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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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성해나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일단 별 고민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으나, 아니 벌써? 라는 약간 의아한 마음도 있었다. 작년 한해는 그야말로 '성해나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혼모노'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니, 아무래도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이고 신중하게 작품 구상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숨고르기할 시간이 필요했을 법도 한데, 곧바로 신작이 나왔다고 하니 공백기가 짧아도 너무 짧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진작 사놓고도 이미 읽고 있던 '오뒷세이아'를 먼저 끝내느라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이번 신작이 과연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궁금해서 틈틈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확인하며 모니터링하기도 했는데, 지난달 중순에 출간되어 2주차 즈음에 종합 2위를 찍는가 하더니 의외로 빠르게 순위권에서 밀려나 한 달 정도 경과한 지금 시점에는 20위권에 겨우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성적도 아무나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작년 한해를 휩쓸었던 작가의 폭발적인 화제성에 비해서는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한 편이라 이것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직접 읽어보니 이 모든 현상에 대한 의문은 저절로 풀려버렸다. 



본작 '인비인'은 엄밀히 말해 작가의 신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성해나 작가가 이미 5년 전부터 각종 문학 잡지에 기고했던 여러 단편들을 모아서 새롭게 재편집한 기획물에 불과했다.



황당한 기분에 뒤늦게 인터넷 서점의 홍보문구를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니 '성해나 첫 기담집'이라는 문구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신작'이라는 워딩이 빠져있긴 했다. 



솔직히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출판사의 속셈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실을 미리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내 불찰을 탓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출판사의 얄팍한 상술에 그저 낚이고 놀아난 것만 같은 찝찝함과 함께 살짝 분한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애초에 나는 '혼모노'가 인상 깊었기 때문에 그녀의 신작도 기대를 했던 것이지 이전 작품들까지 굳이 찾아볼 마음이 있었던 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재편집 기획물 '인비인'은 총 9편의 단편들을 각각 3편씩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분류하여 나름 느낌있게 구성을 했다. 과거는 친일파 조상들과 관련한 이야기, 현재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미래는 AI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기담집이라는 컨셉답게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펼쳐진다. 



내가 파악한 성해나 작가의 특징들은 앞서 '혼모노'에서 충분히 설명한 바 있는데, (별점에 신중한 내가 무려 별 5개를 줬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특장점들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내 안목이 그래도 쓸만한 수준은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 작가의 내공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6595999

일삭, 객년, 뇌사, 발심, 외기, 시혜 같은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가 믿기지 않는 농익고 현란한 어휘들을 비롯하여, 



소재와 주제에 관련한 해박한 지식과 자료조사의 치밀함에 한번 잡으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맛깔난 글솜씨는 이미 아는 맛임에도 여전히 감탄을 자아낸다. 


작품 배경에 어울리게 '곤란해질 뿐이다' 같은 일본식 표현법을 섞어 넣는 센스라든지 



'삔또가 상한다'나 '존나게' 같은 비속어를 거침없는 쓰는 패기는 물론, 



하고많은 차 이름 중에 '슈마'를 선택하는 특이한 취향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역마차'에서 존 웨인의 스턴트맨이었던 야키마 카누트를 활용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비범한 아이디어 같은 걸 보면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다만 이번 편집판에서 각각의 단편들 뒤에 작가의 해설을 붙여놓은 것은 개인적으로 약간 사족 같은 느낌이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차피 단편이라는 형식은 미완의 성격이 강해 독자들 각자의 해석으로 여백과 여운을 채워가는 맛을 무시할 수 없는데, 작가가 일일이 어떤 해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버리니 뭔가 흥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출판사에서 기존 단편들을 그저 재탕만 한 것은 아니라는 듯 어떻게든 뭔가 다른 시도를 덧붙였다는 생색을 내고 싶었던 모양인데, 하여튼 여러모로 나도 삔또가 좀 상해버렸다.



지금 이 책이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고 있는 걸 보니 나만 멍청할 뿐이지 대다수의 한국 독자들은 확실히 모든 걸 간파하는 똑똑한 컨슈머임이 분명한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작가의 전작들을 읽게 된 셈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재확인한 시간이기도 해서 결코 무의미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 진짜 신작이 나올 때를 천천히 기다려 보련다. 이왕이면 이제 단편은 충분히 보았으니 다음번엔 장편소설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0r5tO6cVajI&t=42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349689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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