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럭키박스’를 제안한 쪽은 나였다. 우편으로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보내자고 했다. 독서 안목과 취향을 확인하고 싶었다. 출신 학교, 나이, 사는 곳, 직업 따위는 내게 어떤 사람에 대한 주요 정보가 되지 못했다.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책 선물’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보여 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선물로 보낼 책 목록 안에 일정 부분 담기게 되리라 여겼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청혼은 내 쪽이 먼저였다. 카페에서 레고 블록을 맞추고 있던 그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충동’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는 승낙의 말 대신 "잘 생각해"라고 답했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답이었다. 나는 결혼을 인생의 목적이나 목표로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비혼이야말로 나를 지키며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정 부분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금’ 같이 놀고 싶은 친구를 만났고, 같이 놀면 재밌는 사람을 만났으니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우리는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같을 수 없는 한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치관 우선순위를 체크하는 테스트를 했을 때 우리는 둘 다 최우선 순위로 ‘나’를 꼽았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돌보고 아낀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의 건강함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에 걸쳐 정말 ‘잘’ 생각한 끝에 나는 그에게도 청혼을 요구했다. "《행복한 질문》이라는 그림책을 나에게 선물해. 청혼 대신 받아 줄게."

나는 사랑을 ‘어떤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관계를 지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어떤 맹세보다 중요한 사랑의 태도가 짧은 그림책 안에 깊고 빼곡하다. 책을 펼치면 아무런 글자 없이 개 부부가 길가의 꽃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온라인상에서 주로 쓰는 이름은 ‘둥글게’이다. 많은 사람이 동요 제목으로 착각하지만, 이상은의 노래 제목이다.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던 너와 부딪혔어
함께 웃음이 나왔어
하늘이 투명해서 너도 빛났지
- 이상은 작사·작곡, <둥글게>, 2005

가사를 처음 접했던 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내 그 가사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바로 그 사람이 있었다.

뒤에 숨는 마음

"술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약간의 막막함을 느낀다. 성인이 되어 술을 경험한 이래 나는 술 앞에서 단 한 번도 호오를 따져 보지 않았다. 불성실로 점철된 내 인생에서 평생에 걸쳐 가장 꾸준하게 해 오고 있는 드문 일 중 하나가 음주다.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최선의 이유는 ‘세상 탓’일 테다. "설명하기 어렵군요. 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제가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은, 이 빌어먹을 세계 때문이죠."

일과 세상에 대한 푸념을 안주 삼아 마시는 동안 긴장이 풀리고 안도가 몰려왔다. 물론 더 많은 날을 자괴감과 더불어 폭음을 일삼았다. 어쨌든 무사히 한 주가 지나갔고, 나는 아무튼 마감을 했으며, 그러니까 마실 ‘자격’이 있었다.
사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었다. 취재나 마감이 뜻대로 안 될 때는 그 핑계로 마시는 법이다.

누군가 건강을 이유로 술을 끊겠다고 하면 그렇게 서운했다. 나이 먹을수록 그런 사람은 하나둘 늘어만 갔다. 외로운 나는 캐롤라인 냅처럼 혼잣말을 하곤 했다. "별 웃기는 유행 다 보겠네. 이게 도대체 무슨 재미야?" 그럴 때면 이상한 다짐을 하곤 했다. 어차피 한번은 죽으니까 좋아하는 술 담배라도 마음껏 하자고. 내 인생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공드리의 9년은 내가 지나온 9년이기도 했다. 공드리의 맥주가 모나고 상처 난 마음을 동글동글 뭉툭하게 만들어 줬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술은 제2의 따옴표다. 술로만 열리는 마음과 말들이 따로 있다.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뾰족한 연필심은 뚝 부러져 나가거나 깨어지지만, 뭉툭한 연필심은 끄떡없듯이, 같이 뭉툭해졌을 때에서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이제 그 말들을 나누려면 460km를 날아가야 한다. 오늘은 그 이유로, 술을 마셨다.

