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차오르기도 전에 누군가 내게 말했다. 원무과로 가서 병원비를 수납하라고, 그래야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돈이 없다면 부모 송장조차 찾지 못한다는 현실에 온몸이 싸늘히 굳어졌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숱한 선택이 기다렸다. 화장장에 예약을 잡아야 하고, 친척들에게 연락해야 하고, 수의며 관을 정하고, 꽃을 주문하고, 음식을 맞춰야 했다. 슬퍼해야 할 사흘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장지에서 돌아와보니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본향 집을 정리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사이 잔존 시력이 모두 사라졌다. 익숙한 길도 지팡이 없이는 혼자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신없이 일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죽은 엄마 앞에서 나는 결심했다. 나와 내 가족이 더이상 돈 때문에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고.

지독하다는 소리가 내 등뒤에 이름표처럼 붙었다. 성실한 노동과 절제는 늘어나는 숫자로 정직히 보답해주었다. 1년짜리 적금을 타는 날에도, 3년을 부은 적금 만기 날에도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은 붕어빵 천 원어치였다.
힘에 부쳐 쓰러진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왼쪽 얼굴의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던 통증은 점차 마비 증상처럼 나타났다. 동네 병원에 들러 검사를 했는데 이상을 찾지 못했다. 증상이 있는데 원인이 없을 리 없었다. 대형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한의원에 들렀다. 할아버지 한의사는 뇌졸중 초기 증상일 수 있으니 요양하며 약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일을 쉬자 금세 증상이 없어졌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자 별별 생각이 다 났다.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처지가 비관스러워지자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엄마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후에도 나는 한동안 꺽꺽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그렇게 원 없이 울고 난 뒤 나는 가슴에 늘 묵직하게 얹혀 있던 무언가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완벽하게 이별했다.
아마 그 꿈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벼워졌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가을밤이면 나는 그날 밤을 떠올린다. 창으로 쏟아져드는 가을바람의 냄새를, 엄마와의 늦은 밤 드라이브를. 그것은 오래된 영화처럼 멈춰선 시간의 그리움이다.

품에 안고 있던 작고 보드라운 기억은 며칠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처음으로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또다시 10년 전 경로당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애타게 자식의 이름을 부르던 어미의 울부짖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세월이 이토록 흘렀는데도 자식 잃은 부모의 절규는 고통스러울 만큼 절절했다.
비로소 나는 인정했다. 내가 부모가 되기를 거부했던 것은 내 장애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아마 부모의 자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리라.

동네를 벗어나자 들은 온통 초록빛이다. 머리 위 태양이 빛의 채찍으로 세상을 때려눕힌다. 잠깐 사이 등으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눈앞의 세상이 별스럽지 않지만 아름답다. 멀리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비닐하우스가 망막에 자극을 주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곧 잃어버릴 세상이어서 모든 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자전거를 멈추고 길가에 핀 망촛대와 달맞이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시력이 매일 조금씩 사라져간다. 당장은 느껴지지 않지만 1년 전에 비해 시야가 좁아들었다는 것은 느껴진다. 슬픈 생각을 그만 털어버리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힘껏 페달을 밟았다.

마음이 괴로웠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늙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까?
부모가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나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평생을 자식에게 저당 잡혀 살다가 이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건만, 자녀들은 효도라는 명목으로 겨우 찾은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 그녀는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향해 환히 웃던 노인의 얼굴이 또렷이 생각났다.

사나흘 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목적이 있는 방문은 아니었다. 그냥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할머니의 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공터가 돼버린 황량한 공간 앞에서 나는 노인이 정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한참을 공터 앞에 서 있다 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그때의 감정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정체를 깨달았다. 시력을 잃고, 엄마를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고향을 잃고서야 알았다.
그건 죽은 자를 위한 연민이었고, 산 자가 짊어지고 갈 공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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