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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속의 비밀 1~2 세트 - 전2권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2월
평점 :
댄 브라운의 신작 '비밀 속의 비밀 (The Secret of Secrets)'은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고된 바와 같이 작년 9월 9일 미국 현지에서 공개되어 2주차부터 시작해 7주 연속 아마존 차트 소설 부문 종합 1위를 찍은 걸로 나오는데, 사실 이 정도면 지금의 댄 브라운으로서는 충분히 선방이고 나름 체면치레는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이 책이 공개된 지 3달 가까이 지난 11월 말이 되어서야 뒤늦게 별다른 홍보도 없이 조용히 번역되어 나왔다. 추리 스릴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발매 소식을 몰랐을 정도니 좀 충격인긴 하다. 더 충격인 건 출간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오르지도 못 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 전세계를 호령했던 댄 브라운의 위상이 이 정도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참 무상하긴 하다.

미국이란 나라가 레전드 스타들에 대한 리스펙이라든지 예우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변화에 민감한 민족이라 그런지 빨리 적응하고 빨리 잊고... 하여튼 그런 면이 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8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댄 브라운의 이번 신작은 체코 '프라하'가 배경이다. 지난번 '오리진'을 읽었을 때 미스터리는 살짝 뒷전으로 밀리고 오히려 스페인 명소를 소개하는 데에 열을 올리는 식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어서 작가의 방향성이랄까 집필 스타일이 예전에 비해 뭔가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의심을 했었는데, 이번 작품을 읽고나니 그 방향성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4000392042

이 책은 정말로 한 권의 프라하 관광안내서에 가깝고 미스터리 요소는 거의 양념으로 끼얹어진 수준이다. 애초에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비롯한 스토리의 흐름 자체가 프라하의 각종 명소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해 짜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프라하시의 전폭적인 지원과 홍보비를 받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는데, 실제로 책 뒷부분 감사의 말을 담은 작가 후기에 프라하시 관광본부가 떡하니 있는 걸 보고 쓴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작가의 명성이나 영향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안그래도 365일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프라하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상반된 생각과 충돌하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긴 한다.

댄 브라운의 스타일을 하루이틀 겪은 바도 아니고 어느덧 로버트 랭던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이라는 컨셉으로 굳어진 상황인 건 알지만 이번 작품은 특유의 서스펜스나 스릴감마저 대폭 줄어든 느낌이라,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긴장감 속에서 유럽 명소와 유명 미술품들을 덤으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심지어 이번 작품의 주된 소재로 선택된 인간의 뇌와 의식에 관한 첨단과학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인지는 모르겠으나, 따지고 보면 굳이 프라하에서 사건이 벌어져야 할 이유나 당위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제와 배경 장소가 좀 따로 논다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천사와 악마'에서의 이탈리아나 '다빈치 코드'에서의 프랑스처럼 소재와 무대가 찰떡같이 어우러졌던 전성기 대표작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이 작품은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침을 맞이한 랭던이 단 하루 동안 프라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험 활극을 그리고 있다.


새벽 조깅 코스에 굳이 카를교를 건너는 동선을 넣어서 카를교에 대한 잡다한 유래와 상식을 설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프라하성은 물론, 스타로마크 구시가지 광장의 천문시계도 깨알같이 등장하고,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알뜰하게 묘사되는 조핀 궁전과 댄싱 하우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크루시픽스 바스티온, 추격 액션 장면에 활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페트르진 전망대, 거울 미로와 페트르진 푸니쿨라...








클레멘티눔과 악마의 성경이라 불리는 코덱스 기가스, 프라하의 미국 대사 관저인 페체크 빌라, 구 유대인 공동묘지, 후반부 주요 배경인 폴리만카 공원과 R2-D2 닮았다는 환기구 등...










예상했던 그대로 프라하의 핵심 명소들이 총망라되어 나온다. 이 정도면 그냥 프라하 여행은 직접 안 가봐도 충분할 것 같다. (어차피 갈 기회도 없겠지만...)
다만 프라하에도 분명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을 터인데 폴 에번스의 조각품 '호기심 캐비닛' 정도가 비중있게 등장할 뿐, 이전 작품들에 비해 미술품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은 좀 의외였다.


사실 이번 작품은 초반부터 그 똑똑한 랭던이 마치 이성을 잃은 듯이 세계적인 도시의 특급 호텔에 화재경보를 울리며 난장판을 만든다는 상황 자체가 납득하기 힘들 뿐더러 나에겐 너무 억지스럽게 느껴져서 이후 진행되는 스토리 역시 그다지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스토리의 기본 플롯 조차도 주인공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어떤 문서가 거대 조직에 위협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영문도 모른 채 쫓기게 된다는 식의... 지난번 '콘돌의 6일' 리뷰 때도 언급했듯이 존 그리샴의 '펠리컨 브리프' 같은 히트작에서 이미 충분히 우려먹었던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라, 아무래도 댄 브라운이 이번에는 솔직히 날로 먹으려는 속셈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좀 쉽고 편하게 글을 쓰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지긴 한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4032833913
한편 작가 자신이 워낙 유명인사여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엄청난 인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전작 '오리진'에서 너무 대놓고 테슬라를 홍보하는 장면이 있어 아마도 일론 머스크와 개인적 친분이 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한 바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그의 이름과 뉴럴링크가 언급되는 걸 보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읽고 리뷰하면서 친숙해진 이름인 마이클 폴란도 작중에서 랭던의 동료로 나오는 걸 보면 실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싶다.

https://blog.naver.com/joonjoo2/223645953716
이런 인맥이 사실이든 아니든 댄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최신 고급정보를 바탕으로 꽤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에는 '인공 뉴런' 같은 단어를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문외한이지만 이 책을 통해 뇌과학 기술이 현재 어디까지 발전하고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많아서 소설적 재미와는 별개로 나름 유익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본작 '비밀 속의 비밀'은 소장가치를 높여주는 고급스런 디자인의 박스와 함께 지금껏 국내에 출간된 댄 브라운의 작품들이 늘 그러했듯 번역도 흠잡을 데 없이 유려하고 가독성이 좋다.

결론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쪽에 속한다... 그렇지만 프라하를 좋아하거나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Ye-Vqn0Ym7Q&t=4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28852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