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카스텔라 같은 문화적 소수자를 비웃는다. 그러나 입센이 누군지 몰라도, 베르디가 누군지 몰라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난해한 추상화에 한순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현대음악에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감동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개인적 취향의 영역이니 앞으로는 부디 이런 ‘타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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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31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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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진정 스트레스를 치유할 힘이 있다. 그 여정에서 나는 단지 당신의 모든 발전 과정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만 할 뿐이다. 당신에게 각종 도구와 지침과 자료를 줄 수 있지만, 당신의 스트레스는 당신만이 리셋할 수 있다.
그 일은 전적으로 당신 손에 달려 있다. 내 믿음도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이 책의 여러 기법은 현재의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당신의 뇌와 몸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미래의 스트레스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당신은 필연적으로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거센 폭풍우를 만날 것이다. 이러한 기법을 레인코트 삼아 따뜻하고 안전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온갖 퍼펙트 스톰을 헤쳐 나가길 바란다.
아울러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에는 페마 초드론Pema Chodron의 다음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이 하늘이다. 그 외의 것들은 날씨일 뿐이다."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변화가 두려운 이유에 관해서는 많이 논의했다. 나는 당신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사 당신의 능력을 완전히 확신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내가 멀리서 응원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당신이 스스로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정식으로 초대하겠다. 이제 당신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용감하고 보람찬 과정을 시작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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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역할에 대해 명확한 물리적 경계를 정할 수 있을 때, 각 역할에서 제대로 작동할 기회가 생긴다. 다양한 영역에서 당신은 각기 다른 기술과 특성을 발휘한다. 그런데 비좁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복작거리는 가운데 각 역할에서 최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면, 어느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 당신의 뇌가 멀티태스킹보다는 모노태스킹에 최적화되었듯이, 당신도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때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해 성취도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의식ritual’이라는 말은 종교적 전통과는 무관하며, 단순히 습관의 심리를 통해 발달하는 반복적 패턴을 의미한다.
의식은 당신이 특정한 순서로 반복해서 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식은 뇌를 미리 준비하는 데 유용한 촉매제이며, 물리적 공간이 적거나 없을 때 정신적 공간을 만들도록 도와준다. 한 공간을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 간단한 의식은 뇌가 다음 역할에 익숙한 패턴이 나타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의식은 뇌에 강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감사를 말로 표현하거나,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입력하는 대신 종이에 적는 게 중요하다는 점도 논의했다. 타이핑과 달리 손으로 쓸 때, 우리 뇌는 다른 신경 회로를 사용한다. 종이에 적으면 기억할 가능성이 더 크다.

멀티태스킹은 과학적으로 잘못된 명칭이며, 우리의 허슬 문화가 영속시키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오래된 신화다. 당신이 멀티태스킹을 할 때, 뇌가 실제로 하는 일은 과제 전환task switching이다.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빠르게 연속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몰입 상태를 추구하기 전에 뇌가 쉬면서 회복하는 데 필요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모노태스킹 습관을 들이는 일은 갈수록 늘어나는 ‘할 일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하는 게 아니다. 번아웃에서 회복되는 여정은 느리고 의도적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시간과 인내심, 자기 연민을 베풀도록 하라.

당신이 삶의 어느 단계에 있든 하루 동안 평생을 산다면, 현재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마음을 다잡고 현재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인생을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파노라마 렌즈와 같으며, 의도적으로 최고의 자아를 전면에 내세우도록 해준다.

물론 발이 머무는 곳에 마음을 둔다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거나 걱정이 싹 사라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의 뇌는 확실히 고마워할 것이다.

운동은 심신 연결을 활성화해 회복탄력성을 리셋하는 오래된 방법이다. 회복탄력성을 리셋하는 덜 알려진 방법은 ‘장과 뇌의 연결’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모노태스킹monotasking을 배워야 했다. 모노태스킹은 번아웃과 스트레스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알다시피, 스트레스 생물학은 질주하는 기차와 같아서 당신은 급히 브레이크를 찾아야 한다.

감정적 섭식은 생물학적 특징의 일환이다. 지루함, 좌절, 분노, 걱정 등 우리가 배고프지 않을 때도 먹는 여러 감정적 이유에 대한 몸의 반응과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를 구별하는 법을 배워라. 당신의 스트레스는 그 차이를 아는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부정적 경험에 민감성이 높아지는 현상은 스트레스를 받은 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뇌는 외부 환경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사소해 보이는 실수조차 부정적 감정을 연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이는 편도체가 자기 보호와 생존에 집중하려다가 걷잡을 수 없게 된 또 다른 예다.

