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학문•철학/일천즉천

노비 세습 제도로 부모 중 한 명이 천민이면 자식은 무조건 천민이 된다.

한반도의 노비 제도는 악명이 높다. 보통 노예 제도는 전쟁이나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발생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상대 나라의 남녀를 잡아와서 부리거나 채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구속했다. 하지만 광범위한 영토 확장이나 산업 발전이 부재한 한반도에서는 이런 방식의 노예 제도가 발전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노예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높았다. 조선 시대의 양반은 노비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거리에 나갈 때는 꼭 노비가 앞장서거나 말고삐를 잡아야 했고, 일상의 각종 잡일은 모두 노비 몫이었다. 더구나 여성 노비는 남성 양반들의 성노리개 역할까지 해야 했다. 다만 로마 제국처럼 노예를 집단적으로 부리는 농장이 발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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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문화/도깨비

도깨비에 대한 믿음이나 신앙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데 악귀를 쫓는 신‘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전통 기와 건물에서 지붕의 끝을 덮는 망와에 도깨비 문양을 새기는 이유도 그래서다.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 문 앞이나 창덕궁 금천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깨비에 관한 현대 이미지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요괴와 관련된 것들이다. 머리에 뿔이 달려 있거나 이빨이 무시무시하게 나 있으면서 괴상하게나 짓궂은 행동을 하는 것들은 도깨비가 아닌 일본의 요괴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 도깨비는 원혼이 아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으면 귀신이 되지만 도깨비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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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유적•유물/낙안읍성

전라남도 순천시에 현존하는 읍성. 읍성은 평지에 만들어진 성인데 지방 행정에서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북쪽에는 산이 있고 성의 중앙에는 관아가 있다. 낙안읍성의 경우 동문으로 출입을 하는데 쭉 걷다보면 오른편에 관아를 비롯한 각종 지방행정 기관이 들어서 있고 왼편으로는 민가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읍성은 도성의 구조를 고스란히 따른다. 수도 한양의 북쪽에는 궁궐이 있고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며 앉는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을이 분포하는데 읍성은 이러한 도성의 모양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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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장소/부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도시이자 무역항으로,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관련이 깊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곳에 쳐들어왔고 광해군은 이후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하면서 초량에 왜관을 두었다.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구한말 일본 상인들은 서울이나 인천뿐 아니라 부산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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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인물/신채호

신채호(1880년~1936년)는 《조선상고사》를 쓴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신채호의 어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민족주의자로 분류되는 신채호는 통념에 비해 훨씬 복합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는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에서 언론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등을 썼다. 한국 최초의 위인전 저술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또 만주 일대를 답사하며 고조선, 삼국 시대 등 고대사 연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다. 한국 근대 역사학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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