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된다니…!사실 지랄맞다는 표현은 나도 자주 쓰는 표현이라 왜 인지 낯설지 않았다.이 전에 <나의 어린 어둠>이란 책을 통해 조승리 작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검색해 보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제목이 참 인상깊었다. 청소년기부터 시력을 서서히 잃어간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치우치치도 않고, 흐트러짐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세상풍파와 뜻하지 않았던 상처들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데에 일조를 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했다.하지만 현실은 나보다 그녀가 훨씬 단단하고 성숙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고 앞으로 그녀의 행보도 응원한다.#이지랄맞음이쌓여축제가되겠지 #조승리 #달
나는 농담처럼 몸을 다 풀어놨더니 다시 굳게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뜬금없이 아홉수 타령을 해댔다. 자신이 아홉수를 호되게 치르고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관념들을 그저 핑계라고 생각했다. 아홉수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모르게 서른이 되면 뭐가 잘 풀릴 것 같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운명이 빙산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홀로 떠돌다 결국 녹아 없어져버리는 빙산처럼 나의 삶도 시간을 부유하다 무의미하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자괴감이 밀물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잠들기를 포기하고 오래된 영화를 보았다.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삼아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왔다.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탱고 수업은 내게 첫 도전의 시작이었고 내 가슴에 열정을 심어주었다.
그녀는 자타공인 성공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해 금융회사에 연구원으로 임원까지 역임했다. 마흔이 넘어 기다리던 아이도 임신했다."나는 천사를 얻었고 세상은 지옥이 되었어요."아이는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장애는 아이가 안고 있던 불치병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열여섯 살. 아이는 몸만 자랐을 뿐 신생아나 다름없었다."우리 아이는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는 병이에요. 그 사실을 아는 장애 학부모들은 내게 좋겠다고 말해요. 적어도 내게는 끝이 있으니까요."나는 장애 자녀를 남겨두고 가야 하는 부모와 장애아를 먼저 보내고 남겨진 부모 중 누구의 마음이 더 아프고 슬플지를 떠올렸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그 슬픔의 농도를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30년이 지났다. 내 첫번째 친구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서러움에 터뜨린 눈물처럼 굵은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다.
나는 출생신고를 두 달 늦게 했다. 엄마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몸이 약해 그랬다는 핑계를 댔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달랐다. 출산 당시 생활고에 시달렸던 엄마는 나를 보육원에 맡기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엄마는 하루만 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었다. 다음날 또 하루만 더.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보육원에 보낼 생각이 점차 사그라졌다. 그렇게 60일이 지났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
내 어머니도 가슴이 내려앉을 것처럼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지켜냈다. 그리고 장애를 판정받은 날, 엄마는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가슴을 쥐어짜며 통곡했다.하지만 그해 가을의 내 생일날, 나는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나를 낳고 나서 60일간의 이야기를 했다. 바구니 속에 핏덩이를 넣고 보육원 앞에 내려놨다가 두 걸음을 떼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바구니를 들어올렸다 내려놓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었노라고."너를 지켜내서 다행이야!"엄마가 내 등을 쓸며 말했다.그녀도 자신의 아기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너를 낳아서 참 다행이야."
나는 축하받은 졸업식의 경험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졸업 앨범은 소포로 받았다.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까짓 졸업식이야 앞으로도 몇 번이나 있을 테니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졸업식은 차마 참석하지 못했다. 중학교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도서관의 야외 벤치에 앉아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졸업식 진행과정을 가만히 들었다. 유난히 추운 2월이었다. 두 뺨이 따끔거리게 시렸다. 손끝이 꽁꽁 얼었는데 나는 끝까지 혼자만의 졸업식을 견뎌냈다.친구들은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이었다. 흥분과 기대, 아쉬움이 교차하는 현장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새 학기에 나는 장애인학교로 입학하기로 결정되었다. 어제까지 같은 방향을 보고 달렸던 친구들 틈에서 나만 빠져나와 이제까지 상상해본 적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소외감과 외로움이 옷깃 안을 파고들어왔다. 뼛속까지 시리게 추웠다.
