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교에 있을 때 느낀 것 중 하나가 본인이 속한 집단 안으로 시야를 좁히면 쉽게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세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스스로가 못났다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니까, 거기서 빛을 보지 못하면 영영 패배자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습니까? 야구 경기에서 한 이닝이 종료하면 다음 회가 시작하듯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매번 게임은 다시 시작됩니다. 사회에서는 학교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죠. 혼자 똑똑한 사람보다는 소통을 잘하고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성과를 내지요. 저 역시 제자들을 통해서 그런 경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비단 학생들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직장인도 조직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삶의 전부라고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에 부딪힌다면 642년의 신라를 떠올려봅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결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예요. 가장 먼저 비전을 세워야겠죠? 위기를 극복하는 것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지 그 목표를 정해보는 겁니다.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듯이 말이죠. 어쩌면 지금이 혁신의 적기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고, 새로운 첫걸음을 떼야 하는 때가 온 것이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가 써 내려가는 인생 드라마에 최고의 반전이 되어줄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어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래를 할 때, 업무를 정할 때, 연봉을 높일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협상을 합니다. 심지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협상이 필요해요. 협상이란 상대방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것만 생각해서도, 상대의 것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어떤 종류의 협상 테이블이든 그 앞에 나서기 전에 서희와 원종의 외교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협상이란 이처럼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일입니다. 다짜고짜 들이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를 써서도 안 되고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겁을 먹고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돼요. 섬세한 감각을 발휘해서 상대의 패를 읽으며 상대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상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지를 알아차려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제안을 해야 합니다.

협상가는 보통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협상가에게 중요한 건 훌륭한 말솜씨보다 정확한 눈이지요. 여기서 정확한 눈이란 정세를 파악할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의 의중을 감지하는 관찰력을 말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상상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그 속내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자꾸 갈등이 생긴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모르다 보니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미움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것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가 가성비죠? ‘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로 지불한 가격에 비해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이 클 경우 가성비가 높다고 말합니다. 소비 측면에서 보자면 체면보다 실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성비를 삶의 문제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요? 자존심만 세우다가 손해만 보는 경우는 가성비가 낮은 선택입니다. 반면에 겉치레는 좀 덜하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가성비가 높은 선택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은 선택을 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 역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다가 정작 제 삶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 장수왕을 떠올리며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거든요.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출신 학교를 묻고, 지역을 묻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역사적 사실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어요? 역사는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분명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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