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과 카르타고가 나눠 차지한 땅과 바다를 반도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이은 세력이 바로 로마다.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750년경 오늘날의 로마시 일대에 몰려든 라틴족이 세운 도시가 로마의 기원이라고 본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전황은 카르타고에 유리해지는 듯했다. 그런데도 제1차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났다. 바로 ‘땅’ 때문이었다. 카르타고의 정권을 장악했던 지주 계급은 지중해 대신 북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지중해의 제해권은 포기하더라도, 당시 비옥했던 북아프리카의 땅을 확보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 했다. 실제로 그들은 카르타고 해군 일부를 빼돌려 북아프리카 원정에 나서기까지 했다.[2] 그사이에 로마 해군은 재건에 성공했다. 땅(북아프리카)에 집중한 카르타고의 지정학적 판단과 바다(지중해)에 집중한 로마의 지정학적 판단의 차이가 전쟁의 판도를 뒤집은 것이었다. 이는 훗날 벌어질 제2차 포에니전쟁의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서구 문명이 지중해를 핵심 영역으로 삼아 꽃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포에니전쟁의 결과 지중해의 제해권을 잃은 카르타고군으로서는 로마까지 걸어서 진격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군을 이끈 한니발은 기적처럼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 본토를 공격했다. 하지만 마땅한 보급로가 없었기 때문에 곧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한편 로마는 지중해를 통해 카르타고 본토를 침공하며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도 승리했다.