나는 엄마가 들고 있던 부적을 가로채 박박 찢었다. 엄마가 화들짝 놀라 바닥에 뿌려진 종이쪼가리를 두 손으로 쓸어모았다. 그러고 나를 무섭게 노려봤다. 눈빛이 반 미친 사람 같았다."이게 무슨 짓이야! 이 정신 나간 년!"엄마의 주먹이 내 머리통을 쥐어박아댔다. 나는 날아오는 엄마의 팔을 턱 잡았다."이거 못 놔! 이 기집애야!"엄마가 악다구니를 쓰며 몸부림쳤다."정신 나간 건 엄마겠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면서, 나한테 어떻게 이래!""야! 병신 학교 졸업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 그게 자랑거리냐고?"내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엄마가 갑자기 자리에 풀썩 쓰러지듯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따지고 싶었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그래, 병신 학교잖아! 그러니 엄마가 더 왔어야지! 나한텐 첫 졸업식이었어. 가족 아무도 오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고. 오늘 난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럼 기대도 없었을 거 아니야!"엄마를 향해 악을 썼다. 엄마는 컥컥 소리 내어 울었다. 할 말이 없으면 엄마는 더 크게 소리를 내며 울었다."창피했어!"엄마의 고백을 듣고 나는 피가 반쯤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허탈해졌다.‘나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구나!’"내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도, 그곳에 내가 가는 것도 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어!"엄마의 고백이 내 마음을 갈래갈래 찢어놨다.나는 부모에게 부끄러운 자식이 되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그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엄마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엄마를 사랑했고 연민했지만 증오하기도 했다. 엄마의 애정을 갈구했고 그걸 드러내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러면 내 자신만 비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위태롭게 관계가 유지되던 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꽃을 선물했다. 흰 국화가 영정 앞에 가득 쌓였다. 국화는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내 죄책감이었다.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3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온 세계를 잠식한 바이러스는 일주일 간 도시를 멈춰 세웠다. 식료품 판매점을 제외한 모든 다중 이용시설이 문을 닫았다. 외출 자제 명령이 내려졌고,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는 층간소음 주의 방송이 수시로 흘러나왔다. 밖은 고요한데, 실내가 소란스러워졌다.초인종이 울렸다. 수미씨가 방문하는 날이었다. 수미씨와 내가 활동지원사로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4년째 되던 시기였다. 그녀는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다. 그녀와 나의 관계는 빛과 그림자 같다.
나는 정오의 태양이 싫었다. 태양이 가장 높을 때 내 그림자는 가장 초라하게 쪼그라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미씨가 좋다. 그러나 자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녀 옆에 서 있다가는 내 삐뚤어진 마음이 더 도드라지게 튀어나와버리고, 나는 그런 내 자신을 혐오하고 만다.
수미씨를 돌려보내고 샤워를 길게 했다. 에어컨을 켜고 인공지능 스피커로 파도소리를 재생시켰다. 창 앞에 의자를 가져다두고 진한 커피를 마셨다.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본다. 내게는 밤과 낮의 경계가 없다. 단지 시간으로 밤과 낮을 구분할 뿐이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 했던 어떤 선배는 밤에는 밤의 냄새, 낮에는 낮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는 비웃었다. 냄새는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라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동글게 말았다.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나는 마모된 몽돌이다. 까맣고 동그란 몽돌. 바다는 나를 끌어당겼다가 멀찍이 밀어놓기를 반복한다. 누구에게나 불행을 견디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불행을 참아내고 있다.
어느 날 수미씨가 내게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불행을 잊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수미씨는 장애가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눈이 먼 게 불행한 게 아니라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말했다.곧 바이러스는 진정될 것이다. 세상은 예전의 일상으로 차츰 복귀해나갈 거다. 내 기준으로 팬데믹은 진짜 불행이 아니다. 그것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앞뒤로 흔들던 몸을 좌우로 흔든다. 몽돌은 수심 깊이 가라앉는다.나는 갑자기 행복해졌다. 정지된 도시 속 건물의 소음이 내 불행을 달래주는 밤이었다.
