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싶은 욕망에 걸맞은 논리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부스러진 논리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씩씩대고만 있을 때, ‘어이없다’는 쪼그라든 나를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누군가에게 내 억울함을 털어놓을 때도 그렇다. "어이없었겠다"라는 상대의 짤막한 맞장구가 들려오면 나는 묘한 승리감과 더불어 위안을 얻는다.
‘애쓰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무엇엔가 애쓰기 시작하는 순간, 기대와 불안은 옥신각신 요란하게 소란을 피운다. 바지런히 노력하면 뭐든 잘 되겠지, 싶다가도 어느새 애쓴 만큼 커져 버린 두려움과 맞닥뜨리면 쿨렁, 마음이 떨어진다. 순수하게 공만 들이기엔 잡념은 쉼 없이 나를 휘젓고 다니고, 잡념들 앞에 선 나의 노력은 한없이 무력하다.
우리는 종일 힘들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지낼까. ‘힘들다’는 내 무의식의 저변 가장 앞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는 통로가 이보다 더 짧은 단어가 있을까.
조용함은 소외되었던 소리의 조연들이 반짝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들이 주연이 되는 순간, 그제야 우리는 눈으로 다 담을 수 없었던 순간을 오롯하게 완성할 수 있다.
내 감정의 낙차는 ‘초췌하다’라는 단어가 불러들인 결과였다. 고생하거나 병에 걸려서 살이 빠지고 얼굴에 핏기가 없다는 뜻의 ‘초췌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기운을 쏙 빼놓는, 달갑지 않은 단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