화판권까지 팔렸다는 소개란만 봐도 현재 그녀가 가진 위상과 인기를 실감하게 만든다.



SF문학은 과학적 근거와 오류 등을 디테일하게 따지는 골수매니아과 덕후들이 워낙 많아서 그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마저 과학적 고증 측면에서는 사정없이 비판받을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데 심지어 SF장르의 불모지라고도 불리는 한국에서 젊은 여성작가가 이렇게 두각을 보이는 현상이 신기하기도 하다.


일단 김초엽 작가는 무엇보다 포항공대 출신이라는 과학 기반의 강력한 스펙과 함께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예술가적 자질, 그리고 청각장애라는 핸디캡까지 독자의 입장에선 인간적 호감을 가질만한 능력과 스토리를 고루 가지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나같은 경우 이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단편들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첫 장편인 이 작품으로만 그녀의 실력과 특징을 가늠한다는게 그리 적절치 않은 느낌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취향이라 굳이 이 작품을 골라봤는데 그래도 문학계에서 이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정도는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 작품은 영화에서도 흔하게 차용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세계 종말이나 인류 멸망의 원인은 핵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더스트'라는 이름의 먼지처럼 자가증식하는 화학 유기체로 설정을 했다. 2064년부터 2070년까지 약 5년간의 더스트 시대를 거치면서 지구는 초토화되었고 주인공 아영이 활약하는 작품속 시점은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른 2129년이니까 이 작품의 시대적 설정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뒤의 미래가 되겠다.



앞으로 40년 정도가 지나면 책에서처럼 '호버카'로 불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든지 마치 에이리언 시리즈의 비숍이나 데이빗 같은 수준의 인조인간이 만들어질 지는 모르겠으나 아뭏든 이 책에서는 더스트 시대에 이미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설정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영화적 허용처럼 소설적 허용으로 넘어가도 되리라...


'돔 시티'의 경우는 불과 5년이 안되는 더스트 시대를 격는 와중에 한 도시를 커버할 정도의 거대한 돔을 설치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정찰과 전투 목적의 드론이나 음식 대용으로 섭취하는 영양 캡슐, 동물 로봇 등 작품 속의 다양한 장치들은 근미래에 충분히 등장 가능할 법한 정도로 묘사되어 있다. 더스트의 모태가 되는 나노 테크놀로지라는 것도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분야겠지만 화학 및 생화학을 전공했던 작가의 이력이 뒷바침하는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쳐서 나온 설정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라는 영화를 위해 나비족의 언어인 나비어를 비롯하여 판도라 행성에 관한 세계관을 규정하는 설정집을 따로 만들었는데 그 분량이 어머어마해서 거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두껍다더라는 과장섞인 일화까지 전해질 정도로 SF장르는 세계관과 설정 구축이 빈틈없이 탄탄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물론 김초엽 작가가 그 정도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미래의 모습은 본인의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굉장히 고심해서 구상하고 또 디테일하게 설계한 결과물임이 충분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가 감탄했던 부분은 작가가 이러한 배경 설정에 관해 설명충을 등장시키거나 해서 굳이 주입식으로 브리핑하듯이 설명을 하는 구차하고 촌스러운 수법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세계관인지 감을 잡기 힘들어도 읽다보면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묘사를 통해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씩 자연스럽게 파악이 되도록 정교한 수순처리를 해놓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은 경력이 짧은 신인작가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다만 글쓰기 측면의 작가적 역량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 작가의 필력은 그다지 인상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물론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사와 서술 문장들 모두 딱히 흠잡을데가 없을 정도로 준수한건 분명하지만 프로 글쟁이다운 기교나 문학적 감성이 거의 보이지 않고 문장들이 대체로 모범생의 답안처럼 너무 정직하고 딱딱한 편이긴 하다. 그리고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딱히 불필요하다거나 군더더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전체적으로 루즈한 느낌이 있어서 다소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는 편이다. 역시 이 작가도 장편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긴 호흡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하는 능력이 아직은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게 느낀 부분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비전이랄까... 아뭏든 그런 측면이었다.


이 작품이 19년에 발생한 '코로나' 사태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았다는 것도 알겠고... 거대한 재앙을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과 그 와중에 위기를 전화위복 삼아 세상을 리셋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 군상들에 의해 충돌하고 반목하는 이해관계들... 윌리엄 골딩의 위대한 고전 '파리대왕'이 떠오르는 부분도 더러 보이는데... 아뭏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제법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 플롯들이 마치 작품 속의 '모스바나' 덩굴처럼 뒤엉켜있어 그 속에서 뿌리와 줄기를 형성하는 핵심주제를 찾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놀랍게도 이 책에서는 남성 캐릭터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금방 죽는 용도 등의 별 의미없는 엑스트라를 제외하면 정말로 아예 없다. 심지어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윤재'라든지 '대니' 같은 누가 봐도 남자로 생각되는 이름도 알고보면 모두 여성 캐릭터다. 그래서 주인공들을 비롯한 '프림 빌리지'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보노라면 작가가 혹시 '아마조네스 왕국'을 꿈꾸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후반부 등장하는 동성애 코드도 회심의 반전장치라고 하기엔 작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 성향만 드러낼 뿐인 장면이라 너무 뜬금없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들은 대충 어떤건지 알겠는데 내게는 이것들이 페미니즘적 시각과 묘하게 엮여있는 모습으로 보여서 전체적으로 나와는 코드가 좀 안맞는 느낌이었고 하여튼 여러모로 아쉬웠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얘기하다보니 또 단점들만 수두룩하게 지적한 것 같은데 현재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의 한명인 김초엽은 나이에 비해 그 명성에 걸맞는 깊이감을 보여주는 실력자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고 또한 앞으로의 발전가능성도 대단히 높아보인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 자신의 단점도 알아서 스스로 보완해 나가리라 믿는다. 다만 자신의 주타겟층을 계속해서 여성 독자들로 한정짓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너무 노골적인 페미니니즘적 성향은 조금씩 줄여나가는게 어떨까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hOs_4iVt0&t=4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610468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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