과제 전환은 인지력, 기억력, 주의력과 관련해 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11 여러 연구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은 생산성을 40퍼센트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12 더 높은 실행 기능과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전전두엽 피질이 약해지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13 과제 전환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뜨린다. 하지만 세상은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로 가득하다.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할 여유가 없다!

처음에는 감사가 어색하게 느껴져 애써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스트레스 경로가 최근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과열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각종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감사도 연습해 숙달해야 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시간을 들여 꾸준히 실천하면 뇌는 감사의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면 내면의 비판자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신의 삶은 요구 사항과 의무로 가득 차 있다. 매 순간이 빠듯하고, 여러 방향으로 끌려 다닌다.
당신의 뇌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최적의 상태로 작동하려면 뇌는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숨 돌릴 여유가 필요하다.

뇌에 감사의 언어를 가르치면, 스트레스의 해로운 영향에서 뇌를 보호할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열심히 하면 내면의 비판자에게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감사는 허울뿐인 긍정이 아니다.

해로운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여러 불편한 감각은 당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 통제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자신에게 불쾌한 말을 내뱉기 쉽다. 게다가 내면의 비판자는 확성기를 들고 있다. 목소리가 커져서 당신의 부족감과 해로운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만다.

번아웃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도록 자신에게 약간의 여유를 제공하라. 휴식 시간을 존중하는 것을 시작으로, 멀티태스킹 습관을 버리고, 그 대신 시간 블록을 활용한 모노태스킹을 채택하라. 시간이 지나면 즐겁게 몰입 상태로 빠져들게 할 에너지가 생길 것이다.

해로운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내면의 비판자가 유난히 크게 떠드는 또 다른 이유는, 스트레스가 자기 효능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신도 홀리처럼 짧고 의도적인 휴식의 도움을 받으면 당신만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뇌에 유익한 휴식은 단 10초면 충분하다.

당신도 ‘끈적한 거미 발’ 기법을 실천할 수 있다. 핵심은 당신의 발이 머무는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당신의 발을 끈적한 거미 발처럼 벌려서 최대한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고 상상하라. 발이 당신을 지탱하면서 땅에 전달하는 유대감과 견고함을 느껴보라. 그 지지력을 온전히 느껴보라.

연구진은 정신 건강의 유익한 변화를 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진다는 뜻으로 ‘긍정적인 눈덩이 효과’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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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얼마 전에 읽은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라며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 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무 대가 없이 찾아온 이 계절의 즐거움을 나에게 선물해 주는 일, 그렇게 ‘내가 아는 행복’의 순간을 늘려 가는 일이 바로 제철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6개월은 참 길게 느껴지지만 정말 맛있는 수박을 먹고,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맛있는 포도를 먹으면 6개월도 금방이겠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정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일단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서 먹어야겠다.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행복이 정말 별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에 매우 협조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거절을 마음에 쌓아 두며 일일이 카운트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한 거절할 만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기꺼이 인터뷰를 허락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앞으로도 나는 백 명이 거절하든 천 명이 거절하든 그것을 카운트하는 데 마음을 쓰는 대신 인터뷰에 응해 줄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닐 것이다. 인터뷰를 거절한 거지 내가 거절당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피하거나 관계를 끊으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와 매일 마주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싫은 티를 내는 게 아니라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틀렸으니 고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러니 상대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 있는가. 이해가 안 되는 채로 그를 지켜볼 자신이 있는가. 아마도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고. 우리는 그 공간에서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그날 저녁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큰 불운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이 나의 하루를 망치지 않게끔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면 그 말을 가슴에만 담아 두지 말고 그 사람에게 꼭 전했으면 좋겠다. 가깝든 가깝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해 주겠지 하며 그 말을 삼켜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여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멈춰 있는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지도 모른다. 관심과 애정이 담긴 좋은 말은 몇백 번을 들어도 좋은 법이다. 그러니 ‘나까지 그 말을 해 줄 필요는 없겠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힘내."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힘을 내야 하는 현실임을 더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는 것을…. 그 자각은 내겐 좋지 않았다. 눈물이 나는데도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얼른 울음을 그쳐야 했고, 괜찮지 않은데 억지로 괜찮은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그 상황 자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든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장례식장에 가서 남겨진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실제로 그런 순간에 연락을 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애써 어떤 특별한 말을 해 주려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 순간 그 감정을 혼자 겪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면접에 떨어졌을 때나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 건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모르면 ‘내가 뭐가 부족했던 걸까’ 곱씹으면서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들은 우리를 짓눌러 위축되게 만든다. 그래서 거절의 순간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은 단순한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불필요한 오해에 갇히지 않도록 돕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예의다.

