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문화/스코필드

스코필드 (1889년~1970년)는 선교사로, 제암리학살사건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1968년 건국공로훈장을 받았고 외국인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3.1 운동은 일본에게 있어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본국에서 군대를 급파하는등 강력 진압으로 일관했고 특정 지역에서는 잔혹한 학살극을 벌이기도 했다. 제암리학살사건도 그 일환으로 일어났다.
아리타 도시오가 이끄는 일본 군경은 제암리 마을 주민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한 후 집중 사격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 일본 군경은 인근 교회건물과 민가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이어갔고 이날 29명이 살해당했다.
당시 스코필드는 선교사로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제암리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현장에 잠입하여 촬영에 성공했다.
그는 현장에서 부상자를 도운 다음 <제암리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중국과 미국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투고하여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뿐 아니라 일제의 여러 비인도적 행위를 조사한 후 해외 선교부에 보내 <한국의 상황>이라는이름으로 보고했는데 그중 일부는 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과 미국무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 등에 첨부될 정도였다. 교육 제도 개선, 공창 제도 폐지 등 각종 사회 개혁을 주창했고, 일제 지배에 친화적인 선교사와 공개 논쟁을 벌이기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44.유적•유물/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 시대 그림으로, 왼쪽 하단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상단으로 꿈속에서 본 풍경이 이어진다. 독특한 기암괴석을 표현한 탁월한 화법으로 이후 조선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끈기보다 끊기 - 성장보다 성숙이 필요한 당신에게
유영만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모두 3장에 걸쳐 끊어내기 전에 시작해야 할 것들과 끊어내면서도 간직해야 할 것들, 끊어내는 연습에 대한 팁도 알려주신다.
정답만 최고라 여기는 요즘, 작가님 소개에서부터 반해버렸다. 힘을 빼고 의식적으로 속도를 낮추고 읽었다.
성장하면 성숙은 따라온다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항상 남들보다 정상에 먼저 올라야 했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험난하고 가파른 세상을 우리 모두가 만든 건 아닐까?
맞다, 우리 조상들은 지구상에서 90퍼센트 이상이 멸종하는 중에도 살아남은 지구상에서 최고의 생명체였던 것이었다.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섭단 생각이 들지만 그런 정신은 높이 사고 싶다.

내려가면 지금 당장은 죽을 것 같지만 내려간다 해도 살아있는 한 기회는 온다고 하니 잘 내려가 보려고 한다.
왜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밝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어둠을 잘 이겨내고 밝은 새벽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축구선수 메시는 결정적인 찬스를 노리며 자세를 낮추고 절대로 아무때나 전력 질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때가 왔을 때, 그 때를 놓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 냈을까도 싶다.
직장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밥 먹자는 연락은 어쩜 나라면 선뜻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절박한 사정일 때, 배고플 때의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생명이자 희망이라고 한다. 힘을 낼 수 있는…!

‘천천히 서둘러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것과 급할수록 돌아서 가라는 의미다.
손자병법에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있다는데 돌아서 가는 길이 빠른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실 곡선으로 가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는 길이 더 빠르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빠른 직선 길에는 장애물이나 경쟁자가 많아 오히려 곡선 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왜, 어디로 뛰고 있는지를 방향성과 목적 의식을 잃지 않아야 하겠고 돌아가는 길이 결코 먼 길이 아니라는 것…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성공과 실패의 키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야하는 숙제를 주신다.

“생각이 말을 만들고, 말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인생을 바꾼다. 사람이 그만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영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4-02-01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직지계라는 사자성어를 배워 갑니다.

지금이야 2024-02-01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며 여러가지 보고 배웁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더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셔요~~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누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바짝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내가 결정한 거야.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내가 결정한 꿈이잖아. 나만큼은 나를 믿자. 믿어주자‘
생각해보라. 남들이 내 꿈을 비웃는다고 갑자기 아프리카의 생명을 살리고야 말겠다는 꿈이 사라져버린다면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이란 말인가. 나는 주변에서 내 꿈을 비웃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콧방귀를 뀌는 것으로 일관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 자체는 바람직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말했더라도 조언은 조언일 뿐,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나‘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삶‘이라는 길을 달리는 모험가다. 주도권을 넘긴다는 것은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쥐어주고 조수석도 아닌 뒷좌석에 가만히 팔짱 끼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이렇게 운전대를 빼앗는 사람을 ‘운전대 도둑‘, 자기 운전대를 고스란히 반납한 사람을 ‘운전대 기부자‘라고 한다.

