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Festina?lente).’ 원래 아우구스투스(Augustus)?황제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후 이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Festina?lente’라는 말은 ‘서둘러라’를 의미하는 ‘festina’와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의 합성어다.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 보면 서두를 수 없다. 따라서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순을 넘어서 역설적으로 들린다.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멈춰야 할 시기를 아는 지혜와 ‘천천히’의 여유가 조급함보다 중요하다. ‘천천히 서둘러라.’ 이 말은 두 가지에서 의미심장하다. 먼저,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다. 상식적으로는, 곡선으로 가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는 길이 빠른 길이다. 그러나 빨리 가는 직선 길에는 장애물도 많고 경쟁자도 많은 법이다. 그래서 우회하는 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도 있다.
직원들은 사장의 마음을 모른다. 수줍어하면 안 된다. 속마음을 과감하게 표현하라.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그들이 알아야 한다.
직원들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도록 자긍심을 세워주어야 한다.
직원, 특히?MZ?세대에게 업무를 부여할 때, ‘3요 질문’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3요 질문은 상사가 뭔가를 하라고 지시하면 젊은 직원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질문이다.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상대방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차분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다.
성공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줌으로써 한 계단씩 쌓아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팽개친 채 혼자만의 힘으로 혼자만의 성공을 이뤄낸 사람은 찾기 어렵다. 성공하려면 집안부터 일으켜세워야 한다. 식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성공은 의미가 없다.
사업에서의 성공은 직원과 관계회사들을 배불리 먹여주면서 시작된다. 고객에게는 푸짐한 만족을 선사해야 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사장은 직원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서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정치인들 역시 국민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상대방의 시각으로 다시 느껴보아야 한다.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물건을 훔치면 범인이지만 마음을 훔치면 연인이 된다.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최우선의 일은 마음관리다. 특히 경제 빙하기 시대에는 다른 모든 관리보다 마음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불태우면 다른 것이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돌파할 혜안과 대안을 만들어낸다.
연구팀은 소빙하기의 강추위 때문에 나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에 착안했다. 나무들이 성장하는 대신 매우 내밀해졌다는 것이다.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는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이테 간격이 넓은 것은 여름에 자란 흔적이고, 나이테 간격이 좁은 것은 겨울의 기록이다. 따라서 나이테 간격이 극히 좁다는 것은, 그만큼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눈보라에도 나무는 나목으로 버틴다.
어떤 나무들은 빙하기에도 견디면서 자란다. 사람들이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자란다. 작은 성장이지만 의미심장한 성숙을 통해 튼튼하게 자란다. 그런 나무는 외형 성장보다 내면 성숙을 통해 거듭난다. 빠르게 성장한 나무는 충격에 약하다. 자칫하면 부러진다. 그러나 더디게 자라난 나무는 웬만한 충격과 압력에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내성을 갖고 있다. 시련과 역경을 견뎌낸 대가이기도 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는 혹독한 추위를 버티면서 참아내고, 그 세월을 마침내 내면으로 승화시킨 나무가 들려주는 매혹의 소리인 것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가 고스란히 기록된 나이테, 그것이 신비한 소리를 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매력이다.
책을 읽지 않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남다르게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꿈은 몽상이나 망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공하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꿈을 머리로만 꾸는 경우가 많다.
꿈꾸기 전에 꿈에서 깨야 한다. 꿈은 머리로 꾸는 게 아니라 몸으로 꾸는 것이다. 경제 빙하기일수록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더욱 공부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실험하고 모색하며 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독서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고, 깨달음을 얻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것을, 하다못해?TV?쇼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보았다. 꾸준한 독서가 사람들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조명한?TV?프로그램을 여러 번 접했다. 하루?15분의 독서습관이 얼마나 큰 차이를 부르는지도 보았다. 그런데도 책을 읽지 않는다. 경제 빙하기는 우리에게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나이테를 스스로 좁혀가며 내밀한 성장을 이루라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프로페셔널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내면을 성숙시키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상상과 사색이라는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시련과 역경에 부딪혔을 때 유효하다. 요모조모 따져보면서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 독서광들이 성공에 이른 경쟁력은 사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책과 경험을 통해 빙하기 나무의 나이테처럼 다져진 지혜 말이다.
경제 빙하기가 계속되는 난국에도 좁혀야 할 거리가 있다. 바로 책과의 거리다. 읽을거리를 많이 준비해서 고독한 시간 속에서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을 접목시켜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난국을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멘탈 머슬(mental?muscle)과 복잡한 문제를 조급해하지 않고 풀어낼 지성의 폐활량도 늘어난다.
진짜 책 읽기의 완성은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이 아니다. 읽으면서 메모하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과 함께 토론한 다음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순간이다.
지하철에서 가볍게 본 책에서도 일생일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독서가들은 책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든 배울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다만 책을 읽는 나쁜 마음이 존재할 뿐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사물 전부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라고 생각하자. 챗?GPT가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시대, 인간은 이전과 다른 질문으로 무장해야 한다.
책은 내가 찾는 정답을 주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품게 만드는 매개체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이 새로운 질문을 잉태할 수 있다. 질문 없는 독서는 독소(毒素)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자세를 낮추고 끊임없이 배우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주연 배우는 하나같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고생길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고생의 뒤안길에서 갈라진다. 독서가들은 상처의 흉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록한다. 도전의 성취와 보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깊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견되는 ‘인간 명품’인 것이다.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책을 읽읍시다’는 더 이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국민 계몽 구호가 아니다. 경제 빙하기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결단의 전략이다. 빙하기는 우리들에게 내면적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거듭나기 위해 책을 읽자. ‘텅 빈 오만함’에서 ‘꽉 찬 겸손함’으로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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