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면 늘 우리가 생각하던 방식으로, 즉 독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하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너무 많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신이 그 대용품에 길들여져서 생각하는 법 그 자체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우리의 정신이 이미 다른 삶이 밟아서 다져진 길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의 사고의 과정을 따라가느라 자신의 사고의 과정이 생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독서를 너무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 독서를 할 때보다 현실 세계를 바라볼 때 독자적인 생각을 할 기회가 늘어나고 그럴 기분이 훨씬 많이 들게 되므로 책을 읽느라 현실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본래의 순수성과 힘을 지닌 구체적인 것과 현실적인 사물은 사고하는 정신의 아주 자연스러운 대상이라서 아주 쉽게 우리의 정신을 깊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진지하고 직접적이며 근원적인 특징이 있고, 모든 생각과 표현에 독창성이 있다. 하지만 책에만 의지하는 철학자는 전부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한 것이며, 개념도 다른 사람들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중고품만 잔뜩 모아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복제품을 다시 복제한 것처럼 희미하고 흐릿하다. 게다가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어와 시류를 타는 유행어로만 이루어진 문체는 직접 화폐를 주조하지 않아 무조건 외국 동전만 사용하고 있는 작은 나라와도 같다.

단순한 경험 역시 독서처럼 생각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독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군주와도 같다. 그들은 모든 일들을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자신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군주의 결정처럼 자신의 판단은 그의 절대적인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바로 그 자신에게서 시작하는 것이다. 군주가 다른 사람의 명령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독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허락한 것 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온갖 형태의 지배적인 의견과 권위, 편견에 사로잡힌 저급한 두뇌의 소유자는 법이나 명령에 묵묵히 복종하는 민중의 모습과도 같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주 넓은 의미에서만 생각하는 존재로 부를 수 있다는 의견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이후에는 깊은 생각이 없고 단순한 특징이 나타나더라도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일반적인 인간의 지적인 시선이 사실 동물의 시선을(미래나 과거를 인지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오직 현재에만 그 존재를 한정 짓고 있다.) 넘어서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도저히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심지어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 마치 잘게 썬 짚처럼 짧게 끊어져버려 더 긴 사고의 실을 이어내지 못한다.

독서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 생각해주는 것으로, 우리는 그 사람의 생각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따라잡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글 쓰는 방법을 배우려면 이러한 방식밖에는 없다. 즉 독서는 우리 스스로가 지닌 선천적인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이미 우리에게 그러한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능이 없는 사람은 독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저 차갑고 쓸모없는 기술만 익힌 천박한 모방자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수준 낮은 책은 많이 읽게 되지만, 좋은 책은 자주 읽지 못한다. 질 낮은 책은 정신에 독약이나 마찬가지여서 우리의 정신을 파멸시킨다.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은 질 낮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우리의 힘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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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기 위한 다양하고 많은 학교와 수많은 학생, 교사들을 보면 사람들은 인류에게 통찰력과 지혜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교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치고 있다. 즉 그들은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혜의 겉모습을 따를 뿐이다.
학생들은 지식과 통찰력을 얻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잘난 척을 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배운다.

나이가 적거나 많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모든 부류의 대학생과 대학 교육을 받은 자들은 대체적으로 지식을 얻으려고만 할 뿐 통찰력을 기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암석이나 식물, 온갖 전쟁과 실험 혹은 온갖 종류의 책에서 지식을 얻는 것을 명예로 삼는다. 그들은 그러한 지식은 통찰력을 얻기 위한 단순한 수단일 뿐이고, 그 자체로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책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하기만 한 것은 주제 그 자체가 지루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낡고 더러운 구두 밑창으로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듯이 훌륭한 저자는 무미건조한 주제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학문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위대한 일도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이다.
위대한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며, 다른 그 어떠한 것, 즉 생계는 그저 수단에 불과해야만 한다. 학문 자체를 위해 하지 않는 것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유형의 일이든 그것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위한 목적으로 행해질 때만 진정으로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책의 권수가 많은 도서관일지라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은, 책의 권수는 얼마 되지 않더라도 정리가 잘 된 도서관보다 효용성이 없는 것처럼 인간의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생각으로 철저하게 정리된 지식이 아니라면, 그 양은 훨씬 적더라도 충분하게 숙고된 지식만큼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독자적인 사고력은 우리의 의식이 어떤 순간에 외부의 환경 혹은 예전의 어떤 기억에 이끌리는 상황이 될지라도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인 어떤 환경은 독서와는 달라서 특정한 생각을 의식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자신의 본성과 그 당시의 기분에 맞는 것을 생각하도록 그 재료와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용수철 위에 무거운 짐을 계속 놓아두면 그 탄성을 잃게 되듯이 너무 많은 독서를 하면 정신의 탄성을 전부 빼앗기게 된다.

