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유적•유물/삼국유사

일연의 생각에 기존의 역사책들은 너무 고답적이었다. ‘괴력난신‘ 같은 신비한 이야기는 서술하지 않고, 오직 ‘예약‘, ‘인의‘같은 도덕적인 이야기만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연은 새로운 역사를 열었던 인물들이 알에서 태어나거나 신비한 일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에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덕택에 오늘날 삼국 시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삼국유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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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Festina?lente).’
원래 아우구스투스(Augustus)?황제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졌던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후 이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Festina?lente’라는 말은 ‘서둘러라’를 의미하는 ‘festina’와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의 합성어다.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 보면 서두를 수 없다. 따라서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 하지만 이 말은 모순을 넘어서 역설적으로 들린다. 서두르지만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멈춰야 할 시기를 아는 지혜와 ‘천천히’의 여유가 조급함보다 중요하다.
‘천천히 서둘러라.’
이 말은 두 가지에서 의미심장하다. 먼저,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다. 상식적으로는, 곡선으로 가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는 길이 빠른 길이다. 그러나 빨리 가는 직선 길에는 장애물도 많고 경쟁자도 많은 법이다. 그래서 우회하는 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도 있다.

직원들은 사장의 마음을 모른다. 수줍어하면 안 된다. 속마음을 과감하게 표현하라.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그들이 알아야 한다.

직원들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도록 자긍심을 세워주어야 한다.

직원, 특히?MZ?세대에게 업무를 부여할 때, ‘3요 질문’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3요 질문은 상사가 뭔가를 하라고 지시하면 젊은 직원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질문이다.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상대방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차분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다.

성공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줌으로써 한 계단씩 쌓아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팽개친 채 혼자만의 힘으로 혼자만의 성공을 이뤄낸 사람은 찾기 어렵다. 성공하려면 집안부터 일으켜세워야 한다. 식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성공은 의미가 없다.

사업에서의 성공은 직원과 관계회사들을 배불리 먹여주면서 시작된다. 고객에게는 푸짐한 만족을 선사해야 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사장은 직원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서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정치인들 역시 국민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상대방의 시각으로 다시 느껴보아야 한다.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물건을 훔치면 범인이지만 마음을 훔치면 연인이 된다.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최우선의 일은 마음관리다. 특히 경제 빙하기 시대에는 다른 모든 관리보다 마음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불태우면 다른 것이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돌파할 혜안과 대안을 만들어낸다.

연구팀은 소빙하기의 강추위 때문에 나무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에 착안했다. 나무들이 성장하는 대신 매우 내밀해졌다는 것이다.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는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이테 간격이 넓은 것은 여름에 자란 흔적이고, 나이테 간격이 좁은 것은 겨울의 기록이다. 따라서 나이테 간격이 극히 좁다는 것은, 그만큼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눈보라에도 나무는 나목으로 버틴다.

어떤 나무들은 빙하기에도 견디면서 자란다. 사람들이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게 자란다. 작은 성장이지만 의미심장한 성숙을 통해 튼튼하게 자란다. 그런 나무는 외형 성장보다 내면 성숙을 통해 거듭난다. 빠르게 성장한 나무는 충격에 약하다. 자칫하면 부러진다. 그러나 더디게 자라난 나무는 웬만한 충격과 압력에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내성을 갖고 있다. 시련과 역경을 견뎌낸 대가이기도 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는 혹독한 추위를 버티면서 참아내고, 그 세월을 마침내 내면으로 승화시킨 나무가 들려주는 매혹의 소리인 것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가 고스란히 기록된 나이테, 그것이 신비한 소리를 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매력이다.

책을 읽지 않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남다르게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꿈은 몽상이나 망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공하기를 원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꿈을 머리로만 꾸는 경우가 많다.

꿈꾸기 전에 꿈에서 깨야 한다. 꿈은 머리로 꾸는 게 아니라 몸으로 꾸는 것이다. 경제 빙하기일수록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더욱 공부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실험하고 모색하며 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독서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고, 깨달음을 얻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것을, 하다못해?TV?쇼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보았다. 꾸준한 독서가 사람들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조명한?TV?프로그램을 여러 번 접했다. 하루?15분의 독서습관이 얼마나 큰 차이를 부르는지도 보았다.
그런데도 책을 읽지 않는다.
경제 빙하기는 우리에게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나이테를 스스로 좁혀가며 내밀한 성장을 이루라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프로페셔널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내면을 성숙시키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독서다. 독서는 상상과 사색이라는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시련과 역경에 부딪혔을 때 유효하다. 요모조모 따져보면서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 독서광들이 성공에 이른 경쟁력은 사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책과 경험을 통해 빙하기 나무의 나이테처럼 다져진 지혜 말이다.

