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문화/3저 호황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로 인한 경제 호황. 통상 1986년~1988년의 시기를 말하는데,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라고도 불린다. 1970년대에는 중동 산유국의 갈등으로 인해 두 차례 석유파동이 일어난다. 2차 석유 파동은 1978년~1980년인데 당시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경제 성장률이 급락하는 등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석유 파동은 산유국이 인위적으로 석유를 팔지 않으면서 유가가 급동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저유가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1988년대로 들어오면서 유가가 대폭 낮아지는데 원자재를 수입하여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가공 산업 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3저 호황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 대중문화와 소비 사회가 발전하는 등 대한민국은 과거의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의 모습에서 확연히 벗어난다. 선진국까진 아니어도 중진국 정도는 된다는 주장이 공공연했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화되기도 했다. 당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이 크게 히트한 것도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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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만큼은 대안 없이 성급하게 비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자신이 비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만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조금이나마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 때 높게만 보이던 벽도 서서히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해답에 목말라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때로는 직접 부딪쳐가면서 답을 구합니다. 저는 김육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으로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분이죠.

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사고와 행동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장보고처럼 산다고 해도 장보고만큼 성공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장보고의 성공 신화보다 그가 본 삶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어요. 노비에게서 태어나면 노비로 살고 육두품이면 끝까지 육두품인 거예요. 그런데 장보고는 달랐어요. 어려서는 타고난 한계를 뛰어넘고자 바다를 건넜고, 나이가 들어서는 단단한 신분제 사회의 벽을 두드렸어요.

장보고는 자신의 굴레를 탈피하길 원했던 겁니다. 비록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시도를 했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에 이름을 남길 만큼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죠. 저는 장보고가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장보고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단점을 메꾸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최대 무기가 활쏘기라고 생각했고, 이를 내세워 한계를 돌파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누군가는 그저 바라만 보고 누군가는 기꺼이 그 바다를 건널 것입니다. 삶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계기로든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꼭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 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가능성을 불신하지 말라고. 그러니 우리 쫄지 맙시다. 이미 엉망이라면 바다에 발 한번 담근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한 걸음 내딛어보자고요. 어린 활보가 그랬듯이.

어릴 적부터 이렇게 학습이 된 거죠. 누구도 그다음은 질문하지 않아요. 대법원장이 되어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사의 꿈을 물어봐야 하는데 명사의 꿈만 듣고 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들도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게 돼요. 그리고 자라면서 꿈을 잃어버립니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에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원하는 삶의 윤곽이 잡히는 법인데 모두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니까 그럴 틈이 없는 거죠.
그런데 요즘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려면요, 꿈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학생부 종합전형,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하려면 어릴 때부터 꿈을 정하고 그걸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줘야 하거든요.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꿈을 탐색하는 시기 아닌가요? 이미 꿈을 정해서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인생을 설계해나가기에는 일러요. 어른들도 그렇게 하지 못했잖아요. 그걸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건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가는 데 직업은 무척 중요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는 만큼 무엇을 위해서 그 직업을 원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도전도, 용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위한 도전이고, 무엇을 위한 용기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최종 종착지는 동사의 꿈이었으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꿈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꾸는 것입니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든요.
동사의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입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와 있든 동사의 꿈이 없다면 이제 진짜 꿈에 대해 생각해볼 때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은 만큼 뒤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훗날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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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유적•유물/조선왕조실록

한국의 대표적인 기록 문화유산으로,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연도와 일자순으로 정리했다. 총 1,893 권 888 책으로 이루어졌다. 고종과 순종의 실록도 존재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록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고종과 순종의 실록을 빼고 《조선왕조실록》이라 부른다.

실록은 단순 사실만 기록한 문서는 아니다. 사실을 기록하되 사관의 의견을 별도로 남겼다. 사실과 견해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록이 이상적인 문서라고 할 수는 없다. 국왕이 쫓겨나거나, 특정 인물이 역모에 몰려 죽거나, 반정이 일어나서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 수정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록되기도한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왕조실록‘이라는 서술 형식 자체다. 국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서술되고 고위 관료 중심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여전히 조선 시대를 이해할 때는 국왕, 고위 관료, 지배층 그리고 정치사 중심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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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에 있을 때 느낀 것 중 하나가 본인이 속한 집단 안으로 시야를 좁히면 쉽게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세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스스로가 못났다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니까, 거기서 빛을 보지 못하면 영영 패배자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습니까? 야구 경기에서 한 이닝이 종료하면 다음 회가 시작하듯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매번 게임은 다시 시작됩니다. 사회에서는 학교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죠. 혼자 똑똑한 사람보다는 소통을 잘하고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성과를 내지요. 저 역시 제자들을 통해서 그런 경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비단 학생들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직장인도 조직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삶의 전부라고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에 부딪힌다면 642년의 신라를 떠올려봅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결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예요. 가장 먼저 비전을 세워야겠죠? 위기를 극복하는 것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지 그 목표를 정해보는 겁니다.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듯이 말이죠. 어쩌면 지금이 혁신의 적기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고, 새로운 첫걸음을 떼야 하는 때가 온 것이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가 써 내려가는 인생 드라마에 최고의 반전이 되어줄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래를 할 때, 업무를 정할 때, 연봉을 높일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협상을 합니다. 심지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협상이 필요해요. 협상이란 상대방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것만 생각해서도, 상대의 것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어떤 종류의 협상 테이블이든 그 앞에 나서기 전에 서희와 원종의 외교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협상이란 이처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일입니다. 다짜고짜 들이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를 써서도 안 되고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겁을 먹고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돼요. 섬세한 감각을 발휘해서 상대의 패를 읽으며 상대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상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를 알아차려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제안을 해야 합니다.

협상가는 보통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협상가에게 중요한 건 훌륭한 말솜씨보다 정확한 눈이지요. 여기서 정확한 눈이란 정세를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의 의중을 감지하는 관찰력을 말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상상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그 속내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자꾸 갈등이 생긴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모르다 보니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미움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것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가 가성비죠? ‘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로 지불한 가격에 비해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이 클 경우 가성비가 높다고 말합니다. 소비 측면에서 보자면 체면보다 실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성비를 삶의 문제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요? 자존심만 세우다가 손해만 보는 경우는 가성비가 낮은 선택입니다. 반면에 겉치레는 좀 덜하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가성비가 높은 선택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은 선택을 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 역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다가 정작 제 삶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 장수왕을 떠올리며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거든요.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출신 학교를 묻고, 지역을 묻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역사적 사실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어요? 역사는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분명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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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장소/대교

우리나라는 한강 대교의 건설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한남대교 건설 이후1970년대에는 마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천호대교, 성수대교가 만들어졌고, 1980년대에는 성수대교, 성산대교, 원효대교, 반포대교, 동작대교, 동호대교가 놓인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올림픽대교, 서강대교, 청담대교 등이 개통되는데, 이를 통해 각종 한국의 건설 회사들은 중요한 토목 노하우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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