학습에 대한 색안경을 어떻게 벗어던질 수 있을까? 사람마다 끼고 있는 색안경의 수와 종류가 전부 다르니 정답을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이 단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바로 ‘호기심‘
이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것. 학습하는 모든 것들을 호기심 어린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쓸모‘를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궁금해하고 갈구하는 것. 이 ‘호기심‘이라는 세 글자가 여러분이 학습에 대해 갖고 있는 색안경을 벗어던지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해당 유명인의 말과 내가 이야기하는 ‘즐겁다‘는 감정의 근원에는 차이가 있다. 해당 유명인의 말에서의 ‘즐겁다‘는 ‘신체의 편안함‘이다. 따라서 그 즐거움은 사실 ‘즐거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할것이 아니라 ‘나태함‘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유명인의 말은 ‘나태함에 취하면 안 된다‘는 뜻이지, ‘그 행위를 하며 반드시 괴로워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괴롭지 않아도 괜찮다. 학습은 ‘당신의 고통 감내 능력‘을 시험하는 녀석이 아니며 학생은 ‘자신의 고통감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자기연민self-pity‘이라는 단어가 있다. 스스로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불쌍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발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이렇게나 조금 자면서 힘들게 공부해!‘, ‘나는 괴로운 공부를 이렇게나 잘 버텨내는 사람이야!‘와 같은 것들을 증명하지않아도 정말 괜찮다.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한 후 새벽 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음, 역시 나는 대한민국의 고3이야. 오늘 하루도 잘 버텼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그저 버티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고 학습을 있는 그대로 즐겨보려 했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며 학습하는 시간읕 그저 버티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학습하는 순간들이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빈다.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끝까지 계속하기 힘들다. 물론 이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공부에 진절머리가 났거나,
공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학생들은 아무래도 단기간에 공부와 친해지기 어렵다. 열심히 하고는 싶은데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공부와 가까워질 계기, 즉 ‘공부 동기‘가 필요하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와 담 쌓던 사람이 ‘공부 모드‘로 ‘스위치온‘ 하기까지 공부를 놓아버리지 않도록, 잠깐 동안 버텨주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동기 부여‘다.
운전대를 내가 잡는다는 것, 즉 ‘주체성을 갖는다‘는 말은 다시말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힘, 즉 동기를 갖는다‘는 말이다. 일단 내 안의 동기를 이끌어내기만 하면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동기 충족을 위해 열심히 달리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율성‘, ‘유능성‘, ‘관계‘. 이 세가지 욕구를 공부와 잘 연결하면 공부에 의욕이 쑥쑥 붙는다.

세 가지 욕구를 이용한 동기 부여는 공부의 촉매제에 불과하다.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당장 공부가 필요할 때 급히 사용하는 미봉책 말이다.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지기를 바란다면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면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가슴에 새겨두길 바란다.
첫째, 현재 주체적이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괴롭히지 말것.
둘째, 색안경을 훌훌 벗어던지고 마음을 활짝 열어 공부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최선을 다할 것.
셋째, 그래도 잘 안 될 때에는 낙담하지 말고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충족을 통한 응급처치를 시도하되 그 역효과는 늘 유념할 것.

