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성격에 대해 우리는 빨리 정의를 내려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우리는 속히 백기를 올려야 한다.
사람들은 위만 바라보고, 위를 향해 오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빨리 오르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다. 어쩔 수 없이 내려가야 할 때가 있다고는, 상상도 하기 싫어한다.
오랫동안 성공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이 언제나 꼭대기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르는 데도 익숙했지만, 내려가는 데도 탁월했다. 내려가야 할 시기가 오면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남들보다 일찍 내려갔기 때문에 충분히 쉬고 다시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빨리 올라 정상에 도달했다.
맞설 수 없을 때는 빨리 포기해야 한다.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포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좋아하지만 잘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계는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다. 몸으로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체험적 깨달음의 언어가 몸의 언어다. 몸의 언어로 무장한 사람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관념적 지식으로 현실을 재단하고 평가하기 전에 몸으로 겪으면서 생긴 신념과 체험적 지혜를 믿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아니 더 심각한 경제 빙하기로 돌입할 가까운 앞날도, 기존 지식으로 평가하고 예측해서 미리 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살아가거나 사업을 해서는 우리 모두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옛날에’ 타령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자랑스러웠다. 옛날에는 우리 집이 그렇게 대단했다고 하니 어깨에 힘을 줘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꾸 듣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좋았던 옛날이야기가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비탄으로 끝맺음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추억은 마취제일 뿐이다. ‘왕년에’는 현실에 대한 관점을 왜곡시킨다. 마음속에 이상화시킨 과거를 현실과 비교한다. 현실이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는 선이고, 현실은 악이다. 하지만 과거를 찬양하며 현실에 불만을 토로해봐야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더욱 멀어질 뿐이다.
정상을 향해 희망의 발걸음을 옮기던 기억을 놓아둔 채 내려가야 한다. 과거의 희망은, 지금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목표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안전하고 빠르게 산 밑에 도착하는 것이다.
꿈도 책상에서 머리로 꾸는 게 아니다. 희망도 멀리 있을 때 밤하늘의 별처럼 더 빛나 보인다. 이제 행복한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선 생존 자체를 확보해야 한다. 생존 없는 생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망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처절하면서도 간절한 노력이 지금 여기서 바로 이루어질 때다.
새는 뼈의 안쪽이 비어 있다. 뼛속까지 비워냈기 때문에 높이 날 수 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정된 에너지를 집중시켜 더 풍성한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강물도 자신을 버려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 물리적인 짐만이 아니다. 마음속 짐까지 버리고 비워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다른 패러다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갖고 있는 것, 익숙하고 습관적인 것,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옛날을 예찬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개 이 시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거는 되풀이되는 일이 없다. 설혹 일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지라도, 과거를 복제하듯 재현하는 일이란 없다. 현재와 같은 양극화 사회에서 고도성장이 재현된다고 해보자. 과연 그 결실이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고도성장 시절의 추억은 역사에 넘겨주고, 우리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경제 빙하기에 접어든 지금, 고도성장 시절의 영광에 젖는 것은 히말라야 산등성이에서 선 채로 잠이 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꿈속에서 옛 기억을 더듬는 사이, 저체온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우리들을 위험으로 내몬다.?그러니?미련을 버리고 깨어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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