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돌고 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좋은 것을 따라가면, 막차를 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좋은 것이지, 앞으로도 좋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이류, 삼류였다고 해서 지금 탄식할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앞서나가기 위해 그토록 치열한 숨고르기를 해온 것이라고 해석해보자.
게다가 지금은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게임이다. 오르는 게임에서는 뒤처졌지만 내려가는 게임에서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도전에 한계를 두느냐 아니면 한계에 도전하느냐로 갈린다. 이류들은 도전하기 전에 한계를 먼저 그어놓는다. 그 한계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심리적 한계다. 도전을 해보기도 전에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부터 내리는 것이다. 심약한 결론 뒤에는 두려움이 놓여 있다. 그보다 깊은 내면에는 아예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조차 없다. ‘어렵다’는 생각 뒤에는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자세를 낮추는 것은 비굴이 아니다. 그것은 내려갈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솟구쳐오를 무한한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도 하다.
바닥은 신념이다. 바닥에 도달하면 신념이 바뀐다. 그리고 사람이 변한다. 겸손한 ‘낮음의 미학’이 거들먹거리는 ‘높음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린다. 바닥을 찍은 사람만이 흐름을 타면서도 자기중심을 잡을 수 있다.

앞문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으면 뒷문이나 옆문으로 탈출하자. 새로운 관문을 만나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으면 삶에는 그런대로 여전히 살 만한 의미와 가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능성을 찾기도 전에 포기하는 순간, 고집스러운 기쁨은 사라진다. 고집스러운 기쁨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라는 태도,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희망의 종류를 바꾸는 용기다. 그럴 때, 삶의 또 다른 기쁨이 열린다.

이류는 일류를 흉내 내려 한다. 일류가 떠나는 것을 보고 따라 내려간다. 하지만 높은 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가끔씩 뒤돌아본다. 그러다가 바람의 흐름을 놓친다. 완급을 조절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맞바람 때문에 고생을 한다.

지금은 내려가는 길이다. 모두가 오르는 연습에만 열중해왔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지금은 우리들을 위한 역전의 찬스다.

내려가는 것, 그것은 패배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속의 심연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출발이자 여행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걸음이 아니다. 욕심과 공포, 질투, 집착 같은 과거를 비우는 걸음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이제는 내려가는 것이 행복하다. 내려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느끼고, 흐름에 맞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오를 것이다.

반문(反問)을 통해 반전(反轉)을 시도하자.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대해 ‘왜’라고 묻자. 대답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왜 안 돼?’ 우리는 역전의 명수들에게 감동한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미 졌다고 생각할 때, 모두가 졌다면서 포기할 때, 그 최후의 순간에 역전 드라마는 시작된다. 짙게 깔렸던 어둠의 절망을, 찬란한 한줄기 희망의 빛이 강렬하게 뚫고 나온다.
‘반전’은 ‘반문’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절호의 찬스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역전’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 눈물겨운 스토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우리가 인생의 반전을 결심할 때, 우리 삶의 역전 드라마도 시작된다. 반전과 역전 드라마는 반문을 통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동안 못 이룬 것에 대해서.
‘왜 안 되는데?’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흐름을 타느냐, 흐름을 놓치느냐로 갈린다. 삼류와 사류는 흐름에 맞선다.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인다. 무능은 겸손이 아니다. 실력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자격을 얻는다. 겸손은 땅에서 멀어질수록 없어진다.

우리는 너무 유행에 민감하다. 역전에 성공하려면 지금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방향으로 부화뇌동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서는 절대 남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들 가는 방향으로 물밀듯이 따라간다. 그래서 똑같은 결과를 얻는다. 현명한 어머니들은 자식을 남들처럼 만들지 않으려고 각별한 신경을 쓴다.

빨리 가는 ‘도로(road)’보다 굽이 돌아가는 ‘길(way)’이 아름답다. 틀린 길은 없다. 다만 풍경이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모든 길은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주 뒤집힌다. 어제는 최고였던 것이 오늘은 최악이 된다. 어제는 별 볼일 없던 것이 오늘은 최고가 된다. 대한민국처럼 냄비 끓듯 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상을 앞두고 포기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도전하기 위해 내려가는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냉소주의다. 분노에 투항하지 말자.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돌은, 우리가 딛기 나름이다. 잘 딛고 뛰면 디딤돌이다. 디딤돌로 이용해 몇 걸음을 아낄 수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걸려 넘어진다면 그것은 걸림돌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걸림돌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짙은 어둠의 터널 끝에는 천지가 ‘개벽’하는 ‘새벽’이 있는 법, 깊은 절망의 밑바닥에 숨 막히는 희망의 텃밭이 있는 법이다

삼류와 사류는 마지막까지 높은 곳을 포기하지 못한다. 본전이 아까워서 고집을 부린다. 그러다가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손해가 너무 막심해서 손절매를 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린다. 결국에는 끝까지 버티기로 한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내려가는 길이 사라지고 추락의 위험이 높아진다. 쩔쩔매면서 내려간다. 사류는 세상을 원망하며 구시렁거린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걸음씩 차분하게 내려간다.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미를 만드는 사람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면 의연해져야 한다. 의지의 칼날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내려가다가 설혹 넘어져도 걸림돌을 탓하지 않는다. 그것을 디딤돌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할 뿐이다.

