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도 별것 없었던 그 시절이 찬란하다 기억되는 것은 햇빛이 전해 준 따뜻한 생명력 덕분이다.
사사건건 따지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묘한 양가감정이 인다. 이악스럽게 발산하는 에너지에 피로감을 느꼈다가도, 옳고 그름을 한 올 한 올 가려내며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모양새에 나도 모르게 탄복하게 된다.
대부분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신들도 그렇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소속감이랄까. 나만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다가도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 본 덕에 안전장치가 깔려 있을 것만 같은 길로 돌아가게 된다. ‘대부분’이라는 말에서 얻는 동질감이 나에게 안락함을 주는 것이다.
어디선가 옅은 신문지 냄새가 나면 그날의 아버지와 나는 조각난 곳 하나 없이 옹글게 되살아나 덮어 두었던 기억을 들썩인다. 살아남는 기억은 많고 많은 날의 어느 하루였고, 그 흔하디흔한 하루가 결국 단 하나의 특별한 하루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무슨 일에서건, 나는 나만의 마감 기한을 세우는 버릇이 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기한에서 대체로 한두 주쯤 앞선 시기를 자체 마감 기한으로 정하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두 주 앞당겨 일을 모두 다 하려다 보니 촉박해진 시간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종일 나를 다그치게 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버릇인가. 그럼에도 나만의 마감 기한에 맞춰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순간의 쾌감을 느낄 때면 이 몹쓸 버릇의 재등장도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영화를 좋아한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면 좋겠고, 상처받은 연인들의 사랑이 종국에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처절하게 실패한 주인공이 당당히 일어서는 모습도 보고 싶다. 현실을 복사해서 붙여 놓은 듯한 매정한 결말 속에 주인공을 홀로 남겨 두고 나와야 하는 서느런 마무리는 영 마뜩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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