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중심의 미주 지역은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금 공급처였다. 1910년에는 여러 자작 가구들이 통합돼 대한인국민회가 만들어진다. 대한인국민회는 일종의 준정부 조직이었고 조선 왕조를 배척하고 민주 정부를 새롭게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등 급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한 아들이 안창호, 이승만, 박용만이다.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 상당 기간을 하와이에서 머물렀고 1960년 4월 혁명을 통해 하야를 당한 후 하와이로 망명해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박용만은 이곳에서 1914년 무장투쟁을 위한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한다. 오아후 섬 카할루우 지역의 약 1.660에이커의 파인애플 농장을 경영하던 박종수가 박용만의 의지에 공감하여 자신의 농장을 내놓았고 하와이 각 섬에서 한인 군인들을 모집했다. 여기서 농사일과 군사 훈련을 병행했고, 1914년 12월 기준으로 218명의 학생들이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이승만과 박용만의 갈등, 일본인들의 항의 그리고 미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폐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