로마가 한니발을 이탈리아반도에 묶어두고, 히스파니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지중해를 장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땅을 걸어 이동하는 것보다 배를 타고 바다로 이동하는 것이 빠를 수밖에 없다. 병사들이 지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보급도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로마는 한니발이 미처 손쓰기도 전에 지중해를 통해 대군을 급파, 히스파니아를 장악할 수 있었다. 즉 한니발의 패배는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가 바다 대신 땅을 선택한 순간 정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로마는 땅을 단순히 삶의 터전 정도로 여겼던 켈트족과 달리, 점령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았다. 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켈트족의 느슨한 부족 연합체보다 훨씬 선진적이었던 국가 체제와 어우러지면서, 로마가 전 유럽으로 진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탈리아반도의 일개 도시에 불과했던 로마가 유럽, 더 나아가 서구 문명의 영역적 토대를 마련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데는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로마가 융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이 바로 포에니전쟁과 갈리아전쟁이었다. 포에니전쟁을 통해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지중해는 북아프리카(카르타고)의 바다가 아닌 유럽(로마)의 바다가 되었다. 이어진 갈리아전쟁을 통해 켈트족의 땅이었던 유럽은 로마의 땅이 되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을 온전히 통일한 국가는 두 번 다시 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히스파니아에 이슬람 왕국이 들어서고 오스만제국이 강성한 순간에도 지중해는 유럽의 바다로 남았다. 유럽의 문화도 로마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했다. 알파벳과 라틴어, 로마법, 예술과 건축, 그리스도교 등 유럽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여러 요소가 로마에 기원을 둔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모습은 로마가 그 땅과 바다를 지배하면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포에니전쟁과 갈리아전쟁은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한 계기를 넘어, 유럽 자체를 구축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1206년 ‘대大몽골국’이라는 뜻을 가진 예케 몽골YekeMongol 울루스, 즉 몽골제국을 세운 테무친은 ‘전 세계의 군주’라는 뜻을 가진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었다. 이로써 중국의 북쪽 너머에 있는 광대한 스텝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몽골인의 정체성을 획득했다. 그러면서 케레이트족, 나이만족, 메르키트족 등의 유목 민족들이 몽골제국에 속한 울루스들로 흡수, 재편되었다. 칭기즈 칸이 오늘날 몽골인들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는 까닭은 그가 이룩한 세계제국 건설이라는 위업뿐 아니라, 그를 통해 몽골인의 영역성과 정체성이 온전한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제국이 장악하고 관리한 덕분에 실크로드는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안전한 길이 되었고, 자연스레 무역이 활발해졌다. 무역이 선사하는 경제적 이익에 일찍 눈뜬 칭기즈 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는 상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일례로 트란스옥시아나 서부를 다스리며 원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히바 칸국KhivaKhanate21의 칸이자 역사학자 아불 알가지 바하두르Abual-GhaziBahadur(1603~1604)는 칭기즈 칸의 치세의 중앙아시아를 "황금 쟁반을 머리에 인 채 아무런 위협도 폭행도 당하지 않고 해 뜨는 땅에서 해지는 땅까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땅"으로 묘사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몽골제국이 만든 ‘하나의 세계’는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태종 때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면 오늘날의 세계지도와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조선을 침공한 일본도, 조선을 지원한 명나라도 상당한 국력을 소모했다. 그런데 각국의 피해 정도와 별개로, 임진왜란은 무엇보다 거대한 스케일의 ‘동아시아 전쟁’이었다. 우선 일본의 진짜 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명나라 정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는 조선, 즉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내어주지 않고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결국 동아시아 전쟁으로 비화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전체의 지정학적 변화를 낳았다. 따라서 임진왜란은 조선, 명나라, 일본, 동아시아라는 다양한 스케일을 아우르는 다중스케일적 접근에 따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전략은 명쾌했다. 육군은 부산에서 한양까지 내쳐 달리고, 수군은 남해를 끼고 돌아 서해를 따라 북상하며 보급로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전쟁 초기 일본 육군은 계획대로 작전을 수행했으나, 수군은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났으니, 바로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섬이 많고 해안선이 복잡한 남해의 지형을 이용해 곳곳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했다. 이로써 보급로가 차단된 일본 육군은 그 힘이 빨리 소진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임진왜란 무렵 시작된 기후변화였다. 15세기 말부터 전 세계가 소빙하기에 접어들면서, 동아시아의 여름 평균 기온이 1도가량 떨어졌다.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작물의 생육이 크게 달라지므로, 기근이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문제는 그 시기가 임진왜란 직후였다는 점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명나라에 이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결국 17세기에 이르러 기근과 빈곤, 사회적 혼란을 참지 못한 농민들이 각지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모든 혼란이 수습된 후에도 정성공鄭成功(1624~1662) 같은 명나라 잔당 세력이 타이완과 일부 해안 지대를 근거지 삼아 저항을 계속했기 때문에, 청나라는 명나라 이상으로 강력한 해금 정책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몽골, 티베트고원, 타림분지 등 유라시아 내륙 방면으로는 영토를 계속 확장해 현대 중국의 영역성을 구체화했다. 바다를 막고 땅을 크게 넓힌 청나라의 행보는, 현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가 만들어진 시발점이었을 뿐 아니라, 19세기 이후 해상무역을 통한 문물 교류로 경제력과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서구 열강에 추월당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명·청 교체로 조선에는 소小중화 사상이 강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오랑캐’ 왕조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으므로, 조선이 중화 문명과 성리학의 중심지라는 생각이었다. 큰 전쟁을 거치면서 충효 관념 또한 더욱더 강조되었다. 이는 성리학적 가부장제가 확립되고 여성의 지위가 제한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선이 나름의 분명한 영역성과 정체성을 가진 민족국가로 발전해가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대외적으로 임진왜란은 일본과 명나라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 내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일본과 조선이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에 조공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자 에도막부는 조선에 관계 회복과 무역 개시를 요청했다. 대신 조선을 상국으로 대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명·청 교체로 유사시 청나라를 견제할 동맹이 절실히 필요했던 조선은 도요토미 정권을 타도하고 수립된 에도막부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로써 한일 교류사의 한 장을 장식한 통신사가 파견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청나라의 해금 정책은 일본이 바다로 세력을 확장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명나라 중심의 질서가 흔들리고 동아시아의 바다가 무주공산으로 변한 틈을 타 일본은 1609년 오늘날 오키나와제도 일대를 다스린 류큐왕국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류큐왕국은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동아시아의 해상 중계무역을 담당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킨 세력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류큐왕국을 속국으로 만든 뒤 사탕수수 재배 등을 강요하며 착취했다. 다만 청나라가 개입할지 모르므로 류큐왕국을 완전히 복속하는 대신 속국으로 남겨두었다.(류큐왕국이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어 멸망한 때는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진정한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메이지유신 이후인1879년이었다.) 아울러 체제 안정을 위해 쇄국 정책을 고수하기는 했지만, 규슈 서부의 항구도시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와 교류를 이어갔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일본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며 나름의 영역성과 정체성을 쌓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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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명문장/강수