그해 여름은 비가 지독했다. 장맛비가 자주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축축한 등이 먼저 알았다. 그럴 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곤 했다. 물이 차오르는 모양을, 빨간 쓰레받기를 들고 물을 걷어 내는 엄마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비가 그치면 물에 불어 망가진 책을 추려 쓸모를 구분했다. 이제는 다시 구할 수 없는 유년의 책들은 그런 식으로 수장되었다.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니다, 가지 못했다. 문에서 세 계단, 다시 두 계단을 딛고 오르면 공기가 달랐다. 햇볕의 틈을 찾아 젖은 책을 널어놓으며 신에게 빌었다. ‘2층으로 이사 가게 해 주세요.’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일찌감치 상업계고 진학을 마음먹었다. 나는 지하에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난이 지겨웠다. 진학 서류를 요청했을 때 담임선생님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엄마에게는 합격하고서야 알렸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선택’이라고 믿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믿으려고 했다. 좀체 나아지지 않는 형편의 이유가 온전히 우리에게만 있는 거라면, 더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이 수렁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믿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시간이었다.
편모 가정인 것, 사글세 지하에 사는 그런 것들. 중학교에서는 매우 소수의 친구에게나 겨우 나눌 수 있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은 감춰지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친구들 사이에서 배제됐다. 고등학교에서는 달랐다. 나는 그곳에서 내 불행과 가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때로는 아버지가 없다는 게 ‘자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도 ‘고3’ 시절이 있었다. 80%에 가까운 또래들이 수능 준비에 열을 올리는 동안, 20% 안에 속한 우리는 반을 합치고 밥을 합쳤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취업으로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반의 취업되지 않은 아이들이 와서 채웠다. 3학년 2학기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나는 교육 이슈 앞에서만큼은 중요성을 가늠하지 못해 허둥댄다. 정확히는 교육이 아닌 ‘대입’이다. 나는 늘 대입을 둘러싼 이 사회의 풍경이 기이하다. 대입개편공론화위원회를 꾸리고, 그 결과를 내가 속한 매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대입만을 관장하는 게 아닌 교육부장관이 이 문제를 이유로 개각 대상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다, 안다. 대입 전형에 사활을 걸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과대 대표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의 부제는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이다. 500쪽 가까운 책을 한 달에 걸쳐 어렵게, 어렵게 읽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 때문이었다. 정임, 소영, 세진, 윤주, 연재‘들’의 얼굴이 행간 위에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16년 차지만 고졸이라 여전히 주임 직급을 달고 있는,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너무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원치 않는 전업주부가 된 나의 그때 그 친구들. 우리에게는 특별히 운이 좋은(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에어백’이 없었다.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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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명문장/한 번 벼슬을 잃으면

사대부의 집에서 한 번 벼슬길을 잃게 되면 집안이 탕진되어 유리걸식하며 천한 무리에 섞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그 이유의 하나는 자포자기하여 경전과 사서를 포기하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놀고 먹으며 습관을 고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음풍영월로 어려운 운자를 넣어 시의 우열을 겨루어서 한때의 헛된 명예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런 것이야 물결에 떠가는 꽃잎과 같아서 곧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근본과 근원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크게 떨칠수 있으랴.
또한 의복과 음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오직 뽕나무와 마를 심고 채소와 과일을 심는 것이며, 부녀자는 길쌈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 공손하고 성실하게 경전을 정밀히 연구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과일나무와 채소를 심어 가꾸는 데에 힘을 다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도를 지키며 일을 줄이고 경비를 절약하면 집안을 보존하는 어진 큰아들이 되리라.

올바름을 추구하고 기회가 오면 의로운 일을 사회 가운데 이루고, 기회를 잃으면 자기 자신만이라도 지키며 훌륭한 인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유학자의 마음이 담뿍 드러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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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품절


다들 미술관이나 박물관 좋아하시나요?
전 외동딸이 성인되면 제가 가고 싶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다녀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제 생일이라고 마음씨 고운 분께 선물로 받은건데
책의 질감과 느낌이 제 마음에 너무 딱 들어요.
무조건 천천히 시작했답니다.

암 투병을 하던 형을 잃고 슬픔에 가득 차 있을텐데 세상은 여전하고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브링리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차마 그럴 수는 없었을 겁니다…
브링리씨는 미술관에 잠시 숨어요,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요.
분명한 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를 맞춰 준비를 할 수는 없지요.
지루해하는 법을 거의 잊어버린,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시간이 한가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는 브링리씨가 초반에는 애처롭기도 했어요.
어느덧 수습이 끝나고 정식 경비원이 된 브링리씨가 거장들의 예술작품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낯선 사람들에게 연대감을 느끼고, 이제는 슬픔의 크기와 모양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줄 준비도 되어 있어 보여요.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10년 동안 위로받고 치유되어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연료를 충전하며 온전해져 다시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에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내 드리고 싶고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마치 도슨트와 잔잔하고 여유로운 미술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네요..

#나는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경비원입니다
#패트릭브링리
#김희경조현주옮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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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큼 간절하게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쓰는 사람은 쓰지 못한 이야기 안을 헤매며 산다. 세상에는 모르고 싶은 일과 모르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덜’ 중요한 것을 쓰고 싶다는 야심은 자주 실패했다. 직업을 잘못 택했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인정받고 싶다’와 ‘도망가고 싶다’ 사이에서 나는 자주 사라졌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작고 사소해서 반짝이는 것으로 가득하길 바랐다. 내 일은 그런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더 자주 써야 했다.

