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마리오는 목구멍에 온갖 메타포가 걸린 채로 일주일을 보냈다. 베아트리스는 방에 갇혀 있거나, 어머니의 손아귀에 팔뚝을 내맡긴 채 물건을 사러 나오거나 바윗가를 산책했다. 마리오는 자신이 베아트리스 어머니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고 확신했기에 모래 언덕 사이로 숨어 다니면서 먼발치서 쫓아다녔다. 소녀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과부는 귀를 잡아채 되돌려 세웠다. 보호의 손길이라 하더라도 소녀를 아프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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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로써 가장 아끼던 컬렉션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오래된 책들을 사랑하시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사서 일을 하시며 파기 예정인 책을 모아두시거나 심지어는 나의 오래된 동화책마저도 놓아두실 정도로.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을 발견한 것은 나였다. 처음으로 시체를 수습한 것도 나였다 장례식을 추진한 것도 나였다 그런데 저들은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아들이라서, 핏줄이라서?

와르르
밖에 놓은 책이 무너졌다. 오래된 책, 낡은 책, 거의 손을 타지 않은 책 등이 보였다.
나는 문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책을 펴보며 편지를 찾아갔다.
시현에게 시현에게 수많은 편지가 모두 그에게 쓰여 있었다 어릴적부터 옆에서 부둥키며 살았던 나초자 모르는 그가.
2000, 1999, …1980년 점점 날짜가 오래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쓰인 편지로 보이는 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끼워진 1980.12. xx.

남은 재산을 나에게 모두 남겨 놓았다고?
하지만 나는 마지막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아프신 줄 알았다면 일에 미치지 말 걸 이번에 휴가 좀 많이 쓸걸…. 후회만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선생님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낼걸… 이라고.
나의 친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병원 신세였으며 부모님이 없던 나는 아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돈인 선생님의 마지막 재산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이 최고였던 나는 나의 신념과 맞는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벌 수 있으며 미래에 출세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직장인 청와대에 들어왔다.
미친 듯이 달려왔던 나는 쉬는 거 하나 없이 빡빡한 일정과 더불어 휴가 하나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연차를 냈던 나는 또다시 연차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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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인물/세종대왕
한글 창제, 과학과 기술 발전, 백성들을 위한 정책, 영토 확장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

세종은 자기 자신을 ‘수성의 군주‘로 간주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룬 나라를 잘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스스로 ‘공 세우기‘를 경계했다. 또 유교 국가의 군주로서 유교적 가치를 성실히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유교적 관점에서 백성은 먹을거리가 풍족해야 윤리적 삶을 살 수 있으며, 농업이 가장 이상적인 노동이었다. 이에 따라 세종은 《농사직설》의 편찬을 주도하고 각종 천문 기구를 제작해농업 생산력 향상에 힘썼다.
이러한 세종의 특별한 리더십 때문에 오늘날에도 수많은 신하가 기억된다. 집현전은 과학 기술과 학문 발전의 요람으로 평가받으며, 황희와 맹사성 같은 이들은 명재상으로 추앙받는다. 김종서와 최윤덕은 4군 6진을 개척하여 한반도의 지배권을 공고히 했고, 정인지, 정초, 이순지 등은 각종 과학 기술에 중요한 성과를 일구어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 태종에 의해 불필요한 정쟁의 요소가 제거됐기 때문에 세종이 좋은 조건에서 정력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널리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한글 창제를 둘러싼 신하들의 반대는 거의 없었다. 한글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만리가 상소를 올린 정도였고, 창제 이후에 실용성과 쓰임새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민간에 보급됐다. 애초에 한자의대체어가 아닌 보조어나 여성과 백성의 언어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문자 사용을 우려한 신하들의 지적이 있었는데 세종은 글을 통해 법을 알고, 이를 통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서 문자의 사용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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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잡이의 비디오

네 문장이 아름다운 건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나의 탄생은 전적으로 당신의 기록에 의지한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나만큼 물질이라서
나와 당신의 사이는, 나와 나의 시간이 된다
여전히 빈 공간을, 오 채우고 싶은 틈

여름을 잊지 않는 법

그 여름은 더웠어
덥지 않은 여름은 없지
아니 여름은 정말 더웠다

뿌리는 뿌리에서 만나
최최의 커플처런 곁에 머무른다
서로의 고독에 다가가은 춤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미래엔
식물이 집을 먹고
집은 숨을 내어 주지
중년 여자는 식물 속으로,
집은 그대로다

고무나무 잎이 달을 핥으면 소나기는 그 집을 훔쳐보다 간다
네 마중이 잠시 그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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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명문장/3.1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발표된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

3.1 독립선언서 내용의 일부다. 침략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사해 평등주의와 평화주의를 기반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또 민족과 민중의 권위를 이야기하면서 민족사의 정통을 세우려고도 했다. 독립선언서는 내용이 생각보다 긴데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은 일본에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동양 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3.1 운동 하면 태극기가 떠오르지만 운동의 시작은 독립선언서의 낭독과 보급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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