우리는 장애나 병을 가진 사람들을 무력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바라보기 쉽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시선이 그들에게 병보다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긴 시간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우리의 일상을 채워 주고 있는 이웃들―세탁소, 정육점, 생선·야채·과일 가게, 슈퍼마켓, 빵집―의 존재를 말이다.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말했다. 절친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편의점, 카페, 분식집, 버스와 지하철, 아파트와 사무실 엘리베이터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사회적 경험이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상대가 오늘 하루 잘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소소한 말들과 작은 친절이 우리의 하루를 바꾸고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

모모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재주로 많은 친구들을 얻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모모처럼 해 보면 어떨까. 단 섣부른 충고나 조언을 해선 안 되고, 멋대로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그저 가만히 온 마음을 다해 정성스럽게 잘 들어 주어야 한다. 그 전에 당신의 시간을 온전히 그를 위해 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어 본다.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운이 좀 안 좋았던 것뿐이라는 그의 말이 병마와 싸우느라 지친 이들에게 꼭 가닿기를, 그래서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상대방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바란다. 하지만 때로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이제는 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그 마음을 다 담을 길이 없을 때, 내가 가진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그저 더 못 줘서 안달 나고 상대방이 그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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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가족 찾기에 평생을 바쳐 온 그는 은퇴 후 백석대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쉽게 수락하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느라 정작 자신의 가정은 잘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그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고, 그런 자신이 과연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 싶었다.

아이들이 필요로 했던 건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훌륭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아버지란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어느 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학생들도 내 자식처럼 가르쳐야 하는데 그 전에 너희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아이들이 너무 늦었다며 자신을 원망하고 거부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은 무릎까지 꿇어 가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만 챙기느라 자신들을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동안 아버지도 참 힘들고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아버지에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용서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이 교수는 아이들이 자신의 용서를 받아 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을 쳤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못 할 말이 있을까 싶지만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겠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고맙다면 고맙다고 말해야 하고, 미안하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이 언제든 증오와 허세와 자만심과 특권 의식에 빠져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를 수 있음을, 그것이 우리 모두를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곧 사라지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지구 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지구를 망칠 권리는 현재 살아 있는 80억 명의 사람 중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말한다. 일단 일이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런데 하마구치 감독은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사람을 챙기라고. 바쁘다고 말하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나에게 묻는다. 정말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람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가. 하마구치 감독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챙기는 데 거창한 이벤트나 특별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요즘은 제삿상에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는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알고 있을까. 자녀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오늘 숙제는 다 했냐’는 말 대신 요즘 좋아하는 건 뭐냐고 물어본 적은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르면 더 늦기 전에 물어봐야 한다.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어떤 죽음을 바라느냐고….

배우 윤여정, 그녀는 자신의 과거사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지만 그에 대해 억울하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똑같이 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낯선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실수를 저지를까 봐 조심하며 살았다.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고 내 인생만 아픈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세상이 나를 배척하고, 부당하게 거부하는 듯한 날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뾰족해져서 누가 나를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에게 다 쏟아붓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라고 오늘이 쉬웠을까. 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 그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릴 적 나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거라고, 열심히 살면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내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때때로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다큐 3일’과 ‘유 퀴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들이 불행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끝내 버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라는 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날 그 말은 내게 깊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것이라고. 그리고 한번 믿어 보면 어떨까. 지금은 너무 춥고 힘들지만 겨울은 지나갈 테고, 그러면 따스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분명히 봄은 온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수를 ‘부끄러운 것’, ‘벌받아야 할 것’으로 배워 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와 실패를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될 텐데, 그럴 바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 기술 혁신을 이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히려 실패를 권장한다. 그들은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경험을 대기업에 취업한 경험 못지않게 좋은 경력으로 인정한다. 실수와 실패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취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역시 성공하려면 실패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견디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쉽게 바뀔 리 없다.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 또한 단번에 생기기 어렵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어려울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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