자신의 기본적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피어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만을 온전하게 제대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얻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란 다른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이나 다른 사람이 입다가 버린 옷에 불과하다.

그저 독자적인 인식의 대용품에 불과한 것으로 독서를 하면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끌려 다니게 된다. 만약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 책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책 속에 얼마나 많은 미로가 존재하는지, 얼마나 나쁜 결과로 이끌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수호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 즉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판단하며 올바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은 이미 옳은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의 샘이 말라버렸을 때만 독서를 해야 한다. 아주 뛰어난 두뇌를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종종 그러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생각으로 알아낸 것들은 책에서 단순히 그냥 얻은 것에 비해 100배는 더 가치가 있다. 독자적인 생각으로 얻어낸 진리는 꼭 필요한 부분이자 살아 숨 쉬는 우리 사고 전체의 구성요소로 우리 세계로 들어와 온전하고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고, 거기에서 나온 근거와 결론을 완전히 이해해 우리 전체의 생각과 색깔, 형식과 특징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습득한 지식은 그저 마치 의수나 의족 혹은 의치나 밀랍으로 만든 코,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피부로 성형 수술을 한 코처럼 그저 우리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독자적인 인식으로 얻은 지식과 진리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수족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소유가 된다. 사상가와 단순한 학자의 차이도 바로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독서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신만의 생각으로 확고하게 완료된 체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늘 연관성 있는 전체 체계를 발전시키려고 할 때 끊임없는 독서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강하게 흘러 들어오는 것만큼 불리한 작용을 하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전부 다른 사람의 정신에서 싹튼 것이라 자신의 정신적 체계에 속하는 것과 다른 색채를 띠고 있어 자신의 사고와 지식, 통찰과 확신의 전체 체계에 저절로 속하게 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머릿속에 가벼운 언어의 혼란을 일으키고 온갖 명확한 통찰력까지 빼앗아버려 정신세계를 거의 해체시켜버리기 때문이다.

평생을 독서를 하며 보내고 여러 책에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여행 안내서만 잔뜩 읽고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을 얻은 사람과도 같다. 이런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줄 수는 있지만, 그 나라에 대한 정확한 사정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고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는 반대로 평생을 생각하며 보낸 사람은 직접 그 나라에 다녀온 사람과도 같다. 이러한 사람만이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으며, 그곳의 문제를 한눈에 꿰뚫고 있고, 진실로 그곳의 사정에 훤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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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은 영원한 것이지만 즐거움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은 좁은 한계에 갇혀 있다. 모든 각 개체의 불행은 예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불행은 예외가 아닌 규칙이다.

우리는 온몸이 건강한 상태는 느끼지 못하면서도 신발이 작아서 꼭 끼는 것 같은 작은 부위의 고통은 쉽게 느낀다. 그것처럼 우리는 완벽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하찮고 사소한 일만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자주 지적하듯이 고통은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지만 행복과 평안함은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재난을 소극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대부분의 형이상학적 체계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재난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것이고,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자 좋은 것이다. 즉 모든 행복한 것과 욕구의 충족은 소극적인 것, 그저 욕망의 단순한 충족이자 고통의 소멸인 것이다.

인생에서 많은 불행을 겪을 때 가장 효과적인 위로는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여러 민족의 삶을 보여주지만 전쟁이나 반란 외에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 평화로운 시기는 짧은 휴식 시간이나 막간의 극으로 가끔 한 번 나타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빈곤과 무료함과의 투쟁일 뿐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는 곳마다 자신의 적을 발견하고 끊임없는 투쟁 속에 살다가 손에 무기를 든 채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삶에서 궁핍, 고난, 고통, 노력의 좌절 같은 압력이 없다면 사람들의 오만함은 폭발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증가해 억제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광포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배가 안전하고 똑바로 나아가기 위해서 배에 싣는 밸러스트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항상 어느 정도의 걱정이나 고난, 고통이 필요하다.

일, 고난, 노력 그리고 고통은 대부분의 인간이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운명이다.

고통은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쾌락과 행복은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인생이 행복했는지는 그가 얼마나 기쁨과 즐거움을 즐겼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고통이 없었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잘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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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명문장/7•4 남북공동성명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 통일 원칙들에 합의를 봤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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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학문•철학:실향민

한국 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남한으로 내려온 이들을 말한다. 1953년 휴전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은 500만 명이 넘는데, 황해도에서 내려온 이들이 가장 많았다. 1960년 조사에 따르면 황해도가 35%, 평안남도가 22%, 함경남도가 21%, 평안북도가 17%, 함경북도가 5%로 거리순에 따른 분포가 나타난다.
이들은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 정착했고, 그 밖에는 강원도와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 일대에 뿌리를 내렸다. 주로 1.4 후퇴 때 내려왔다. 강원도 속초는 주민 70%가 실향민이라는 조사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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