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넘치는 곳에 경쟁과 변화의 열망이 달아오르게 되어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안정적이다’라는 말은 곧 현실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머잖아 우리는 사전(辭典)에서나 그 표현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빙하기 세상은 이긴 사람보다 살아남는 사람을 원한다. 스스로 살아남고 남들까지 구해주면 최고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성적보다 성적을 뒤집어 적성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패러다임으로?자신의 틀을 바꿔야?한다. 적성은 책상에 앉아서 찾아낼 수 없다. 직접 몸을 움직여 도전해보고 시도해봐야 내가 하면 재미있는 재능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전문지식을 무기로 삼아 누군가를 누르고 제쳐서 이기는 것이 전문가 시대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 시대는 다른 소양을 요구한다. 전문지식의 경계가 사라지는 가운데 남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모두와 함께 어울리는 소통형 인재를 원한다.
우리에게도 지도가 있다. 가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러나 눈이 세상을 온통 뒤덮은 지금, 길이란 길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어떻게 안전하게 내려갈 것인가. 나침반을 보면 된다. 그리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단순하게 걸어 내려가면 된다. 굳이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무한에 가까운 단순반복이 우리를 길에 이르도록 인도해줄 것이다.
단순반복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겨운 틀 안에 갇혀 언제 끝날지도 모를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단순반복 와중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반복은 지겨움이다. 그러나 그 지겨움을 넘어서면 또 다른 지평이 열린다.
우리는 언제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무리 해치워도 쌓이기만 하는 일. 복잡하게 얽혀 시간을 재촉하는 약속들. 그래서 피곤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떠나도 소용이 없다. ‘감옥 생활’은 시공을 초월해 계속되니 말이다.
기회란, 단순반복해온 지루함의 마지막 순간을 뜻한다.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단순반복으로 단련해온 사람들이다. 끊임없는 자기단련과 기술연마. 지겨울 정도의 단순함이다. 백련강은 백 번 단련되고서야 세상에 나온다. 단순반복의 단련은 단순한 결과를 낳는다. 고수는 기회가 왔을 때 단칼로 승부를 본다. 오랜 세월 칼을 갈아 순식간에 끝을 보는 것이다. 참고 기다림은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다림은 소리 없는 공격이자 전진이다. 기다림은 폭풍전야의 전초전이다.
새벽은, 긴긴 밤을 온몸으로 뒹굴다가 뒤늦게 온다. 내가 가진 마지막까지 다 내어놓을 때에야 뜻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몸부림치는 밤 없이 새벽이 오기를 기대하지 말자. 새벽은 밤의 끝이자 아침의 시작이다. 시작은 끝에서 출발한다. ‘끄트머리’라는 말도 끝에 머리, 즉 시작이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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