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유동성 지능을 넘어서 실행 제어 능력까지 위축시킨다고 볼 수 있다.

실험 진행자가 굳이 결핍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빈곤은 유동성 지능과 실행 제어 능력을 위축시킨다.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가면, 이런 사실은 가난한 사람의 인지 능력에 대한 논의에 상당한 왜곡이 개입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결핍은 기본적인 속성상 여러 중요한 근심거리가 다발로 한데 뭉친 것이다.

결핍은 다른 근심거리들보다 우선되는 부담을 추가로 만든다. 그리고 지속적으로(당연하게!) 대역폭에 세금을 부과한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부자든 빈자든 자기 배우자와 싸울 수 있고 또 자기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풍족함을 경험하는 사람들 중 일부만 이런 문제에 사로잡히는 반면에 결핍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이런 문제에 사로잡힌다.

이 모든 것들을 단지 스트레스나 근심으로만 생각한다면 보다 깊은 핵심을 놓친다. 대역폭 세금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독립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집중배당금이나, 터널링이 우리가 하는 선택들을 형성하는 방식과 동일한 바로 그 핵심적인 기제에서 비롯된다. 스트레스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와 같은 더 깊은 연관성을 놓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결핍이라는 정신 상태를 온전하게 파악하는 데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계획 오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결과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실수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실수들 가운데 대부분은 부주의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 깊은 곳에서 진행되는 사고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력이나 신중함만으로는 계획 오류를 막을 수 없다. 노력이나 신중함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진행되는 일을 일러 주지 못하며, 모든 유혹에 저항하는 강철의 의지력을 우리에게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뇌 활동의 직접적인 결과물인 여러 편향들은 그 결과에 언제나 반응하지는 않는다.

결핍은 실수에 따른 비용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실수할 가능성,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을 더 많이 제공한다. 일을 정확하게 하는 게 한층 어려워진다.

느슨함이라는 개념은 결핍의 심리의 핵심을 찌른다. 느슨함은 우리에게 풍족함을 느끼게 한다. 느슨함은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인 사치이다. 풍족함이라는 조건은 보다 많은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짐을 대충 싸도 되는 사치, 굳이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치, 그리고 실수를 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치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말했듯이, "없어도 될 것이 많을수록 부유한 사람이다".

넉넉한 풍족함은 트레이드오프에서 해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넉넉한 상태에서 어떤 물건을 살 때 우리는 그 물건 대신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자기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떤 것을 획득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 얼마인지 혹은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느슨함, 즉 트레이드오프의 부재는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직관적이고 손쉬운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검소함은 결핍과 다르다. 검소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원칙에 입각해 돈을 생각한다.

시각 기관은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배경 단서들을 활용한다. 배경背景이 되는 단서들은 사람의 눈이 전경前景에 놓인 사물들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맥락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적인 측정 규준에만 의존해서 1달러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한다.

인식에 관한 연구는 사람들이 불확실한 가치를 파악하는 방식

이 모든 측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실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느슨함 속에서 트레이드오프를 생각하는 것은 케이크를 그대로 보유하는 동시에 그 케이크를 먹어 치우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실제로 트레이드오프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대부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런 트레이드오프가 없는 상태에서 아주 작은 수준의 가치는 당신이 굳이 애를 써 가면서 보유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에게 20달러가 추가로 생긴다면, 당신은 이 돈으로 지금까지 당신이 사지 않았던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사겠는가? 만일 당신이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면, 당신은 굳이 이 질문에 대답할 필요조차 없고, 심지어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당신이 그 사소한 것을 원했다면 아마 당신은 이미 그것을 샀을 것이다.

결핍은 단지 실패를 해도 괜찮은 여유가 적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수를 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모든 내용은 결핍이라는 발상에 하나의 층이 더 존재함을 암시한다. 우리가 결핍에서 비롯되는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 결핍 효과는 심리적인 차원을 넘어 수학적인 사실이 될 수도 있다. 결핍은 공간의 배열과 활용 면에서 보다 더 어려운 짐 싸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결핍에서 비롯된 심리로 시험을 받는 정신은 계산하기 더욱 복잡한 세상을 헤매고 더듬어서 자기 갈 길을 찾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대개 시간 관리와 돈 관리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실패의 결과가 다르다. 시간을 잘못 관리하면 당혹스러운 일을 마주하거나 목표한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다. 반면 돈을 잘못 관리하면 연체료를 물거나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모든 결핍에서 공통적인 논리를 찾아내는 데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핍은 이런 개인적인 일화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결핍scarcity을 무언가를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게 가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결핍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의 어떤 공통적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들은 제각기 다른 문화, 경제 조건 그리고 정치 제도에서 일어나지만, 모두 결핍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결핍은 정신을 사로잡는다. 배고픈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만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핍을 경험할 때마다 그 결핍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때 정신은 충족되지 않은 그 필요를 자동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추구한다.

