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로 만든 단단한 주사위를 던지는 이 세계를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운명의 시련에 맞서 무장하고, 사람에 맞서 철저하게 단련한 강철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인생은 그 모든 것이 투쟁이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싸움을 벌인다. 이렇기에 볼테르의 "인간은 검을 뽑아 들어야만 이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손에 무기를 든 채 죽는 것이다"라는 말은 이 상황에 아주 적당한 말일 것이다.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용을 지니는 것이 유용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모든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주어진 개성으로 존재함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의 유형과 본질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 사람의 개성이 변화하기를 바라거나, 있는 그대로의 개성을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나도 살고, 상대도 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사람을 견디는 법을 배우려면 무생물을 상대로 자신의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무생물은 역학적·물리적 필요에 의해 완강하게 우리의 행동에 저항한다. 그러한 기회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인내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행동에 분개하는 것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길 위에 굴러온 돌멩이를 보고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그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그들을 이용할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넘어서 볼 수는 없다. 사람은 자신의 지성의 척도에 따라서만 타인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맹인에게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는 타인이 지닌 좀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인 능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즉 정신적 능력이라는 것은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존경은 사랑과는 반대의 것이다. 존경은 사람의 의지에 반해 강요되는 것에 불과하고, 그런 이유로 대부분 은폐된다. 그래서 존경을 받으면 사람들은 내적으로 훨씬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존경은 우리의 가치와 연관되어 있고, 인간의 사랑에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사랑은 훨씬 더 주관적이고 존경은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둘 중에서 물론 사랑이 우리에게 더욱더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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