강수(强首)는 (・・・) 얻는 바는 높고 깊어서 우뚝 솟은 당대의 인재가 됐다. 드디어 관직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거쳐 당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됐다.
강수가 일찍이 부곡(谷)의 대장장이 집 딸과 혼인 전에 정을 통했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자못 돈독했다. 나이 20세가 되자 부모가 읍내의 처녀들 중에서 용모와 행실이 아름다운 자를 중매하여 장차 그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
강수는 두 번 장가들 수 없다며 사양했다. 아버지가 성내며 말하기를 "너는이 시대에 이름이 나서 너를 모르는 나라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미천한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다면 또 수치스럽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강수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가난하고 미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를 배우고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일찍이 옛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조강지처는 마루에서 뜰에 내려오지 않게 하며, 가난하고 미천할 때에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다‘라고 했으니 미천한 아내라고 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 문무왕(文武王)이 말하기를 "강수는 문장을 잘 지어 능히 중국과 고구려, 백제 두 나라에 편지로 뜻을 다 전했으므로 우호를 맺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의 선왕이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고 하지만 또 문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즉 강수의 공을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는가?"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나오는 글이다. 통일신라기 때 살았던 강수는 탁월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6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가 있었다. 진골귀족이 될 수없기 때문에 국가 고위직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으나 평민보다는 훨씬 지체 높은신분이었다. 당시에는 신분이 낮은 여성과 결혼하면 지탄받았고 자식의 신분은낮아졌다. 그럼에도 사랑을 선택한 강수는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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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학문•철학/이기론 논쟁

성리학은 김종직, 조광조 같은 사림파에 의해 발전하다 이황, 이이에 의해 만개한다. 성리학사에서 이황의 지위는 특별하다. 심성론(性論) 분야에서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특별한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성론은 인간의 마음과 본성에 관한 문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황은 선한 마음은 하늘이 준 순수한 본성에 있고, 악한 마음은 개인의 감정에 근거한다고 봤다. 이황은 우주 만물의 본질인 ‘이(理)‘ 즉, ‘도덕성의 가치‘를 절대화했는데, 사람안에도 절대적인 도덕적 본성이 있고 이를 잘 유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황은 독실하고 경건한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이이는 ‘기(氣)‘ 즉,
‘현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사람의 마음과 본성은 나눌 수 없고 결국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개인적 훌륭함도 중요하지만 사회 개혁을 통해 모두가 훌륭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대표적인 논쟁은 조선 후기 ‘인물성동이론‘으로 사람과 사물의 본성은 같은가, 다른가를 둔 논쟁이다. 같다는 입장을 견지한 세력이 낙론, 다르다는 입장을 주장한 세력은 호론이다. 이황과 이이의 논쟁이 사회개혁 논쟁으로 흘러간 것처럼 호론과 낙론의 논쟁은 이후 청나라 문물을 수용할 것인가, 서양 문물을 수용할 것인가로 발전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도 동등한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북학파, 개화파는 주로 개방적인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낙론을 계승했다고 보고, 위정척사파 호론을 계승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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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 문화/붕당

중국과 조선의 독특한 정치 문화, 중국에서는 여타의 문명권과 다르게 일찍부터 관료 제도가 발전한다. 이미 전국 시대부터 본격화됐고 당나라 이후 과거제도가 도입되면서 유교적인 소양을 지닌 사대부가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일반화된다. 특히 송나라와 명나라 때는 관료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신하들 간에 정파가 생기고정파 간의 격렬한 정쟁이 벌어지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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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러셀 로버츠 지음, 이지연 옮김 / 세계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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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만큼 우리는 매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한다.
다양하고 불확실한 순간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선택이라는 것을 잘 하고 싶을텐데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반가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답이 없는 문제들,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 비틀거리지 않고 관계에 대처하는 방법 등등 각자가 고민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칼로 무를 썰 듯이 답을 명쾌하게 내주는 것보다 각자의 처지에 맞게 올바른 선택 또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듯 하다.
저자는 오히려 답이 없는 문제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니 나도 조급, 강박, 불안 너머에 있는 그 이상의 것들을 기대해본다.