슬픔이 차오르기도 전에 누군가 내게 말했다. 원무과로 가서 병원비를 수납하라고, 그래야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돈이 없다면 부모 송장조차 찾지 못한다는 현실에 온몸이 싸늘히 굳어졌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숱한 선택이 기다렸다. 화장장에 예약을 잡아야 하고, 친척들에게 연락해야 하고, 수의며 관을 정하고, 꽃을 주문하고, 음식을 맞춰야 했다. 슬퍼해야 할 사흘이 정신없이 지나갔다.장지에서 돌아와보니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본향 집을 정리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사이 잔존 시력이 모두 사라졌다. 익숙한 길도 지팡이 없이는 혼자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신없이 일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죽은 엄마 앞에서 나는 결심했다. 나와 내 가족이 더이상 돈 때문에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고.
지독하다는 소리가 내 등뒤에 이름표처럼 붙었다. 성실한 노동과 절제는 늘어나는 숫자로 정직히 보답해주었다. 1년짜리 적금을 타는 날에도, 3년을 부은 적금 만기 날에도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은 붕어빵 천 원어치였다.힘에 부쳐 쓰러진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왼쪽 얼굴의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던 통증은 점차 마비 증상처럼 나타났다. 동네 병원에 들러 검사를 했는데 이상을 찾지 못했다. 증상이 있는데 원인이 없을 리 없었다. 대형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한의원에 들렀다. 할아버지 한의사는 뇌졸중 초기 증상일 수 있으니 요양하며 약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일을 쉬자 금세 증상이 없어졌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자 별별 생각이 다 났다.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처지가 비관스러워지자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엄마도 그중 하나였다.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후에도 나는 한동안 꺽꺽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그렇게 원 없이 울고 난 뒤 나는 가슴에 늘 묵직하게 얹혀 있던 무언가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나는 그렇게 엄마와 완벽하게 이별했다.아마 그 꿈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벼워졌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가을밤이면 나는 그날 밤을 떠올린다. 창으로 쏟아져드는 가을바람의 냄새를, 엄마와의 늦은 밤 드라이브를. 그것은 오래된 영화처럼 멈춰선 시간의 그리움이다.
품에 안고 있던 작고 보드라운 기억은 며칠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처음으로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또다시 10년 전 경로당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애타게 자식의 이름을 부르던 어미의 울부짖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세월이 이토록 흘렀는데도 자식 잃은 부모의 절규는 고통스러울 만큼 절절했다.비로소 나는 인정했다. 내가 부모가 되기를 거부했던 것은 내 장애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아마 부모의 자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리라.
동네를 벗어나자 들은 온통 초록빛이다. 머리 위 태양이 빛의 채찍으로 세상을 때려눕힌다. 잠깐 사이 등으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눈앞의 세상이 별스럽지 않지만 아름답다. 멀리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비닐하우스가 망막에 자극을 주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곧 잃어버릴 세상이어서 모든 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다.자전거를 멈추고 길가에 핀 망촛대와 달맞이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시력이 매일 조금씩 사라져간다. 당장은 느껴지지 않지만 1년 전에 비해 시야가 좁아들었다는 것은 느껴진다. 슬픈 생각을 그만 털어버리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힘껏 페달을 밟았다.
마음이 괴로웠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나는 늙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까?부모가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나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평생을 자식에게 저당 잡혀 살다가 이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건만, 자녀들은 효도라는 명목으로 겨우 찾은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 그녀는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향해 환히 웃던 노인의 얼굴이 또렷이 생각났다.
사나흘 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목적이 있는 방문은 아니었다. 그냥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할머니의 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공터가 돼버린 황량한 공간 앞에서 나는 노인이 정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기분이 이상했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한참을 공터 앞에 서 있다 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그때의 감정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정체를 깨달았다. 시력을 잃고, 엄마를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고향을 잃고서야 알았다.그건 죽은 자를 위한 연민이었고, 산 자가 짊어지고 갈 공허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