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유적•유물/한옥

시대에 따라 한옥은 변화한다. 신을 모시는 공간이었던 대청은 마루로 기능이 바뀌었다. 인사동이나 북촌에 있는 한옥마을은 일제 시대 때 만들어진 계량 한옥들이다. 조선 시대 한양의 전통 한옥을 구경하려면 운현궁이나 남산한옥마을에 가야 한다.
한옥은 아름다운 기와지붕이 매력인데 팔작지붕이나 솟을대문같이 의도적으로 지붕의 모양을 화려하게 꾸며서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온돌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한옥은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 건축물과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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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기 위해 그녀에게 글을 써서 보내는 첫 번째 이유에는 분명히 퀴팅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이 이 딜레마를,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조언 칼럼니스트나 아빠를 비롯해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린다. 퀴팅이라는 선택지가 도무지 성공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련의 행동이 효과가 없을 때 본능적으로 그것을 바꾸려 한다. 살아남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투지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만두고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도 포함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그만두는 문제를 지나치게 깊이 생각한다. 결국 그만두느냐 계속하느냐 두 선택지로 좁혀지는 문제에서 복잡한 이유를 찾는다. 또 어떤 측면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얕게 생각하기도 한다. 퀴팅은 우리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신념이기도 한데 말이다.
퀴팅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퀴팅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과 관련된 신념이며 행복해지는 법에 대한 신념이자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지에 대한 신념이다.

당연하지만 그릿이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고난과 과제를 헤쳐 나가려면 회복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딜레마와 마주할 때마다 그릿을 믿을 만한 해결책으로 삼고 그릿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을 얕본다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탓하는 등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는 타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그들을 탓할 수도 있다.
퀴팅은 전원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퀴팅은 지적·정서적 능력이 결합한 복합적 행위다. 그래서 우리 뇌가 어떻게 퀴팅이라는 결론에 이르는지에 대한 과학자의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불현듯 닥친 깨달음의 순간에 대해 읽는 동안 자극을 받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길 바란다.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을지 모를 그 순간을 돌아보고, 그 순간이 다시 닥쳤을 때 바로 행동할 수 있는 준비하길 바란다.
그렇게 돌아본 결과가 퀴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거리감이 들고 추상적이며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그릿이라는 이상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조건에서 여러분이 직접 내린 결정이길 바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릿의 유무가 삶을 재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인식에 의문을 갖길 바란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자유를 여러분에게 주고 싶다. 언제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자유, 시작한 모든 일을 끝마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자유를 주고 싶다.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꺼이 그만두면 삶의 가능성은 확장될 수 있다. 이는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더라도 자신에게 기회가 많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퀴팅은 희망으로, 내일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의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써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얻는다.
생산적이며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비결은, 널리 알려진 끈기와 의지가 아니라 영리함과 민첩함, 유연성에 있다. 미래로 과감하게 뛰어들기 전에 지금의 짐을 덜어내는 그만두기라는 행동에 있다.
그만두어야 한다고 느꼈을 때야 말로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간이다. 이를 기쁘고 용감하게 받아들이자.
퀴팅은 나에 대한 사랑이며, 긍정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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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장소/사할린

일본 홋카이도 북쪽에 있는 섬으로, 오호츠크해를 마주한 러시아의 영토다.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던 사할린은 19세기 들어와 분쟁 지대가 된다. 러시아와 일본이 사할린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기 때문인데,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조약을 통해 사할린은 러시아의 영토가 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 개척에 신경을 쓰는 상황이었고 사할린을 포기하는 대신 우루프 섬, 쿠릴열도 북쪽의 18개 섬을 러시아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1905년 조선 지배를 두고 러일 전쟁이 일어났고 승리한 일본은 북위 50도 이남의 남사할린을 할양받는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수년간 북사할린을 점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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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인물/안중근

안중근(1879년~1910년)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다. 황해도 출신으로아버지 안태훈과 지역에서 훙기했던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던 중에 김구와 인연을맺었다.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어린 시절부터 강단 있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1907년 연해주에 가서 독립군과 인연을 맺는다. 20세기 초반 연해주는 항일 무장 투쟁의 근거지였는데 국내 진공전에 적극적이었다. 안중근도 이 행렬에 참여한다. 1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두만강을 넘어 국내 진공전을 펼쳤지만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단순히 일본군의 화력에 압도된 것이 아니다. 군사 훈련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전 수행은커녕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하는 병사가 있을 지경이었다. 이를 계기로 안중근은 의병투쟁에서 개인적인 결사 행동으로 방향을 바꾼다. 다른 한편에서는 체포한 병사를 풀어주는 등 박애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병사들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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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사건/부천서 성고문 사건

1986년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도화선 중 하나였다. 1980년대는 대학생 운동권의 전성기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롯한 각종 급진적인 사상이 수용됐고 정치적 민주화는 물론 노동자와의 연대 투쟁 등 다양한 사회 참여가 모색되던 시기였다. 수많은 대학생이 노동운동을 위해 무장 취업을 했다. 당시 23세의 의류학과 학생이었던 권인숙 역시 (주)성신이란 가스 배출기 제조업체에 ‘허명숙‘이란 가명으로 위장 취업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관들에게 체포돼 조사받던 중 부천서 상황실장 문귀동 경장에 의해 끔찍한 성고문을 당한다.
성고문 폭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변호사조차 성고문 문제를 덮어야 기소유예 해결할 수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권인숙은 폭로를 결심하고, 결국 변호인단은 문귀동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관련 경찰관 6명을 상대로 독직, 폭행 및 가혹 행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한다. 그리고 문귀동은 무고의로 맞고소하면서 사건이 널리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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