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제로 점으로 내려가라

왜 큰 부자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가난하였던 과거를 갖고 있을까? 어째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 사람들보다는 하류층에서 태어나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난을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하였던 생활 수준이 출발점이었기에 그곳으로 언제라도 ‘되돌아가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이 잘못되어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다 날리는 실패를 당하게 되어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가’ 재출발을 할 줄 안다. 수없이 많은 부자들이 사업이나 투자에서 실패하거나 홍수나 화재 등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가도 재기에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어려움이 닥칠 때 제로 점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제로 점에서 출발하였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제로 점으로 가는 것은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여야 하는 미지의 불안한 공포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실패 자체를 너무 두려워하다 보니 되는 일도 별로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서의 삶을 체험하여야 나중에 경제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나는 지금도 믿는다.

왜 재산을 갖고 이민을 간 사람들보다는 빈털터리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 그 낯선 땅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은가. 밑바닥에서 아무것도 없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낮은 생활 수준으로 살아가며 돈을 모았기 때문이다. 제로 점에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플러스의 희망으로 쌓여만 간다. 돈이 쌓이고 희망이 쌓여 간다. 빚이 있는데도 삶의 질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들면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돈은 쌓이지 않고 희망은 갉아먹힌다. 마이너스의 희망뿐이다. 그것이 절망이다.

내가 말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수준이라는 것을 "지워 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사람들은 ‘하면 된다’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도무지 할 것이 없었다. 뭘 하면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해도 해도 아무것도 안 될 것같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때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실망, 좌절이 절망 속에서 계속 쌓이면 자살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는 무의미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처한 고통이나 위기 상황, 상실감 등으로부터의 탈출구로 잘못 여겨지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오해했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절망의 골짜기에는 밑바닥이 없다. 아무리 깊이 떨어져도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릴 절망이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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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여러 모습 | 우리나라 사찰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따라 자연과 어울리는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1.내소사 2.무위사 3.개심사 4.운문사

질서의 미덕과 정서적 해방의 기쁨
영주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부석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량수전에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라서가 아니며, 그것이 국보 제18호라서도 아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해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뉨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이라는 원융(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 배치가 부석사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대화일 것이다.

무량수전 |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으로 우리나라 팔작지붕집의 시원양식이다.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함께 살아 있다.

무량수전에 이르면 자연의 장대한 경관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치달리는 소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곧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으로 돌아온 것이다.
무량수전에서 한 호흡 가다듬고 조사당, 응진전으로 오르는 길은 떡갈나무와 산죽이 싱그러운 흙길이다. 자연으로 돌아온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여운이다.
인공과 자연의 만남에서 인공의 세계로, 거기에서 다시 자연과 그 여운에로 이르는 부석사 순롓길은 장장 시오리(약6킬로미터)이건만 이 조화로움 덕분에 어느 순례자도 힘겨움 없이, 지루함 없이 오를 수 있다.
지금 나는 저 극락세계에 오르는 행복한 순롓길을 여러분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별스러운 수식이 있을 리 없는 이 부석사 진입로야말로 현대인에게 침묵의 충언과 준엄한 꾸짖음 그리고 포근한 애무의 손길을 던져주는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부석사로 오르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 적당한 경사면의 쾌적한 순롓길로 멀리 일주문이 있어 거리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비탈길은 그런 경박과 멍청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완만해도 비탈인지라 하체는 긴장하고 있다. 꾹꾹 누르는 발걸음의 무게가 순례자의 마음속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걷는 발뒤꿈치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사과나무의 줄기는 직선으로 뻗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사과가 잘 열린다. 한 줄기에 수십 개씩 달리는 열매의 하중을 견디려면 줄기는 굵고 곧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과나무는 운동선수의 팔뚝처럼 굳세고 힘있어 보인다. 곧게 뻗어 오른 사과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보면 대지에 굳게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역기를 드는 역도 선수의 용틀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사과나무의 힘은 꽃이 필 때도 열매를 맺을 때도 아닌 마른 줄기의 늦가을이 제격이다.
내 사랑하는 사과나무의 생김새는 그 자체로 위대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묵은 줄기는 은회색이고 새 가지는 자색을 띠는 색감은 유연한 느낌을 주지만 형체는 어느 모로 보아도 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체는 완벽한 힘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뿌리에서 나온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더욱더 사과나무를 동경하게 되었다.