공부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지는 각자의 의지와 자유에 달려 있다. 왜, 위대한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이 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실패는 하나의 과정일 뿐, 이에 구태여 부정적 가치를 부여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실패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이를 피하려 안간힘 쓰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더 나아가 마음껏, 수도 없이 실패해보기를 바란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기보다 잘 넘어지는 법을 배워야 할 테니 말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생이 활짝 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설마 그 좋은 학교를 그만둘 사람은 없을거라고들 여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입학해보니 모두가 선망하는 이 학교에도 자퇴자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대는 그저 공부를 잘한다고 선택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방대한 공부량을 따라갈 수조차 없다.
상상과 다른 모습에 확고한 의지 없이 성적에만 맞춰 입학한 학생은 거의 대부분 방황했고, 그중 몇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 나 역시도 왜 의사를 하고 싶은지, 왜 이 학교여야만 하는지 답을 내리지 않고 기계적으로 공부하다 대충 점수 맞춰 입학했더라면 분명 방황했을 것이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타인이 끼어들 공간을 내줘서는 안된다. 의식을 날카롭게 벼리지 않으면 바로 남들이 만들어둔 컨베이어 벨트에 끌려간다. 자신의 삶에서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의 의식‘을 소중히 여기고 ‘나의 세상‘을 사랑하며, 모든 선택들을 의식하고 내리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손에 들린 물감과 붓으로 내 인생이라는 빈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것. 어떤 그림을 어떤 색으로 얼마나 그릴지, 그 모든 선택을 오롯이 스스로, 뚜렷한 의식하에 결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삶의 운전대를 잡는다는 의미다.

내 세상은 46억 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오직 나만이 가진 것이고, 내가 없어지면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단 하나의 유일한 세상이었다. 이렇게 소중한 세상이 멋대로 흘러가게끔 내버려두고 싶지않았다. 그때 결심했다. 나만의 세계가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내 삶의 운전대를 고쳐 잡겠다고.
그날 이후, 나는 삶을 완전히 다르게 대하게 됐다. 남의 의견이 더는 중요치 않았다. 나의 모든 관심은 ‘내가 가진 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실현하기‘로 향했다. 굳게 먹은 마음은 작심삼일이 아닌 일주일, 몇 달이 지나도 아니 지금까지도 그대로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깨어 있는 의식’이라은 ‘빛나는 지느러미’로 각자의 드넓는 바다를 힘차게 헤엄쳐나가기를 바란다.

간절함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스스로에 대한 불신의 씨앗만큼 치명적인 녀석이 없다. ‘어차피 해도 안되지 않을까‘, 혹은 ‘죽어라한다고 해서 과연 될까‘와 같이 가능성 따위를 재고 따지는 생각에서 놓여 나 스스로를 굳게 믿는 것이 간절함을 향해 나아가는 첫번째 단계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 이상 견뎌내지 못할정도로 스스로를 몰아가며 몰입한다는 뜻이다.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본인이 모든것을 다했을 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감히 ‘최선‘이라는 말도 함부로 내뱉지 못한다. ‘최선‘은 더는 못하겠다고 주저앉고 싶을 때 가까스로 버티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기적은 간절함으로 내디딘 마지막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간절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어떠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최선을 다한다‘라는 상투적인 말에 한없이 깊은 무게와 영혼을 부여하는 것,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나의 모든 것을 쏟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가서 도스토예프스키가 깨달은 것은 삶의 소중함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간절해야 하는 이유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 또한 무언가 궤적을 남기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왜 머뭇거리는가. 삶은 긴 여정이지만, 무언가를 성취해내기에 여유롭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꿈을 모시고만 있지 말고, 꿈을 살아내야 한다. 그 꿈이 다른 꿈을 불러오고, 내가 누군가의 꿈이 될 때까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게 내 인생의 주어진 시간에 대한 예의다.
지금 눈을 감더라도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누가 뭐래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한 톨의 미련도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살아야한다. 오늘의 공부가 마지막 공부인 것처럼, 오늘의 배움이 마지막 배움인 것처럼, 간절하게 공부해야 한다. 결국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43.장소/정동

서울시 중구의 덕수궁 뒤편 일대다. 태조 이성계가 아내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을 이곳에 만들면서 정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동은 한국 근현대사와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외국 공사관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세워졌고 일본에 대적하며 미국, 러시아 공사들과 관계를 맺었던 관료들을 정동파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덕수궁 뒤편을 쭉 따라 올라가면 정동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중명전, 정동극장이 이어져 있고 좀 더 올라가면 러시아공사관 유적, 이화여고 박물관, 프란체스코회관, 경향신문사가 보인다. 덕수궁 앞 편에서 경복궁방향으로 올라가면 서울성공회성당 등을 볼 수 있다. 성공회성당은 외관이 독특하고 아름다운데 6월 항쟁의 서막이 올랐던 곳이기도 하다.
정동은 다양한 문화예술을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다. 가을 단풍이 특별히 아름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