📚6p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또다시 권위와 전통에 기대는 건 어리석다. 운명은 어느덧 선택이 되었다. 세상은 날로 복잡해지고 그로 인한 불확실성의 증가는 우리의 목을 옥죄고 있다.

📚7p
‘완벽함’의 반대는 ‘엉성함’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의 완벽함’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삶을 아름답게 해 준다. 실행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으로 결정했음에도 바라지 않던 결과가 나왔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저 선택일 뿐이다.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빨리 포기하면 된다. 인생은 어차피 지도 없이 하는 여행이며 애당초 ‘옳은 결정’이란 없었으니까. 과학의 영역을 최대한 넓히되 때로 과학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게 겸손의 미덕이다. 우리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맛보고 음미해야 할 미스터리다.”

📚12p
답이 없는 문제 중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심장을 벌렁대게 하거나 가슴을 아리게 만들 수 있다. 저 멀리 떨어진 미래라는 나라에 도착해 보기 전에는 어느 길이 최선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미래라는 나라는 오직 도착해 본 후에만 온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다. 불안하니 결정을 미룬다.

📚15
답이 없는 이 어려운 문제들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측정하려고 노력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최선을 다해 계량화해 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이게 좀 더 나아 보이기도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효과도 있다. 정답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옳은 방향으로 한 걸음 더 가고 있다고.

📚50p
표면적으로 보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이들은 합리성보다는 감정을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들의 선택은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해 심오한 무언가를 알려 준다.

📚62
평범한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사후에 앞뒤를 연결해서 인과 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 낸 이야기를 자신에게, 또 남들에게 들려주며 내가 저지른 일 혹은 계획하는 일을 정당화한다.

📚65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은 그저 미래의 비용과 혜택만 줄줄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이 선택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며, 결과가 좋을 때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힘들게 내 선택을 직시하는 것도 삶의 일부다. 답이 없는 문제의 경우에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81
나이가 들면 내가 참고 견뎠던 고통, 특히 가슴을 찢어 놓았던 고통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아픔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더 풍요롭고 충만하게 바꾸어 놓는다. 나이가 들면, 그냥 달기만 한 초콜릿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더 좋아하게 된다.

📚115
인간은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고, 함께 살기 힘들며, 어떤 때는 옆에 있는 것조차 참기 힘들다. 분명히 지금 당신의 배우자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 친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더 끌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더 재미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잘못을 더 잘 참아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목록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 모두를 한꺼번에 다 만족시키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어쩌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116
적당히 타협하는 건 잘못이라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을’ 뿐인 사람에게 만족하면 안 된다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한 주장을 하려고 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타협하라고 권장하는 게 아니라, 타협‘해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최선의 배우자ㆍ커리어ㆍ도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찾기 힘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게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117
‘내가 지금 타협하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은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을 핑계가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타협이라는 단어는 꼭 맞는 단어는 아니다. 타협한다는 것은 조금 못한 선택지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인데, 결혼이나 기타 온갖 종류의 답이 없는 문제에서 고려 사항 중에 ‘조금 못한’ 것들이 끼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은 일부 측면은 다른 것들보다 좋아 보이지만, 다른 측면이 그보다 못한 경우다. 일부 사람들이 타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가 됐고 더 나은 선택지는 도저히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결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177
답이 없는 문제들이 그토록 불편한 데에는 미래가 우리에게 감춰져 있는 탓도 있다. 우리는 통제 가능성과 확실성을 갈구한다. 더 많은 정보와 더 나은 전략으로 어둠에 빛을 비춰 답이 없는 문제에 대처해 보겠다는 충동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바보 같은 짓이다. 망상이다. 차라리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 유리하다.

📚189
인생이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을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실수’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더 잘할 방법이 없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그러니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쓰는 시간을 줄이라. 대신에 선택권을 늘릴 방법, 선택의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 실망감에 대처할 방법을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라.

📚211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있다. 어쩌면 어떤 것들은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은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어떤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최고의 질문은 답이 없는 질문들이다.

📚211
당신이 아직 ‘과정’에 있는 작품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탐험은 중요하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곳에 도착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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