비탈길이 끝나고 낮은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에 이르면 여기부터가 부석사 경내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이 안쪽은 도솔천이다. 여기에서 요사채를 거쳐 범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는 9단의 석축 돌계단을 넘어야 한다. 극락세계 9품(品)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한 것이다.

부석사의 돌축대들은 불국사처럼 지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인사 경판고처럼 장대석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제멋대로 생긴 크고 작은 자연석의 갖가지 형태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를 맞추어 쌓았다. 다시 말하여 낱낱의 개성을 죽이지 않으면서 무질서를 질서로 환원한 이 석축들은 자연스런 아름다움이라기보다도 의상대사가 말한바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을 입증하는 상징적 이미지까지 서려 있다. 불국사의 돌축대가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고의 명작이라면, 부석사 돌축대는 자연과 인공을 하나로 융화한 더 높은 원융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무량수전 앞 석등 | 받침대에 상큼하게 올라앉은 이 석등엔 조각이 아주 정교하게 새겨 있다.

범종루에서 다시 세 계단을 오르면 그것이 상품단(上品壇)이 되며 마지막 계단은 안양루(安養樓) 누각 밑을 거쳐 무량수전 앞마당에 당도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면 우리는 아름다운 자태에 정교한 조각 솜씨를 보여주는 아담한 석등과 마주하게 된다. 이 석등의 구조와 조각은 국보 제17호로 지정된 명작 중의 명작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 솜씨를 자랑할 것이다.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감정은 단아한 기품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러나 이 석등의 조각은 완벽한 기법이라는 형식의 힘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화려하면서도 단아하다. 마치 불국사 다보탑의 화려함이 석가탑의 단아함과 상충하지 않음과 같으니 아마도 저 아래 있는 당간지주를 깎은 석공의 솜씨이리라.

무량수전 건축의 아름다움은 외관보다도 내관에 더 잘 드러나 있다. 건물 안의 천장을 막지 않고 모든 부재들을 노출시켜 기둥, 들보, 서까래 등의 얼키설키 엮임이 리듬을 연출하며 공간을 확대해주는 효과는 우리 목조건축의 큰 특징이다. 그래서 외관상으로는 별로 크지 않은 듯한 집도 내부로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 속에 압도되는 스케일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무량수전은 특히나 예의 배흘림기둥들이 훤칠하게 뻗어 있어 눈맛이 사뭇 시원한데 결구(結構,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드는 것) 방식은 아주 간결하여 강약의 리듬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본 경치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맥의 줄기가 부석사의 장대한 정원인 양 아스라이 펼쳐진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그 경관에 취해 시인은 저마다 시를 읊고 문사는 저마다 글을 지어 그 자취가 누대에 가득한데, 권력의 상좌에 있던 이들은 또 다른 기념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현판 글씨를 써서 다는 일이다. 무량수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온 적이 있는데 몇 달 뒤 귀경길에 들러 무량수전이라 휘호한 것을 새겼다고 하며, 안양루 앞에 걸린 부석사라는 현판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쓴 것이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일없이 빈 바람을 가슴에 품으며 산자락이 닿는 데까지 눈길을 닿게 하여 벅찬 감동의 심호흡을 들이켤 뿐이건만 한 터럭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끝없는 예찬을 보내는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1980년의 보수공사 때 문화재위원들이 내린 아주 현명하고 위대한 판단 덕분이었다. 그 당시 보수공사 보고서를 보면 한결같이 부석사의 구조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만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그렇게 시행되었다. 문자 그대로 고색창연한 절을 유지하게끔 한 것이다.

