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명문장/절명시

대궐은 침침한데 시각이 더디구나.
조칙()은 이제 다시 내리지 않을 것이니
구슬 같은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얽히는구나.

새와 짐승들이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버렸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일찍이 나라를 지탱함에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충(忠)은 아니요, 단지 인(仁)을 이루려 함이로다.
겨우 능히 윤곡(尹)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당시의 진동(東)의 행동을 취하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황현(1855년~1910년)이 남긴 <절명시>의 일부다. 그는 1910년조선이 병합을 당하며 역사에 사라지자 이 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윤곡과 진동은 모두 중국 송나라 때 사람들이다. 윤곡은 몽골의 침입 때 자결한 인물이고, 진동은 간신배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도리어 참형을 당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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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학문•철학/북벌론

청나라에 군사력으로 복수하자는 주장으로, 조선 후기 효종에 의해 추진됐고 숙종대 윤휴 등이 제기하기도 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에서의 치욕적인 패배 이후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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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에서도 행복의 길은 있습니다
Henri Matisse
앙리 마티스


The Dream, 1940

야수파의 창시자 마티스는 삶에 닥친 여러 번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활동을 이어간 화가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고, 색채를 풍성하게 표현하며 자신만의 길을 발견한 그는 매일의 어려움 속에 오히려 행복의 길이 있다고 강조했다. 1869년 프랑스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21세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법학도였다. 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사다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다소 어두운 색조를 띠었으나, 1896년 브르타뉴의 해안에서 보낸 여름휴가를 계기로 마티스의 색조에는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그곳에서 고흐의 작품을 접한 이후로는 자연광의 색조가 가미된, 활기 넘치는 그림들을 선보였다.

"하루의 노동과
우리를 둘러싼 안개를 비추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세요."

앙리 마티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정도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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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문화/민화

조선 후기 중인과 서민층이 향유했던 그림이다.

민화는 작가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예술적 정교함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무병장수와 현세의 복을 기리기 때문에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잉어, 까치, 액운을 방지하는 호랑이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만큼 민중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최근에는 민화가 가진 독특한 색감과 미색을 활용하여 다양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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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유적•유물/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는 1861년 김정호가 편찬한 전국 지도다.

지도 제작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정상기가 ‘동국지도‘를 만들었고, 김정호도 대동여지도에 앞서 ‘청구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대동여지도다. 전국을 동서 80리, 남북 120리로 나누어 총 22개의 목판에 나누어 그렸다. 전체 가로4m, 세로 6.6m의 크기를 자랑하는데, 따로 필요한 부분만 펼쳐 볼 수 있고 전국을 한눈에 볼 수도 있는 등 여러 장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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