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명문장/절명시

대궐은 침침한데 시각이 더디구나.
조칙()은 이제 다시 내리지 않을 것이니
구슬 같은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얽히는구나.

새와 짐승들이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버렸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일찍이 나라를 지탱함에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충(忠)은 아니요, 단지 인(仁)을 이루려 함이로다.
겨우 능히 윤곡(尹)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당시의 진동(東)의 행동을 취하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황현(1855년~1910년)이 남긴 <절명시>의 일부다. 그는 1910년조선이 병합을 당하며 역사에 사라지자 이 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윤곡과 진동은 모두 중국 송나라 때 사람들이다. 윤곡은 몽골의 침입 때 자결한 인물이고, 진동은 간신배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도리어 참형을 당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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