2018년 부석사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통도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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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 학문•철학/시집살이

친영의 예법을 왕실에서 먼저 실시하여 사대부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라. 파원군 윤평이 숙신옹주를 친히 맞아가니 본국에서의 진영이 여기로부터 비롯됐다.
이는 《세종실록》의 내용으로, ‘진영‘은 결혼 후 여성이 남성의 집에서 생활하는 시집살이를 말한다. 조선 전기만 해도 일반적인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잘못이라고 여긴 세종이 바로잡기 위해 의지적으로 친영 제도를 관철시킨 것이다.

남성 중심의 유교 문화는 중국 송나라에서부터 본격화됐다. 성리학의 영향 때문이다. 송나라 이후 여성에 대한 예법은 ‘삼종지도‘, ‘칠거지악‘으로 집약된다. 삼종지도란 여성이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로, 집에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칠거지악은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다. 일곱 가지란 시부모를 불순하게 대하는 것, 자식을 못 낳거나 음란하고 질투가 심하고 고질병이 있거나 수다스럽고 도둑질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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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을 살펴보자. 왜 스트레스가 생기는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인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 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 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휴식을 충분히 갖고 쉬라고? 웃으라고? 한 달을 바닷가 해변에서 뒹굴어 보아라. 백날을 하하 호호 웃어 보아라. 문제가 해결되는가? 웃기는 소리들 그만해라.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정확한 방법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 모든 원인은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당신의 무지 그 자체이다. 즉, 외부적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 상황을 어떻게 해야 헤쳐 나가는지를 모르고 있는 당신의 두뇌 속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무지함의 뿌리는 바로 게으름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빈 맥주병을 쌓아 가지 말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라. 절대 회피하지 말라. 책을 읽고 방법론을 찾아내라. 그게 바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초제이다.

?결국 스트레스는 문제를 해결하면 없어지는데 아무리 방법을 모색하여 보아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들에 부딪히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므로 나에게는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침대에 누우면 5~10분 안에, 그것도 에스프레소 커피를 하루에 15잔 정도 마시지만, 잠이 든다. 풀지 못한 문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20여 년 전 글을 썼을 때도 이것을 얘기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과연 사람들이 내 말을 이해할까 싶어서였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Life is a process of solving problems(인생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영어로 그 말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나가는지를 ‘이론적으로’ 장황하게 늘어놓은 자료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예를 들어 말한다면, ‘문제의 핵심을 분석·파악하고 다른 해결책들은 없는지 모색하면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 후 보완하며 해결한다’는 식이다.
내가 볼 때 그런 말들은 뜬구름 잡는 이론에 불과하지만 딱 하나 마음에 드는 말이 있었다. Re-wire your brain인데, 직역하면 ‘너의 두뇌를 재구성하여라’가 될 것이고, re-wire가 전선을 새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의역을 한다면 ‘생각의 틀을 다시 구성하여라’라는 말이 될 듯싶다. 그러나 생각의 틀을 다시 구성한다는 것이 말하기는 쉽지만 우리 머릿속 전선들을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즉시 재배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미인식 상태(수면)에서 미인식 영역이 보내는 힌트(꿈)를 어떻게 인식 상태에서 재빨리 알아챌 수 있을까가 아니다. 나도 그것은 모른다. 꿈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효과를 볼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지만, 내가 문제 해결을 위해 꽤 오랫동안 사용하여 온 것은 꿈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식 상태에서 미인식 영역을 건드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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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에서 보는 백록담 봉우리 | 영실에서 한라산을 오르다보면 진달래밭, 구상나무숲, 윗세오름, 선작지왓, 백록담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나는 여기가 한라산의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영실 설경 | 영실 초입의 휴게소에 이르면 벌써 한라산의 장관이 펼쳐진다. 특히 눈 내리는 겨울날이면 눈 보라 속에 감춰졌다 드러났다 하여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영실 초입의 짙은 숲 | 영실 등반은 짙은 숲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들이 울창하고 제주조릿대가 빼곡히 퍼져 있어 숲의 깊이를 알 수도 없다. 비오는 날이면 곳곳에서 홀연히 폭포가 나타나곤 한다.

