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여러 모습 | 우리나라 사찰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따라 자연과 어울리는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1.내소사 2.무위사 3.개심사 4.운문사
질서의 미덕과 정서적 해방의 기쁨 영주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부석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량수전에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라서가 아니며, 그것이 국보 제18호라서도 아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해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뉨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이라는 원융(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 배치가 부석사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의 대화일 것이다.
무량수전 |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으로 우리나라 팔작지붕집의 시원양식이다.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함께 살아 있다.
무량수전에 이르면 자연의 장대한 경관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치달리는 소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곧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으로 돌아온 것이다. 무량수전에서 한 호흡 가다듬고 조사당, 응진전으로 오르는 길은 떡갈나무와 산죽이 싱그러운 흙길이다. 자연으로 돌아온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여운이다. 인공과 자연의 만남에서 인공의 세계로, 거기에서 다시 자연과 그 여운에로 이르는 부석사 순롓길은 장장 시오리(약6킬로미터)이건만 이 조화로움 덕분에 어느 순례자도 힘겨움 없이, 지루함 없이 오를 수 있다. 지금 나는 저 극락세계에 오르는 행복한 순롓길을 여러분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별스러운 수식이 있을 리 없는 이 부석사 진입로야말로 현대인에게 침묵의 충언과 준엄한 꾸짖음 그리고 포근한 애무의 손길을 던져주는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부석사로 오르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 적당한 경사면의 쾌적한 순롓길로 멀리 일주문이 있어 거리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비탈길은 그런 경박과 멍청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완만해도 비탈인지라 하체는 긴장하고 있다. 꾹꾹 누르는 발걸음의 무게가 순례자의 마음속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걷는 발뒤꿈치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사과나무의 줄기는 직선으로 뻗고 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사과가 잘 열린다. 한 줄기에 수십 개씩 달리는 열매의 하중을 견디려면 줄기는 굵고 곧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과나무는 운동선수의 팔뚝처럼 굳세고 힘있어 보인다. 곧게 뻗어 오른 사과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보면 대지에 굳게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역기를 드는 역도 선수의 용틀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사과나무의 힘은 꽃이 필 때도 열매를 맺을 때도 아닌 마른 줄기의 늦가을이 제격이다. 내 사랑하는 사과나무의 생김새는 그 자체로 위대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묵은 줄기는 은회색이고 새 가지는 자색을 띠는 색감은 유연한 느낌을 주지만 형체는 어느 모로 보아도 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체는 완벽한 힘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뿌리에서 나온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더욱더 사과나무를 동경하게 되었다.
비탈길이 끝나고 낮은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에 이르면 여기부터가 부석사 경내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이 안쪽은 도솔천이다. 여기에서 요사채를 거쳐 범종루,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는 9단의 석축 돌계단을 넘어야 한다. 극락세계 9품(品) 만다라의 이미지를 건축적 구조로 구현한 것이다.
부석사의 돌축대들은 불국사처럼 지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인사 경판고처럼 장대석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제멋대로 생긴 크고 작은 자연석의 갖가지 형태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를 맞추어 쌓았다. 다시 말하여 낱낱의 개성을 죽이지 않으면서 무질서를 질서로 환원한 이 석축들은 자연스런 아름다움이라기보다도 의상대사가 말한바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을 입증하는 상징적 이미지까지 서려 있다. 불국사의 돌축대가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고의 명작이라면, 부석사 돌축대는 자연과 인공을 하나로 융화한 더 높은 원융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무량수전 앞 석등 | 받침대에 상큼하게 올라앉은 이 석등엔 조각이 아주 정교하게 새겨 있다.
범종루에서 다시 세 계단을 오르면 그것이 상품단(上品壇)이 되며 마지막 계단은 안양루(安養樓) 누각 밑을 거쳐 무량수전 앞마당에 당도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면 우리는 아름다운 자태에 정교한 조각 솜씨를 보여주는 아담한 석등과 마주하게 된다. 이 석등의 구조와 조각은 국보 제17호로 지정된 명작 중의 명작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 솜씨를 자랑할 것이다.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감정은 단아한 기품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러나 이 석등의 조각은 완벽한 기법이라는 형식의 힘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화려하면서도 단아하다. 마치 불국사 다보탑의 화려함이 석가탑의 단아함과 상충하지 않음과 같으니 아마도 저 아래 있는 당간지주를 깎은 석공의 솜씨이리라.
무량수전 건축의 아름다움은 외관보다도 내관에 더 잘 드러나 있다. 건물 안의 천장을 막지 않고 모든 부재들을 노출시켜 기둥, 들보, 서까래 등의 얼키설키 엮임이 리듬을 연출하며 공간을 확대해주는 효과는 우리 목조건축의 큰 특징이다. 그래서 외관상으로는 별로 크지 않은 듯한 집도 내부로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 속에 압도되는 스케일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무량수전은 특히나 예의 배흘림기둥들이 훤칠하게 뻗어 있어 눈맛이 사뭇 시원한데 결구(結構,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드는 것) 방식은 아주 간결하여 강약의 리듬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본 경치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맥의 줄기가 부석사의 장대한 정원인 양 아스라이 펼쳐진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그 경관에 취해 시인은 저마다 시를 읊고 문사는 저마다 글을 지어 그 자취가 누대에 가득한데, 권력의 상좌에 있던 이들은 또 다른 기념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현판 글씨를 써서 다는 일이다. 무량수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온 적이 있는데 몇 달 뒤 귀경길에 들러 무량수전이라 휘호한 것을 새겼다고 하며, 안양루 앞에 걸린 부석사라는 현판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쓴 것이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일없이 빈 바람을 가슴에 품으며 산자락이 닿는 데까지 눈길을 닿게 하여 벅찬 감동의 심호흡을 들이켤 뿐이건만 한 터럭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끝없는 예찬을 보내는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1980년의 보수공사 때 문화재위원들이 내린 아주 현명하고 위대한 판단 덕분이었다. 그 당시 보수공사 보고서를 보면 한결같이 부석사의 구조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만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그렇게 시행되었다. 문자 그대로 고색창연한 절을 유지하게끔 한 것이다.
2018년 부석사는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통도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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