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년 사이에 내 상상력에 불을 지핀 기획전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예술계에서 가장 크게 이름을 날린 사람이 주인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생각하지도 않았을지 모를 무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였다. 하나는 16세기 기독교 세계의 중심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20세기한 흑인 공동체가 모여 사는 앨라배마주 시골로 우리를 데려간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이라는 사실을 빼면 뵬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의 소묘 작품들과 지스 벤드 지역 퀼트 제작가들의 작품을 각각 선보인 두 전시는 예술과 예술품의 제작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든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인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관한 나의 이해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만일 어떻게든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랬듯이 높게 쌓아 올린 비계 위에 서서 턱을 치켜들고 설 수 있다면 거장이 하루에 얼마만큼의 작업을 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담은 조르나타 네 개, 팔을 뻗고 있는 신도 조르나타 네 개 조각들을 세어보면 미켈란젤로가 붓과 물감통과 모래, 회반죽 자루를 가지고 흙손으로 그 높은 곳에서 570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는 <미켈란젤로: 신이 내린 소묘 화가이자 디자이너>라는 제목을 내걸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 주인공이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다는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다. 부오나로티 가문은 빈털터리였지만 귀족이었고 그의 아버지 로도비코는 아들이 손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했다. 그물처럼 교차하는 선들로 세심하게 공을 들여 음영을 표현한 작품을 보면서 로도비코가 한 가지면에서는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업은 육체노동이었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며 몸을 쓰는 노동, 숙련이 가능한 노동인 것은 확실하지만 지름길도 없고, 인내심을 가지고 한 획 한 획긋는 것 말고는 일을 진척시킬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겸허한 작업인 것이다.
그토록 불만으로 가득했던 사람이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한 근면성의 산물이다. 그는 긴시간을 바쳐 모델의 등과 팔의 모든 근육에 음영을 줬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전체에 걸쳐 약 430명의 인물을 그려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시빌의 발이 너무도 흥미로워서 엄지발가락이 땅을 짚은 모양을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그렸고, 그마저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종이 위의 무엇 하나 그냥 그린 건 없다. 한 획 한 획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에너지와 야심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이 끝난 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데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4년의 작업 끝에 천장화가 완성되자 "온 세상이 그 작품을 보려고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그의 동시대인은 전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동안 그려오던 예배당 천장화 작업을 끝냈습니다. 교황이 매우 만족했습니다"라고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다른 일들은 바랐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 오늘날 우리는 이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하이 르네상스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그가 대성당의 거대한 돔 지붕을 그린 가로세로 25센티미터 가량의 종이를 들여다본다. 로마의 지붕들 위로 높이 솟아오른 돔을 짓는 것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바로 그래서 우리가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그림에서 그는 그저 무지개 모양을 거듭해 그리면서 마음에 드는 곡선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하다 칭송을 받는 그일지라도 결국 어린아이 같은 연습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미켈란젤로가 70년 정도 걸려 완성한 작품들을 ‘끝내는데‘는 한 시간가량이 걸린다.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미켈란젤로의 성미를 아는 나로서는 그가 이 사실을 알면 꽤 짜증을 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전쟁 관련 소묘만 해도 수백 시간을 소비한 작업들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재미있는 여흥에 불과하다.
사랑과 경건함 그리고 기진맥진한 몸과 마음을 표현한 그 소묘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머리와 심장의 요구에 손으로 부응하려 애를 쓰며 하얀 종이 앞에 구부정한 몸으로 앉아 있는 노인을 상상한다. 미켈란젤로를 미켈란젤로로 만드는 건 그 다음에 그가 한 일이다. 습작을 해본 다음 그는 일어나서 그 스케치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말을 잘 듣지 않는 대리석을 망치와 끌로 두드리고 있었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내 손바닥 정도 되는 너비의 ‘바‘라고 부르는 수직 줄무늬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정도로 파도치는 것을 바라본다.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는 짙은 청색 데님 천이고 대부분의 줄무늬는 보라색이다. 그리고 서로 가깝지만 닿지는 않게 놓여 있는 하얀 천으로 된 두 개의 줄이 중앙에서는조금 벗어나 있지만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게으른 아가씨 바>라고 부른다. 나는 수평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보면 박음질 자국으로 구획이 지어진 일련의 재빠른 트랜지션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천천히 작품을 바라보면서 기다란 줄무늬를 따라여유 있게 시선을 옮기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다른 것들보다 색깔이 밝은 두 개의 줄
무늬가 광선 모양의 천사, 기쁘게 몸을 곧추세우고 있는 천사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퀼트의 기하학적 패턴뿐만 아니라 그 불완전함에 감동한다. 살짝 헤매는 듯한 구불구불한 선,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바느질 자국, 즉흥적으로 구성된 재료들. 거기에는 근면성과 영감을 비롯해서 예술의 위력 중 가장 희망을 주는 것들이 넘치도록 들어 있다.
앨라배마강을 상징하는 한편의 푸른 줄무늬는 진흙으로 된 강둑을 표현한 두 개의 붉은 줄무늬 사이를 흐르고 있다. 다른 한쪽에는 패턴이 있는 캘리코로 목화밭이 묘사되어 있다. 퀼트의 나머지 부분은 동심원처럼 늘어선 정사각형 블럭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하우스톱 패턴에서는 온갖 종류의 패턴과 색이 가능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글자 그대로 진짜 지붕들을 상징하고 있다.
큰 집 한 채와 작은 집 네 채를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이다. 이 풍경을 더 멀리까지 보이도록 줌아웃할 수 있다면 말굽 모양을 그리며 극적으로 구부러진 강이 지스 벤드의 세 면을 감싸고 흐르면서 세상으로부터 이 지역을 고립시키는 지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가까이 가서 페트웨이가 묘사한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지역의 역사를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가장 큰 집은 옛날 페트웨이 플랜테이션의 ‘큰 집‘이고, 다른 작은 집들은 노예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 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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