경제 빙하기가 계속되는 난국에도 좁혀야 할 거리가 있다. 바로 책과의 거리다. 읽을거리를 많이 준비해서 고독한 시간 속에서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을 접목시켜 색다른 생각을 잉태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난국을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멘탈 머슬(mental?muscle)과 복잡한 문제를 조급해하지 않고 풀어낼 지성의 폐활량도 늘어난다.

진짜 책 읽기의 완성은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이 아니다. 읽으면서 메모하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과 함께 토론한 다음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순간이다.

지하철에서 가볍게 본 책에서도 일생일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독서가들은 책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든 배울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다만 책을 읽는 나쁜 마음이 존재할 뿐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사물 전부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라고 생각하자. 챗?GPT가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시대, 인간은 이전과 다른 질문으로 무장해야 한다.

책은 내가 찾는 정답을 주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품게 만드는 매개체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이 새로운 질문을 잉태할 수 있다. 질문 없는 독서는 독소(毒素)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자세를 낮추고 끊임없이 배우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주연 배우는 하나같이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고생길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고생의 뒤안길에서 갈라진다. 독서가들은 상처의 흉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록한다. 도전의 성취와 보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깊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견되는 ‘인간 명품’인 것이다.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책을 읽읍시다’는 더 이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국민 계몽 구호가 아니다. 경제 빙하기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결단의 전략이다.
빙하기는 우리들에게 내면적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거듭나기 위해 책을 읽자. ‘텅 빈 오만함’에서 ‘꽉 찬 겸손함’으로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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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장소/통영 국제음악당

통영국제음악당은 통영국제음악제를 주관하는 곳으로,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시아 대표의 음악 축제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1917년~1995년)을 기리기 위한 음악의 밤, 통영 현대음악제에서 2002년 통영 국제음악제로 명칭이 바뀌어 해마다 치러지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와 국제음악당은 모두 작곡가 윤이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국제음악당에는 메모리홀과 베를린하우스라는 공간이 있다. 메모리홀은 작은실내공연장으로, 윤이상이 1974년에 발표한 <Memory>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한다. 베를린하우스는 윤이상의 베를린 자택을 재현한 공간으로 39년간 유럽에서생활하면서 117편의 작품을 만들었던 그의 여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밖에 윤이상 기념공원, 기념 전시관을 통해 윤이상의 친필 악보를 비롯하여 직접 몰던 자동차, 사용하던 첼로 등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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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다반사가 매순간 펼쳐지면서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時限附)인생을 산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에게 남은 세월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직선주로를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마주침을 귀히 여기기보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느끼는 만족감이나 성취감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질주야말로 목숨까지 앗아가는 원흉이 된다. 목표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목표를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디딤돌로 생각하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목표달성 자체만을 강조하고 그 결과에 몰두하다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마주침이나 부산물이 지니는 소중한 의미를 간과하거나 무시해버린다.
목표를 달성하는 일 말고도 일상다반사는 엄청 많다. 사소한 하루 일과에서도 무불경의 자세로 살아가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게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다 결정적으로 의미심장한 순간이다.

목표는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목표달성은 나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행복’의 원천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지금 그 일을 하는 과정에 애정과 관심이 없는 사람이 결과중심으로 일을 하면 쉽게 지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실이 큰 실패나 좌절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도전하면서 그 일을 즐기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서 생기는 우연한 부산물이 산물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능가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올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더 원대하고 심장 뛰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려가는 기술이다. 잘 내려가지 못하면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 올라가는 속도보다 내려가는 밀도가 행복감과 직결되어 있다. 내려가는 연습은 지금까지 배운 게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니 새로운 생각(rethinking)과 새로운 기술(reskill)로 무장하는?연습이다.

지금은 얼마나 빨리 올라가서 목표를 달성하느냐보다 얼마나 더 오랫동안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다시 올라갈 힘을 바닥에서 기르느냐가 중요하다.

행복은 ‘속도’에서 오지 않고 ‘각도’와 ‘밀도’에서 온다. 그런데 지금껏 목표달성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각도는 좁아지고 매순간 삶의 충만감을 느끼는 밀도감 역시 떨어져왔다.

