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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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토너'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5년에 발표된 이후 몇몇 호평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불과 1년 만에 절판되었으나, 약 50년의 세월이 지난 201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재출간되며 재평가와 함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2015년에 번역 소개되면서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다가 올해 3월에는 유튜브의 연예인 추천 등에 힘입어 뒤늦게 베스트셀러 1위를 찍기도 했다.



작가는 존 윌리엄스라는 낯선 이름인데 1922년생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덴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4년 일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문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몇권의 소설과 시집을 남긴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본작 '스토너'는 장편소설로서는 딱 적당한 수준인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실력있는 번역가인 김승욱씨가 번역을 맡고 있어서 첫인상이 호감으로 다가온다.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고, 제목에서 짐작되는 그대로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조용히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열아홉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영문학 교수가 되고 60대 중반 정년퇴임을 앞둔 시기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45년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1910년부터 1955년까지이고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미시시피강 인근 중부지역인 미주리주인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한 공감도를 조금 더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이 자랑하는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고향이자 성지를 바로 지척에 둔 지역인 만큼 책 곳곳에서 문학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존중이 묻어나오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작가가 서문에서 모든 내용이 허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는 있지만, 그래도 평생 영문학 교수로 살아온 작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 나이와 비교하면 거의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 일부를 부모 세대에 투영시켜 풀어간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대충 어떤 느낌의 내용일지 예상이 된다. 첫 문단 속의 조교수 이상 올라기지 못했을 만큼 이렇다할 업적도 없고 강의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는 구절만 보더라도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어떤 소시민 또는 루저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가면서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의미 따위를 반추하게 만드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뭐 그런 부류의 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 변두리의 적막한 환경 속에서 스토너가 부모를 도와 농장 일을 하다가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책을 통해 문학에 매료되는 과정을 건조한 톤으로 빠르게 훑어나가는 초반부를 읽다보면, 아무리 봐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거나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지 않는 분위기라 작가가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작정인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설마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스타일의 내용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다행히 이 작품은 중반부부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스토너의 성격은 요즘 말로 전형적인 아싸에 왕따의 기질이 다분한 루저의 그것이다. 사교성 제로에 목표 의식이나 야망도 없어서 아버지와 지도교수의 적극적 방향 제시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혼자서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 수동형 인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비마다 주위의 분위기나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줏대라든지, 한번 결정한 일은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의외성이 스토너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 입체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예를들어 초중반부 스토너가 파티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저돌적으로 구혼하는 장면 같은 경우 주인공의 평소 성격에 비해 너무 이질적이라 다소 뜬금없고 당황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지만, 이것은 처음에 농과대학을 나와서 가업을 이어받길 원했던 아버지에게 자신은 문학으로 전향해 계속 공부하겠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거나, 1차대전 때 입대와 관련해서 주변 여론에 상관없이 거부 결정을 내리던 장면 등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일관성이 있는 모습이라 볼 수가 있고, 후반부 로맥스 교수와 그 제자에게 보여주는 한결같은 태도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아무튼 특별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무미건조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스토너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였던 문학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해서 교수가 된 이후, 마침내 강단에 서서 놀라울 정도로 기품있고 학자다운 언변으로 강의를 하는 장면은 어쩌면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 마냥 물가에 내놓은 것 같았던 아이가 어느새 철들고 성숙한 청년으로 자란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은 중반부 스토너와 아내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 같다. 거의 정신적 학대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이혼숙려캠프'의 역대급 에피소드를 시청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단 한번도 억울함이나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말없이 모든 걸 본인이 감내하고 안고가는 모습은 호구와 보살의 중간 어디쯤에 해당이 될텐데, 어떻게 보면 스토너가 결혼 생활은 상대를 나에게 맞추도록 애쓰는 것 보다 그냥 나를 상대에 맞춰버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다만 한가지 납득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은 이디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로맥스와 그의 제자까지도 한결같이 스토너에게 표출하고 있는 감정이 단순히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수준이 아니라 혐오와 악의까지도 넘어서 거의 증오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당신은 정말로 나를 증오하는군. 그렇지 않소?'라는 스토너의 질문에 이디스가 경멸의 코웃음을 치며 말을 돌리는 장면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고는 있으나 거의 모든 장면이 주인공 스토너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묘사되어 사실상 1인칭 시점에 가깝다. 때문에 이디스와 로맥스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심리상태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독자 입장에서는 스토너가 시종일관 이유도 없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빌런이라고 해도 이렇게 맥락도 없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나는 그 와중에 작가가 몇가지 단서를 힌트로 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스토너의 집들이 파티에 로맥스가 굳이 참석해서 이디스에게 키스를 한 점, 그리고 스토너의 불륜 사실을 이디스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이런 단서들을 근거로 사실은 이디스와 로맥스가 훨씬 전부터 불륜 관계이지 않았을까 하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들이 스토너에게 보이는 적대적 태도에 대한 의문들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스토너의 불륜을 이디스가 알고 있었던 것도 학교에 떠도는 소문을 로맥스가 다 얘기해준 것이고, 어차피 똑같은 입장이니 이디스가 남편의 불륜에 대해 별다른 분노나 추궁없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된다.


물론 내 추측이 맞다고 한들 스토너의 불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작품 만큼 주인공의 불륜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자네 인생에 이런 낙이라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정말로 이런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그동안 응어리진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던 시간이었다.


따지고보면 결국 이 작품이 스토너의 삶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일 것이라는 예측은 그리 빗나가지 않았다. 상대방은 자신을 그다지 절친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별로 신경쓰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친구 이름을 언급하던 스토너의 마지막 모습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의 번역은 예상대로 작품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맞는 대사의 톤 등을 잘 조율하여 가독성도 좋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내가 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와 연관되는 단어의 뉘앙스에 좀 민감한 편이라서 그런지 가끔씩 앞뒤 문맥의 흐름에 살짝 거슬리는 부분들이 보이는 점은 약간 아쉬웠다.   



'시기심이나 앙심없이 그를 인정했다' 같은 경우는 맥락상 원한을 품을 만한 상황이 전혀 없는데 '앙심'이란 단어를 쓰니 어색하다. 차라리 '불만' 정도가 나을 것 같고...



'그녀의 눈이 무기력하게 반짝였다'에서 '무기력하게'는 찰나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긴 하지만 뒷말과 호응이 잘 안된다. 나라면 '희미하게' 정도로 바꿨을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워커가 진실한 감정을 드러냈다. 분노가 그를 거의 위엄있게 만들어주었다' 역시 어색한 단어의 조합으로 문장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것도 만약 나라면 '처음으로 워커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의 정중함 속에는 대부분 분노가 자리했다' 정도로 적당히 의역을 했을 것 같다. 


과연 행복한 삶, 불행한 삶, 또는 의미있는 삶이란 게 있기는 한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스토너와 닮은 부분이 꽤 많다는 점이 너무 슬프긴 한데, 이 작품을 통해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내 인생에 대해 미리 조그마한 위안을 받은 건 분명한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6mp-y1QoTY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412161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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