책에서 취한 살과 뼈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읽기’는 자주 ‘일기’가 되었다. 밑줄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결혼을 한 지금도 자정 넘어 귀가 중일 때, 엄마의 전화가 없으면 괜히 서운하다. 기껏해야 20여 초, 짧은 통화마저도 가끔은 귀찮지만 실은 그보다 많이 안심이 된다. 엄마는 늘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다. 엄마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나를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엄마도 모르는 사이 나는 엄마와 싸우고, 화해하고, 또 다른 엄마를 만들어 내기도 했으므로. 내 몸을 만든 엄마의 무수한 칼자국 덕분에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아는 사람이 되었다.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애썼지만 매번 실패하고 타협했다. 쓸 때의 나는 여기 없다. 이 글들은 나였던 것,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지만 나는 내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나는 여기에 두고, 여전히 ‘처음’인 많은 것들에 매번 새롭게 놀라면서 다음으로 가고 싶다. 행간을 서성이며 배운 것들 덕분에 반드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앞으로를 기대한다.

엄마,
다음 생엔 내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해 나는 다섯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엄마는 고작 스물일곱 살이었다. 나중에 내가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엄마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그제야 실감했다. 나의 스물일곱은 뭐든 허물고 새로 시작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가능성의 나이였다. 왜 나를, 동생을 버리지 않았냐고, 따지듯 물었던 날도 있었다. 정말 궁금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희생되어도 좋은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엄마의 스물일곱을 내가 방해하고 어쩌면 훼손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의 삶을 그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으나, 엄마에게는 그저 비난으로 들렸을 말을 참 잘도 지껄였다. 자라는 동안 나는 송곳 같은 자식이었다. 후벼 파기가 전공이었다. "다른 집에는 다 있는 아빠가 우리 집에는 왜 없어"라고 발버둥 치며 울던 여덟 살 때부터 나는 볼썽사나운 자식이었다

김애란이라는 작가를 소개한 어른은 내게 ‘김애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라고 했지만, 나는 ‘김애란을 만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문화팀 발령 이후 첫 인터뷰를 맡게 됐을 때였다. 그는 연재 중이던 장편소설(≪두근두근 내 인생≫)이 출간되고 나면 만나자고 몇 차례 고사했지만, 나는 그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졸랐다. 그의 글을 만난 이후 내 삶이 그에게 빚진 부분이 많았으므로.

엄마가 나를 가여워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늘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자기 처지를 연민했고, 자기 새끼를 연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한 관계가 될 수 없었던 걸까. 나는 많은 시간 엄마에게 ‘물리적으로’ 빚진 기분으로 살았다. 차라리 소설 속 ‘어미’처럼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욕도 잘하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런 엄마는 소설 속에 이미 있었으므로, 나는 그저 나의 ‘두 번째 엄마’로 그를 취하기만 하면 됐다

나는 엄마의 은폐 덕분에 아버지의 죽음을 삼십 년 가까이 교통사고로 알고 살았다. "사실은 자살"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살짝 놀랐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정말 자살이라면, 근사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엄마에게 이름을 찾아 주고 싶었다. 장일호와 장명호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 고3 여름, 취업이 결정되고 폴더형 휴대전화를 처음 가졌을 때 나는 휴대전화에 엄마 번호를 입력하면서 ‘엄마’ 대신 ‘송명희’라고 적어 넣었다.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가만히 발음했을 그 이름을. 나는 많은 시간 송명희 씨가 여자로 살길 바랐지만, 그녀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했다. 엄마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받을 사랑을 아버지와 함께 사는 5년 동안 모두 받았노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은 내 생각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버지가 동네 모르는 다방 아가씨가 없는 남자였다는 흉을 엄마 입으로 종종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되도록 좋은 기억만을 파먹으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자살했다. 당신 나이 스물아홉 살에. 여름이 한창인 1988년 초복이었고, 유서 한 장 없는 죽음이었다. 대체 청산가리는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걸까. 엄마는 아버지가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경찰에게 매달렸다. 경찰은 주검을 발견한 즉시 아내 동의 없는 부검을 마치고 사건을 하루 만에 종결시켰다.