속도를 높이면 주님을 빨리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각도가 좁아지는 이유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 주변의 다양한 행복을 즐길 수 없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각도를 넓혀야 한다. 각도를 넓혀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도 볼 수 있다.

행복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에서 나온다. 밀도는 우리가 매순간 느끼는 삶의 행복감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야 하지만, 다른 목표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를 요구한다. 목표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마지막 골인 지점이 아니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지나가야 할 간이역에 불과하다. 목적지를 향한 질주야말로 행복이 널려 있는 수많은 간이역을 지나치게 만드는 원흉이다.

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다 목숨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핵심가치(열정, 혁신, 신뢰, 도전, 행복)대로 매일 생각하고 행동하며 작은 스토리를 만드는 데 전력투구한다.?5가지 핵심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만든 스토리를 근간으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주력한다.
사람은 목표가 주는 숫자보다 숫자에 담긴 의미에 목숨을 걸 때 행복해진다.?5가지 핵심가치는 내가 사람을 판단하거나 어떤 일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자 규범이다. 물건을 사는 욕망에 끌려다니기보다 핵심가치 관련 경험을 사서 어제와 다른 감각적 각성체험의 얼룩과 무늬를 만들어나가는 삶을 사는 게 행복한 삶이다. 목표달성하다 목숨 끊기지 말고 목표달성하는 과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핵심가치 중심 경험을 사는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 밥을 굶는 사람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밥 한 그릇 먹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됐다. 누구에게든 사줄 수 있고, 얻어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박한 사정에 몰렸을 때의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전혀 다른 얘기다. 그것은 강력한 상징이다. 생존의 확인이며 위안이자 희망이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싹튼다. 밥 한 그릇이 때로는 우리들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때의 밥은 ‘단순한 밥 한 그릇’을 뛰어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의 성취와 실패는 평범하거나 비범한 어느 날의 양적 축적이 낳은 질적 반전이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의 역경이 인생 파란을 일으키는 경력으로 모습을 바꿔 나타난다. 지금 여기서 겪는 곤경이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는 풍경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지금 인생이 막막하다는 이야기는 당신 삶에 또 다른 서막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조(前兆)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낱말. 신뢰. 서로 믿어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범망경(梵網經)》에서는 인연을 맺은 사람끼리의 만남을 ‘겁(劫)’이라는 단위로 설명한다. 겁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 크기의 바위를 뚫는 시간이며,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에 사방 40리 크기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다.
사람끼리 옷깃이 한번 스치려면 500겁, 부부가 되려면 7,000겁, 부모 자식 인연이 되려면 8,000겁, 형제자매 인연에는 9,000겁이 각각 필요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산을 탔다는 사람들도 정상에 오른 것을 ‘산을 다 왔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온 것’이 아니다. 정상에서 머물러 살 수는 없다. 따라서 꼭대기에 올랐다는 것은 ‘절반에 이르렀다’에 가깝다. 그만큼을 다시 내려가야 함이다.
아무리 높고 귀한 자리라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대통령도 임기가 지나면 물러나야 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내려가야 한다. 정상은 종착점이 아닌 반환점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정상에 머물러서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내려가야만 한다. 내려가기를 끝끝내 거부하고 떼를 쓴들 비참해질 뿐이다. 악착같은 사람들의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인만큼 자존심 강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 많다. 낯선 대상을 발견하면 경계하다가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깔보기 시작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니까, 눈높이도 높은 곳에 올라 있는 것이다.

내려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사회적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고 내려가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려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진다. 기업들은 오로지 성장을 예측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어쨌든 지금은 내려가는 길. 자존심이 상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더 이상 오르막길이 없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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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인물/진흥왕

진흥왕(540년~576년)은 6세기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국왕으로 평가된다. 신라 국왕 중 유일하게 군대를 이끌고 함경도 일대까지진격하여 고구려 영토를 빼앗기도 했다.
신라는 한반도에서 가장 뒤늦게 발전한 나라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등 신라 신화는 다른 나라의 신화에 비해 복잡하기 짝이 없다. 박 ·석·김씨가 돌아가면서 권력을 행사할 정도로 후진적인 사회였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신라는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이었고, 지증왕 때 신라로 이름을 바꾼다.
신라는 차곡차곡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발전했고 오늘날 남아 있는 경주 지역의 거대한 무덤을 통해서도 그러한 발전상을 확인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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