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내가 가장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일을 했다. 즉, ‘일하는 체‘를 했던 것이다. 죽어 가는 선생님이 잔디밭에서 저렇게 날 기다리는 동안에도 말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 난 정말로 그랬다. - P73

그는 나를 놓지 않으려고 내게 몸을 기댔고 내가 허리를 굽히자 양손으로 내 두팔을 잡았다. 그렇게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교수님이 너무나 다정스럽게 나를 대하는 것에 놀랐다. ‘내가 현재와 과거 사이에 세워 두었던 벽 때문에 우리가 전에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그만 깜박 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졸업식 날이, 서류 가방이, 떠나는 내게 보여 주었던 교수님의 눈물이 떠오르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P74

나는 고등학교 때 육상 코치를 ‘코치’라고 불렀던 것처럼 모리 교수님을 ‘코치‘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교수님은 그 별명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코치라, 그거 좋군. 그럼 내가 자네 코치가 돼 주지. 그러면 자넨 내 선수가 되는 거야. 이제 난 늙어서 살지 못하는 멋진 삶을 나 대신 살아줄 수 있겠지?"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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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의 내면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그는 나이가 많아서 아픈 것과는 다른, 그 이상의 뭔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 P47

그 모든 상황에도 교수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친절했으며,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는 ‘죽어 간다‘라는 말이 ‘쓸모없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 P54

몇 주일 후, 외삼촌은 자신의 말처럼 정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갑자기 시간이 귀하게 여겨졌다. 하수구에 마구 흘러들어 가는 물처럼 시간이 쑥쑥 빠져나가는 것만 같아서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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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많은 생물을 굴복시키지만 사람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W. H. 오든(모리가 좋아하는 시인) - P37

맨 마지막 수업은 아주 짧았다. 겨우 몇 마디 말로 끝나 버렸다.
졸업식 대신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졸업 시험은 없었지만 배운 내용에 대해 긴 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그 논문이 바로 이 책이다.
모리 교수님이 생애 마지막으로 했던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내가 바로 그 학생이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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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저에게 물어봅니다. 모리 교수님에 대해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지요. 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신념을 그리워합니다. 삶을 고귀하게 바라보던 그의 두 눈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의 웃음을 그리워합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 P18

그러나 역시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제가 그의 방에 들어설 때마다 저를 보면서 반짝이던 교수님의 눈빛입니다. 이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어쩌면 이기적인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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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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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믿어?
나는 믿지 않아.
전생에 한번은 폭사했다.
믿지 않는데 그렇게 믿고 있어. - P162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 P187

다시는 나나를건드리지 말라고 그 눈을 향해 말했다. 소라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한번 더 그렇게 하면 맛을 보게 될것이다.
어떻게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그 맛을 보게 될 것이다. - P191

나나는 이미 건강해. 소라는 밥에 고등어초절임을 얹어 먹으며 투덜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그 사람들보다 나나가 훨씬 건강하다고 나는 생각해 누가 뭐래도.
나나는 건강해. 그리고 대견해 나나도 대견하고 나도 대견하고 나기도 대견해, 그 사람들 말대로라면 나나도 나도 나기도 편부모 상황에서 자랐잖아. 이 정도로 자랐잖아. - P200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날면?
피곤하지 않을까.
피곤해도 있지 않을까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 것이 세상엔.
있겠지.
그럼 이게 그거야. 그거로 하자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 것.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데 그런데 이건 뭐야.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이름을 붙일까.
붙이자, 나비와 나방이 전부 있는 것으로.
나비와 나방.
나방비 나비방.
나나비.
나비바.
나비바가 될까.
나비바가 되자.
나비바.
소라, 나나, 나기가 합체하면, 나비바. - P203

수줍은 듯 일렁이던 달을 생각하자 묘하게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구나, 생각합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은 이런 말이었구나. 여러개의 매듭이 묶이는 느낌. 가슴이 묶이고 마는 느낌. - P225

애쓰지 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덧없고 하찮습니다. - P227

모두 잠들었습니다. 어둠속에서 그들의 기척을 듣습니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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