엄마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출근하면서 "간다"라고 말하는 인사다. "갔다 올게, 아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 봐." 시간에 쫓겨 인사 없이 훌렁 나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아침에 이렇게 한마디씩 나눌 여유가 있으면 새삼 깨닫곤 한다. 집 나선 가족이 돌아오지 않는 일이 엄마에게는 평생의 상처라는 걸. 삼십 년 넘는 세월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 흉터가, 엄마에게는 아버지라는 걸. 그래서일까. 엄마는 내가 긴 출장이나 여행을 가기 전에는 밥을 잘 차려 주지 않았다. 엄마가 차렸던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식사가 출장 날 아침이었던 탓이다.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 밥상에 올렸던 고등어자반 역시 졸라야만 해 주는 음식이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 바깥을 상상해 보지 못한 채 좁아진 엄마의 삶은 직접적으로 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남편이 벌어 오는 돈으로 살림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런 엄마를 조롱하며 싸웠지만, 엄마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주부’로 살 때였고, 그래서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 말에 담겼음을 뒤늦게 헤아리고 한참을 후회했다.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더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다만 현실의 엄마와 나는 당장 생활의 구멍을 메우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으므로, 하릴없이 ‘다음 생’을 약속할 뿐이다. 다음 생에선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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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눈부시다는 거짓말

우리는 공부하고, 과제 하고, 시험을 봤다. 운동하고, 시위하고, 파티 하고, 학생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는 너른 잔디밭에 누워 있기도 했다. 항상 바쁘고 할 일이 많았으나, 학교를 잘 다니다가 졸업하겠다는 목표에 집중한 상태였다. 수업마다 정해진 일정이 있고 기말고사가 있었다. 한 학기는 다음 학기로 이어졌고,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됐다. 마지막 기말고사 기간이 지나고 가족과 졸업식에 갈 준비를 마치자마자 모든 게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난데없이 맞이한 우리의 상황은 이랬다. 거의 20년 동안 이어지던 학교생활이 끝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관한 안내는 사실상 없었다.

행복하지는 않았다. 재정적인 생존을 제외하면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도 없었다.

내면과 조응하면서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생을 꾸려가려고 애썼으나 실패하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미래가 아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한 이유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라니, 믿기 힘들었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막다른 길이었다. 마음속의 소음이 잦아들지 않았다. 내 중심을 찾을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지쳐버린 상태였지만, 내 걱정들이 하찮고 지겨워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은 위기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일은 뚜렷한 행복감이나 목적의식을 선사하지 못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그 당시 할 수 있었던 말은 이 책 속의 무언가가, 이 안에 담긴 생각이 내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고 인생을 바꿔놓으리라는 것뿐이었다. 융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내 삶 속의 경험과 깊이 공명했다. 과거에는 그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융이자기만의 삶을 찾아내고 살아내야 할 필요성에 관해서 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내 끝없는 질문과 더 나은 삶을 향한 탐색이 옳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융이 완벽과 성취가 아닌온전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는 그 기분이 더욱 강렬해졌다.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깊고 지속적인 평온을 느꼈다.

쿼터라이프를 지칭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어휘는 성인기나 청소년기에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인 것뿐이다.연장된 청소년기extendedadolescence,어린 성인기youngadulthood,이른 성인기earlyadulthood,성장하는 성인기emergingadulthood 등등. 심리학 문헌을 살펴보면 각각의 용어를 향한 상반되는 관점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모든 용어의 공통점은 이 시기를 일종의 중간다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20년 남짓한 기간이 ‘진정한’ 생애 주기 사이에 낀 전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앉아 기다리는 로비 격이라는 듯한 태도다.

이 시기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원인은 어느 시기든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유행을 타면 다들 그 단어에만 집착하는 풍조다. 이렇게 한 세대에 꼬리표를 붙이는 행위는 그 세대가 쿼터라이프에 진입했을 때 이루어지고는 한다. 과거의 ‘밀레니얼’, 최근 ‘Z세대’를 보면 알 수 있듯, 특정 세대를 일컫는 말은 ‘요즘 애들’(이것도 흔히 쓰는 말이다)에게 주로 사용된다. 세대를 지칭하는 말인데도 그 세대만의 특징보다는 특정 나이대를 묘사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이는 막대한 혼란과 오해를 낳는 심각한 문제다. 현재 많은 밀레니얼이 정확히 쿼터라이프 시기를 지나고 있고 나머지는 중년에 진입했다. 매일 더 많은Z세대가 쿼터라이프에 진입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청소년기와 아동기에 머물러 있다.세대와 생애 주기는 같은 것이 아니다.
같은 나이대에 속한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이 시기의 발달에 관한 이해가 필요했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하고, 삶에 새로운 기술이 침투하며, 새로운 위기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변화는 한 세대의 행동과 경험을 형성하겠지만, 인간의 발달과 건강의 기반을 재정의하지는 못한다. 이제20년마다 새로운 인구 집단과 행동 패턴에 관한 통계를 붙들고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내는 시대 불변의 과제에서, 세상의 변화는 이야기의 배경이지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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