결핍은 어떤 것을 매우 적게 가질 때의 불쾌함 그 이상이다. 결핍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결핍은 사람의 정신을 그 자신의 무게로 무겁게 짓누른다.

부족하게 가진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또 이는 가령 건강이나 안전 혹은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결핍은 불만과 투쟁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이론들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집단의 문화나 개인의 개성, 취향, 선호 그리고 사회 제도 등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결핍의 덫들을 하나로 묶어 분석한다고 해서, 모든 형태의 결핍이 같은 크기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은 아니다. 결핍의 사고방식은 결핍의 내용에 따라 더욱 중요하게 작동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은 해묵은 문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할 뿐이다.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될 때마다 추론해야 할 새로운 함의, 해석해야 할 새로운 의의 그리고 이해해야 할 새로운 결과는 늘 있게 마련이다.

결핍이 정신을 사로잡으면 사람은 보다 더 엄격해지고 능률적이 된다. 집중을 유지하는 일이 힘들어 보이는 상황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지고 싶은 욕망에 걸맞은 논리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부스러진 논리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씩씩대고만 있을 때, ‘어이없다’는 쪼그라든 나를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누군가에게 내 억울함을 털어놓을 때도 그렇다. "어이없었겠다"라는 상대의 짤막한 맞장구가 들려오면 나는 묘한 승리감과 더불어 위안을 얻는다.

‘애쓰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무엇엔가 애쓰기 시작하는 순간, 기대와 불안은 옥신각신 요란하게 소란을 피운다. 바지런히 노력하면 뭐든 잘 되겠지, 싶다가도 어느새 애쓴 만큼 커져 버린 두려움과 맞닥뜨리면 쿨렁, 마음이 떨어진다. 순수하게 공만 들이기엔 잡념은 쉼 없이 나를 휘젓고 다니고, 잡념들 앞에 선 나의 노력은 한없이 무력하다.

우리는 종일 힘들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지낼까. ‘힘들다’는 내 무의식의 저변 가장 앞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는 통로가 이보다 더 짧은 단어가 있을까.

조용함은 소외되었던 소리의 조연들이 반짝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들이 주연이 되는 순간, 그제야 우리는 눈으로 다 담을 수 없었던 순간을 오롯하게 완성할 수 있다.

내 감정의 낙차는 ‘초췌하다’라는 단어가 불러들인 결과였다. 고생하거나 병에 걸려서 살이 빠지고 얼굴에 핏기가 없다는 뜻의 ‘초췌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기운을 쏙 빼놓는, 달갑지 않은 단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루하고도 별것 없었던 그 시절이 찬란하다 기억되는 것은 햇빛이 전해 준 따뜻한 생명력 덕분이다.

사사건건 따지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묘한 양가감정이 인다. 이악스럽게 발산하는 에너지에 피로감을 느꼈다가도, 옳고 그름을 한 올 한 올 가려내며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모양새에 나도 모르게 탄복하게 된다.

대부분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신들도 그렇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소속감이랄까. 나만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다가도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 본 덕에 안전장치가 깔려 있을 것만 같은 길로 돌아가게 된다. ‘대부분’이라는 말에서 얻는 동질감이 나에게 안락함을 주는 것이다.

