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학문•철학/천도교

1905년 3대 교조 손병희에 의해 동학에서 개칭된 종교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단순한 명칭 변경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오늘날 높은 평가를 받지만, 당시에는 민란에 불과했다. 1차 봉기 때는 조선 왕조를 대상으로 거병했고, 2차 봉기 때는 일본군을 몰아내려 봉기했지만 조정에서는 농민군을 위협적으로 인식했고, 결국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을 와해시키고 만다. 당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졌던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금치 전투때 관군을 지휘했던 이가 바로 지석영이다(그는 종두법을 보급하고 한글 연구에서 중요한역할을 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도 몹시 비판적이었고, 안중근은 자서전을 통해평생의 업적 중 하나가 황해도 동학도를 물리친 일로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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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극의 몇몇 조합은 당신이 실제로 가족과 상호작용할 때 사용하는 의사소통 유형과 유사하다. 어떤 조합에서는 가슴이 아파질 수도 있다. 역할극을 함으로써 어렸을 때 부모님과 살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걸 당신 자신을 처벌하는 방망이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아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처음 이 연습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자신이 해오던 행동을 공개적으로 해보라는 요청에 반발심을 나타내곤 한다. 그런 자기 행동에 은근히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균형 잡힌 시각과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자기 성향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거나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은 겉보기와 달리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어릴 때 끔찍한 상처를 받고 오랫동안 방치된 경험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또다시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다. 이걸 바꾸려면 애정 넘치고 끈기 있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해주어야 하며, 본인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

원하는 만큼 충분하게 유연하고 수평적인 반응을 보였든 그렇지 못했든, 당신은 이제 대응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잘 이해하게 됐을 것이다. 그 다양한 대응 방법을 연습하다 보면 자신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대응해왔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대응할 때 그 이유를 금방 알아챌 것이다. 처음에는 괴로울지 몰라도, 이런 깨달음은 그동안 당신이 겪어온 일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해하고 나면,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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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문화/몸뻬

몸빼는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바지다. 발목과 허리가 고무밴드로 단단히 잡혀 있는 것에 반해 통이 넉넉하여 일하기에 좋다. 더구나 입고 벗기도 좋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도 부담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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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유적•유물/석기

보통 선사 시대를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던 시대로, 주먹도끼가 대표적 도구다. 지금 주먹도끼를 보면 돌 뭉치 정도로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인간이 가진 도구의 전부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먹도끼로 사냥하고, 주먹도끼로 음식을 하고, 손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을 모두 주먹도끼에 의존했다. 더구나 구석기 시대 때는 이동생활을 했기 때문에 여러 물품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웠고, 야생 동물과의 경쟁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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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장소/경희궁 일대

경희궁은 종로구에 있는 조선의 궁궐로, 다른 궁궐에 비해 아픔이 많다. 이곳은 광해군에 의해 건립된 공간으로, 정작 이곳에서 정사를 본 인물은 인조다. 광해군이 궁궐을 완공하기 전에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이괄의 난 당시 창덕궁과 창경궁이불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영조가 죽었고 정조가 즉위했다. 순조 때 큰불이 나서 절반 정도의 건물이 불탔고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철거됐기 때문에 현재 존재하는 조선의 궁궐 중 규모가 가장 미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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