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사건/한국전쟁

한국 전쟁은 ‘톱질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전쟁 발발 이후 6개월 사이에 전선이 낙동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등 변화가 격심했고 그 와중에 인민재판, 좌우익 인사 숙청, 민간인 학살 등 각종 인권 유린이 발생했다.
당시 소련은 물자 지원을 할 뿐 전쟁에는 공식적으로 참전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 공군은 텅 빈 북한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폭격전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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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넘치는 곳에 경쟁과 변화의 열망이 달아오르게 되어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안정적이다’라는 말은 곧 현실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머잖아 우리는 사전(辭典)에서나 그 표현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빙하기 세상은 이긴 사람보다 살아남는 사람을 원한다. 스스로 살아남고 남들까지 구해주면 최고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성적보다 성적을 뒤집어 적성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패러다임으로?자신의 틀을 바꿔야?한다. 적성은 책상에 앉아서 찾아낼 수 없다. 직접 몸을 움직여 도전해보고 시도해봐야 내가 하면 재미있는 재능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전문지식을 무기로 삼아 누군가를 누르고 제쳐서 이기는 것이 전문가 시대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 시대는 다른 소양을 요구한다. 전문지식의 경계가 사라지는 가운데 남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모두와 함께 어울리는 소통형 인재를 원한다.

우리에게도 지도가 있다. 가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러나 눈이 세상을 온통 뒤덮은 지금, 길이란 길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어떻게 안전하게 내려갈 것인가.
나침반을 보면 된다. 그리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단순하게 걸어 내려가면 된다. 굳이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무한에 가까운 단순반복이 우리를 길에 이르도록 인도해줄 것이다.

단순반복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겨운 틀 안에 갇혀 언제 끝날지도 모를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단순반복 와중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반복은 지겨움이다. 그러나 그 지겨움을 넘어서면 또 다른 지평이 열린다.

우리는 언제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무리 해치워도 쌓이기만 하는 일. 복잡하게 얽혀 시간을 재촉하는 약속들. 그래서 피곤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떠나도 소용이 없다. ‘감옥 생활’은 시공을 초월해 계속되니 말이다.

기회란, 단순반복해온 지루함의 마지막 순간을 뜻한다.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단순반복으로 단련해온 사람들이다. 끊임없는 자기단련과 기술연마. 지겨울 정도의 단순함이다. 백련강은 백 번 단련되고서야 세상에 나온다.
단순반복의 단련은 단순한 결과를 낳는다. 고수는 기회가 왔을 때 단칼로 승부를 본다. 오랜 세월 칼을 갈아 순식간에 끝을 보는 것이다. 참고 기다림은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다림은 소리 없는 공격이자 전진이다. 기다림은 폭풍전야의 전초전이다.

새벽은, 긴긴 밤을 온몸으로 뒹굴다가 뒤늦게 온다. 내가 가진 마지막까지 다 내어놓을 때에야 뜻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몸부림치는 밤 없이 새벽이 오기를 기대하지 말자. 새벽은 밤의 끝이자 아침의 시작이다. 시작은 끝에서 출발한다. ‘끄트머리’라는 말도 끝에 머리, 즉 시작이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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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명문장/조선혁명선언

강도 일본을 쫓아내려면 오직 혁명으로만 할 수 있으며,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잡고 끊임없는 폭력 · 암살 · 파괴 ·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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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경쟁상대는 바깥에 있는 다른 회사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어제의 성공체험이다. 어제 했던 과거의 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가 역사적 유물로 전락할 수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고, 도무지 안 되겠다면 빨리 항복을 선언하자. 지금 항복했다고 해서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패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면, 길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위기의 진원지는 우리와 관계없는 먼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면책특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욕심에 현혹되었던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눈앞에 닥친 손실과 후회는 과거 우리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순도?100퍼센트의 피해자는 있을 수 없다. 한없는 ‘xxx?때문에’를 잠시 그만두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딛고 의연하게 일어설 수 있음을 자신에게 약속하는 행위다.

‘버리고 내려가기’는 상황에 밀려서 어쩔 수 없는, 대책 없는 내려가기가 아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품고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일단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바다일 수도 있다. 배는 안락한 항구를 버리고 떠나야 대양을 만나는 법이다. 배의 존재 이유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아니다. 거친 파도와 풍랑을 헤치고 큰 바다로 나아갈 때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는다.

체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라면 말이다. 잘 생각해보면 체면이란 ‘나에 대한 남들의 생각’이 아닌, ‘나에 대한 나의 생각’임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들 삶도 비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의 의지로 내려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고 끝끝내 버티다가는, 비자발적 의지에 의해 내려감을 당할 수 있다. 이른바 추락이다. 지금, 빨리 흔쾌히 내려가자. 내려가서 다시 오를 기회를 찾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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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학문•철학/정경유착

기업이 불법적으로 정치 자금을 대고 정치인이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관행으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국가에서 저리의 융자로 기업 자금을 주면 그에 상응하여 정치 자금을 대는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박정희 때는 10%, 전두환때는 20%까지 올라갔다‘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경유착 사건은 1952년 중석불 사건이다. 정부는 농사철을앞두고 비료와 식량을 도입하기 위해 중석불, 즉 텅스텐 수출로 벌어들인 470만달러를 사용하여 밀가루 9,940톤과 비료 11,368톤을 들여온다. 문제는 이 물품 수입을 주도한 대한중석 ·고려흥업 · 남선무역 등 14개 회사가 밀가루와 비료를 자유롭게 판매하여 200억 원에서 500억 원 정도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다. 뒤늦게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에서 특별조사단이 꾸려지지만 진상 조사는 쉽지 않았다. 달러 남용을 주도한 부서는 재무부였고 대통령 이승만이 이에 대한 처벌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사건은 박정희 정권기에 가속된다. 정부가 주도하여 차관을 들여오고 값싼 이자로 자금을 기업에 빌려주는 관행이 정착됐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앞다투어 정부에 로비했고 정부 역시 기업인들과 유착 관계를 강화하면서 각종 부정부패가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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