『남명소승』은 수려한 문장과 시편들로 구성된 기행문학의 백미로 1577년 음력 11월 3일 나주 본가에서 출발하여 이듬해 3월 5일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행정(行程)을 일기체로 쓴 글이다. 그중 7일간의 한라산 등반기는 미사여구를 동반하지 않고 발길 간 대로 기록한 내용인데 마치 그와 함께 백록담까지 오르는 듯한 기분을 잔잔히 전해준다.

오백장군봉에는 설문대할망 전설이 있다. 설문대할망은 제주의 창조신이다. 할망은 키가 엄청나게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현재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빨래할 때는 관탈섬에 빨래를 놓고,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빨래를 문질러 빨았다고 한다. 앉아서 빨 때는 한라산에 엉덩이를 걸치고 한 다리는 마라도에 걸치고 우도를 빨래판 삼았다고 한다. 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나온 흙더미가 오름이며,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게 한라산이다.

오백장군봉 | 절벽 날카로운 봉우리 수백 개가 병풍처럼 둘러 있어 오백장군봉, 오백나한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옆으로 난 진달래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마침내는 발아래로 깊숙한 숲까지 보게 된다.

오백장군봉 설경 | 눈내리는 날 영실에 오르면 흩날리는 눈보라가 오백장군봉을 감싸안으면서 맴돌며 번지기 기법을 절묘하게 구사하는 흑백의 수묵화가 된다.

오백장군봉에 봄이 오면 기암절벽 사이마다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연이어 피어나면서 검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바위들과 흔연히 어울린다. 그 조화로움엔 가히 환상적이라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 산허리를 타고 한 굽이 돌면 발아래로는 저 멀리 서귀포 모슬포의 해안가 마을과 가파도·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는 아련한 푸른빛의 망망대해다. 날개를 달고 뛰어내리면 무사히 거기까지 갈 것 같은 넓디넓은 시계(視界)를 제공해준다.

영실의 진달래 능선 | 진달래가 활짝 핀 영실의 능선은 행복에 가득 찬 평화로움 그 자체가 된다. 산자락 전체가 더이상 화려할 수 없는 진분홍빛을 발한다.

봄철 오백장군봉을 다 굽어볼 수 있는 산등성에 오르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떼판으로 피어난 분홍빛 꽃의 제전을 만날 수 있다. 바람 많은 한라산의 나무들은 항시 윗등이 빤빤하고 미끈하게, 혹은 두툼하고 둥글게 말려 있는데 진달래 철쭉 같은 관목은 상고머리를 한 듯 둥글고도 둥글게 무리지어 이어진다. 어떤 나무는 스포츠형, 깍두기형으로 반듯하게 깎여 있다. 자연의 바람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 앞에 인간의 손길이 만드는 인공미가 얼마나 초라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위질을 거의 본능적으로 하는 일본 정원사나 원예가가 보면 절로 무릎을 꿇을 일이다.

둘을 구별하는 여러 방법 중 진달래는 꽃이 피고서 잎이 나고 철쭉은 잎이 나고 꽃이 핀다는 사실과 진달래는 맑은 참꽃이고 철쭉은 진물 나는 개꽃이라는 사실에 입각하건대 그때 영실에 피어 있는 것은 진달래였다.

영실 기암은 사람에게 많은 기(氣)를 불어넣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대지의 기, 바다의 기, 설문대할망이 보내주는 기를 한껏 들이켜며 풍광에 취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구상나무 자생지에 도착하게 된다.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뛰면서 구상나무 숲길을 지나노라면 자연의 원형질 속에 내가 묻혀가는 듯한 맑은 기상이 발끝부터 가슴속까지 느껴진다. 영실이 인간에게 기를 선사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구상나무 숲길 | 진달래 능선이 끝나면 구상나무숲이 시작된다. 해발 1,500미터에서 1,800미터 사이에서 자생한 구상나무가 지구 온난화로 아래쪽부터 고사목이 되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원조이다.

