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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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은 애플 TV+를 통해 올해 5월부터 방영 중인 드라마의 원작소설이고 미국에서는 2016년에 발표되었으니까 생각보다 조금 오래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22년에 번역 소개되었고 처음 나왔을 때는 표지 디자인이 이렇지 않았는데 최근에 드라마 방영이 확정되면서 배우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를 그대로 활용한 지금의 새로운 표지로 변경된 것 같다.


그런데 포스터 자체도 그렇지만 솔직히 이 표지 디자인은 좀 문제가 있다. 누가 봐도 복제인간을 다룬 SF물이 연상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이 작품의 중반부에 드러나는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반전 장치이기도 해서 책을 읽기도 전에 미리 스포를 당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굉장히 작은 사이즈의 특이한 판형으로 제작되었다. 외형은 서양의 '페이퍼백' 스타일인데 가격은 16,800원으로 전혀 페이퍼백 답지 않다. 페이퍼백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서양에서 오로지 싼 값에 책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제본방식이고 질낮은 재생종이에 떡제본이라 읽다보면 책등이 휘어지고 꺽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소장용이 아니라 가볍게 한번 읽고 버릴 생각으로 구매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 같은 경우는 이도저도 아닌 참 이상한 컨셉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품질 낮은 문고판 사이즈에 가격은 또 페이지수로 적용해서 제값을 다 받고 있으니까... 아뭏든 요즘 국내 출판사들의 일관성 없는 제본과 가격정책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 블레이크 크라우치는 1978년생으로 현재 40대 중반이고 소설가이면서 TV드라마의 시나리오 작가 겸 제작자로도 활동 중인 것 같다. 특히 자신이 원작자이면서 각색에도 참여한 '웨이워드 파인즈' 시리즈가 유명한 모양이다. 프로필을 보면 본업이 소설가인지 드라마 작가인지 살짝 헷갈리는 측면이 있는데 내가 볼 때 이 작가는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부터 미리 영상 제작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스타일인 듯 하다. 책을 읽다보면 플롯의 진행이나 인물들의 대사, 컷 전환 방식 등에서 전형적인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차피 출판계와 영화계가 긴밀하게 맞물려서 돌아가는 시대라 그다지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작가가 작품의 영상화에 비중을 많이 두는 경우에는 소설 자체의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가 보여주는 필력은 예상외로 뛰어나서 한편의 소설로서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만족감을 충분히 선사한다. 작가가 글도 잘 쓰지만 대단히 똑똑하고 노련한 사람이란게 몇페이지만 읽어봐도 바로 느껴진다.



이 작품의 원제는 'Dark Matter'이다. '암흑물질'이라고 불리는 천체물리학 관련용어인데 책에서도 간단히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최근 마블 시리즈 덕분에 너무나 익숙해진 용어인 멀티버스 즉, 다중우주를 소재로 한 SF스릴러다. 그래서 책 내용 중에 양자역학이니 초끈이론, 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일반인들은 말해줘도 잘 모르는 고차원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작가 후기에 현역 물리학 교수의 자문도 받았다고 나올 정도로 나름 자료조사를 충분히 해서 과학 이론상 허술한 구성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어려운 학문적 이론은 스토리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베이스로만 활용하고 독자들은 그런거 자세히 몰라도 아무 문제없이 스토리를 따라가며 즐길 수 있도록 헐리우드의 시나리오가 여지껏 잘 해왔던 방식으로 아주 능숙하게 처리를 해놓았다.


약간 호흡이 느리다는 단점은 있지만 드라마 시나리오 경험이 많아서인지 대사도 좋고 기승전결의 깔끔한 구성 안에서 중반부 이후 몰아치는 전개는 몰입도가 굉장하다. 다만 지금 현재의 삶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하는 작품의 메세지는 알겠으나, 사랑하는 여자를 얻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는 복잡한 이론과 거창한 스케일에 비해 뭔가 모르게 좀 궁색한 느낌을 주는 면이 있다.



애플 TV+의 드라마는 '조엘 에저튼'과 '제니퍼 코넬리'가 주연을 맡았다. 조엘 에저튼은 '제로 다크 서티'라는 영화에서 후반부 특수부대원 역할로 '크리스 프랫'과 함께 단역으로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인상깊어서 눈여겨 봤던 배우인데 감독, 각본, 제작 등 다방면으로 재능도 많고 또 진중한 이미지라 상당히 믿음직스럽다. 제니퍼 코넬리야 내 나이 또래면 누구나 다 아는 배우니까... 그런데 얼마전 '탑건 매버릭' 때보다는 덜 예쁘게 나오는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어쨌든 예고편을 보니 소설의 내용이 영상으로 잘 구현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왠지 모르게 재미 면에서는 드라마가 소설을 못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인 'Dark Matter'와 아무 연관성이 없는 '30일의 밤'이란 국내제목은 약 30번에 걸쳐 다중우주를 돌아다니는 주인공의 행적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은 것 같은데 '암흑물질'과 같은 딱딱한 직역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인 것 같다. 만약 '30일의 밤'이라는 드라마에 관심은 있는데 나처럼 애플TV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면 이 원작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bGbfUyuB68&t=1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624287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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