어디선가 옅은 신문지 냄새가 나면 그날의 아버지와 나는 조각난 곳 하나 없이 옹글게 되살아나 덮어 두었던 기억을 들썩인다. 살아남는 기억은 많고 많은 날의 어느 하루였고, 그 흔하디흔한 하루가 결국 단 하나의 특별한 하루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무슨 일에서건, 나는 나만의 마감 기한을 세우는 버릇이 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기한에서 대체로 한두 주쯤 앞선 시기를 자체 마감 기한으로 정하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두 주 앞당겨 일을 모두 다 하려다 보니 촉박해진 시간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종일 나를 다그치게 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버릇인가. 그럼에도 나만의 마감 기한에 맞춰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순간의 쾌감을 느낄 때면 이 몹쓸 버릇의 재등장도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영화를 좋아한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면 좋겠고, 상처받은 연인들의 사랑이 종국에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처절하게 실패한 주인공이 당당히 일어서는 모습도 보고 싶다. 현실을 복사해서 붙여 놓은 듯한 매정한 결말 속에 주인공을 홀로 남겨 두고 나와야 하는 서느런 마무리는 영 마뜩잖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월이 갈수록 특정 인물이나 직업을 지칭할 때 점점 더 격조 높아 보이게 호칭이 달라지는 것 같다.

결국 호칭이란 가까운 가족이나 친인척 간의 호칭은 별 문제가 아니고,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불릴 때는 그 사람의 외형과 풍기는 인상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이게 맞나?’ 자신의 상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늙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점점 약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불편함은 제때 해소해야 살 것 같다.

그래, 난 지금 이걸 꼭 해결해야겠어. 불편한 건 못 참아! 나도 젊었을 땐 이런 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며 외국에서 살기도 하고 세계를 내 집처럼 휩쓸고 다니는 사람도 많단 말이지. 그러니 이런 젊은 사람들은 우주적 사고를 하면서, 좁은 나라 안에 갇혀 사는 우리하고는 영 다른 사고를 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젊은이들의 여러 삶의 형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형편이 못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싶다. 그러니 나는 이제 반성하고 다른 세대의 형태나 사고방식 그 외 다른 것들에 대해서 다시는 간섭할 마음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살면서 내가 저질러온 멍청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이불킥을 하게 되지만, 그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아마도 나이가 많아서 잊었거나 어쩌면 죽고 없는지도 모르고, 나 외에는 나에 대해 관심 가지는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요새 사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분부분 신경써서 관리하고, 온몸의 부위별로 근육도 키워야 하고, 어떤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 운동해줘야 한다는 여러 상식에다 간과 콩팥, 장과 심장, 위장, 폐까지 뭘 먹으면 좋고 혈행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 게 좋다는 것까지 다 알고 실천하려고 하니 사실 자기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일만도 하루해가 다 갈 판이니 어찌 바쁘지 않겠는가?

옛날에는 날씨를 좀 예견할 줄만 알아도 도사 대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만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 대단한 사람으로 봐줬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손 안의 폰 하나로 해결된다. 실시간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도 이것이 더 많은 혼란을 일으키는지, 요새 사람들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아는 만큼 더 많은 질병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제 모든 것은 변했고 다음 세대는 어떤 형태로 살아갈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와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여행을 가면 첫째로 집에서도 잘 못 자는 내가 잠자리가 바뀌니 더 못 자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위장이 좋지 않으니 낯선 음식에 소화도 잘 안 된다.

사람이 어쭙잖은 일로 이렇게 크게 영향을 받는구나 싶었다.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제발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세월이 오래 가고 보면 한때 친했던 사람도 이름이나 얼굴조차 가물가물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인간관계가 상당히 허망하다. 그러니 한때의 관계에 목매지 마라.

이젠 거의 다 정리가 되고 다들 모임 자체를 안 한다. 모두 다 챙겨입고 걸치고 어디 장소로 찾아가고 이런 것들이 귀찮단다. 그러니 아직 원기 충천하고 바쁘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친목모임을 하고 그러면서 사는 게 젊은 시절일 게다.

예전에는 밥을 밖에서 먹더라도 가까운 집에 가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아무도 자기 집을 제공하고 싶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러니 친지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극히 줄어들었는데, 집의 인테리어에 들이는 관심은 또 왜 그렇게 요란한지 알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무렵 자신의 주인공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세 가지 요소로 유머, 친절함, 자기 억제를 들었다. 이 세 가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것이라는 거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는 모순, 자아, 공포 따위는 쓰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구태여 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한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부정적인 요소는 잠시 접어두고, 유머와 친절함, 자기 억제라는 덕목으로 가볍게 날아올라보는 건 어떨까? 심각한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 곰곰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들이다.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