윌슨은 동양의 식물을 연구한 몇 안 되는 서양 식물학자로 특히 경제적 가치가 높은 목본식물을 위주로 채집하고 연구했다. 윌슨은 아널드식물원에서 구상나무를 변종시켜 ‘아비에스 코레아나 윌슨’을 만들어냈다.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수·공원수 등으로 좋으며, 재질이 훌륭하여 가구재 및 건축재 등으로 사용된다. 특히 이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나무로 유럽에서는 ‘Korean fir’로 통한다. 그 로열티로 받는 액수가 어마어마하단다.
지금 아널드식물원에는 윌슨이 그때 한라산에서 종자를 가져다 심은 구상나무가 하늘로 치솟아 자라고 있다. 윌슨의 별명은 ‘식물 사냥꾼’(planthunter)이었는데 그는 이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그가 개발한 구상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려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 종자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제국주의가 총칼만 앞세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윗세오름은 영실과 어리목 코스가 만나는 곳으로 한라산 등반의 중간 휴식처로 탐승객(探勝客)이 간편히 식사를 할 만한 산장도 있고 대피소도 있으며 국립공원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윗세오름은 1100고지에서 위쪽으로 있는 세 오름(삼형제오름)이라 해서 ‘윗’자가 붙었다. 뭉쳐 부르면 윗세오름이지만 세 오름 모두 독자적인 이름이 있어 위로부터 붉은오름·누운오름·새끼오름이다. 이들을 삼형제에 빗대어 큰오름(1,740미터), 샛오름(1,711미터), 족은오름(1,698미터)이라고도 한다.
큰오름인 붉은오름은 남사면에 붉은 흙이 드러나 있어 한라산의 강렬한 야성미를 보여주고, 새끼오름인 족은오름은 영실로 통하는 길목에서 아주 귀염성 있게 다가온다. 길게 누운 듯한 누운오름은 누운향나무와 잔디로 뒤덮였고 꼭대기에 망대 같은 바위가 있어 방목으로 마소를 키우는 테우리들은 망오름이라고 한다.
바로 이 누운오름의 남쪽 자락이 선작지왓이다. 크고 작은 작지(자갈)들이 많아 생작지왓이라고도 한다. 선작지왓은 한라산 최고의 절경으로 꼽을 만한 곳이다.

백록담 | 백록담에 오른 이들은 한결같이 그 적막의 고요한 모습이 명상적이고 선적이며 비현실의 세계 같다고 했다. 정지용은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라고 했다.

윗세오름은 한라산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여기에 이르면 선작지왓 너머로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통째로 드러난다. 그것은 장관 중에서도 장관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은 뛰고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한라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의 반은 만끽할 수 있다.

"영실! 한라산 영실을 안 본 사람은 제주도를 안 본 거나 마찬가지야."

영실은 최소한 네 차례의 새로운 감동을 전해준다. 교향곡에 비유하면 라르고, 아다지오로 전개되다가 알레그로, 프레스토로 빨라지면서 급기야 마지막에는 ‘꿍꽝’ 하고 사람 심장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연극으로 치면 프롤로그부터 본편 4막,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이어진다. 그 서막은 영실 초입의 숲길이다.
영실에 들어서면 이내 솔밭 사이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른다. 본래 실(室)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옛 기록에는 영곡(靈谷)으로 나오기도 한다. 언제 어느 때 가도 계곡 물소리와 바람소리, 거기에 계곡을 끼고 도는 안개가 신령스러워 영실이라는 이름에 값한다.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라도 한차례 지나간 뒤라면 이 계곡을 두른 절벽 사이로 100여 미터의 폭포가 생겨 더욱 장관을 이룬다.
숲길을 지나노라면 아래로는 제주조릿대가 떼를 이루면서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며 온통 푸르게 물들여놓고, 위로는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나무들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아름답고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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