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은 일본에게 있어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본국에서 군대를 급파하는등 강력 진압으로 일관했고 특정 지역에서는 잔혹한 학살극을 벌이기도 했다. 제암리학살사건도 그 일환으로 일어났다.
아리타 도시오가 이끄는 일본 군경은 제암리 마을 주민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한 후 집중 사격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 일본 군경은 인근 교회건물과 민가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이어갔고 이날 29명이 살해당했다.
당시 스코필드는 선교사로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제암리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현장에 잠입하여 촬영에 성공했다.
그는 현장에서 부상자를 도운 다음 <제암리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중국과 미국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투고하여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뿐 아니라 일제의 여러 비인도적 행위를 조사한 후 해외 선교부에 보내 <한국의 상황>이라는이름으로 보고했는데 그중 일부는 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과 미국무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 등에 첨부될 정도였다. 교육 제도 개선, 공창 제도 폐지 등 각종 사회 개혁을 주창했고, 일제 지배에 친화적인 선교사와 공개 논쟁을 벌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