굽은 길은 ‘방황’이다. 곡선은 아름답다. 곡선에는 방황의 여정이 담겨 있다. 그 길을 가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가 추억의 흉터로 남는다. 모든 길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천천히 걸으며 그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누구든 예외일 수 없다.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오랜 방황과 고뇌의 여정을 거쳐야만 한다. 성취는 오랜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성숙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자랄 수 있다.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풀은 부드럽기 때문에 모진 비바람에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카리스마 중의 최고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부드러운 모성이 잔혹한 세월을 이겨낸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말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말한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계는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디딤돌이다.

멈추지 말고 내려가자. 이 추위가 언제 끝날지,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숲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내리막을 만나면 거기에서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긍정과 낙관을 연습하자.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려가자.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자. 그리고 희망을 나누자. 우리는 사랑해야 버텨낼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기회는 위기 ‘덕분’이고, 일류는 이류 ‘덕분’이고, 고귀함은 고생함 ‘덕분’이다. ‘덕분’에 운명도 바뀐다! 곤경 덕분에 풍경도 생기고 비극 덕분에 희극을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다. 좌절과 절망 덕분에 절치부심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하다 희망의 싹을 틔우면서 판단착오를 줄일 수 있는 비결을 알게 된다.

심호흡은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쉬는 게 아니다. 기를 끌어모으기 위한 치열한 숨고르기인 것이다.
멀리 가기 위해서 때로는 뒤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장벽에 가로막혔다면 뒤로 돌아가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뛰어넘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는 ‘다 알았다’고 생각한다. 높은 곳에서 보면 세상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자기가 본 것 이외에는 무시하는 속성을 보인다.
하지만 내려가다 보면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일류는 흐름을 파악하고, 내려가야 할 때임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감히 맞설 수 없을 때는 가장 먼저 포기한다. 먼저 내려가면서 바람의 흐름을 탄다. 골짜기를 휘몰아치는 칼바람에 몸을 맡긴다. 바람이 밀어줄 때는 힘을 빼고, 맞바람이 달려들 때는 자세를 낮추거나 옆으로 걸어 압력을 해소한다. 완급을 조절하면서 흐름을 타는 셈이다.

가장 절망적인 때가 가장 희망적인 때이고, 어두움에 질식할 것 같은 때가 샛별이 나타날 때다. 별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 아름다운 것처럼, 축복도 조금 멀리 있어 보일 때 오히려 인생의 보약이 된다. 사투 끝에 맞이하는 ‘전화위복’이 가장 멋지고 풍성한 축복이다.

내려가보지도 않은 채, 왜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했을까. 그런 거드름 때문에 위기를 자초했던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내려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연스런 들숨과 날숨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런 신음이라고.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도 기적이고,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자 행복이라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삶의 기적이라고. 이런 기적의 선물을 받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이 가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서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40. 명문장/나라를 살리는 길

강항(1567년~1618년)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에서 군량 보급과 의병 모집을 위해 노력을 하다 포로가 된다. 일본으로 끌려가 약 3년간 고생하다 1600 년에 간신히 귀환에 성공한다. 강항은 이때의 경험을《간양록>에 자세히 적어놓았다. 왜 조선은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지, 일본은 어떤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하는지 그리고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백성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다.
그는 일본에 있을 때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성리학을 전했고 이것이 일본 성리학의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경이는 한계를 기회로 바꾸어 삶을 이어가는 지혜의 풀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고, 밟히는 순간조차 번식의 기회로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회는 자세를 낮추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기회가 높은 곳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대개의 경우 땅바닥에 깔려 있다고, 앞서 경험했던 사람들이 말한다.

다른 담당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추리자면, 거의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정답’을 맞히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접에서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담당자들의 견해였다.

얼마나 똑똑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인터넷에 나와 있는 수많은 모범답안은 ‘정답’이 아니다.
면접관들이 보고 싶은 것은 상대방의 ‘토대’다. 실력뿐 아니라 성격, 품위, 발전 가능성 등을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유추해낸다. 면접관들은 정직한 사람에게 끌리는 성향이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터지는 문제에 얼마나 임기응변을 발휘해 유연하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나 오만함보다 나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겸손함으로 뭐든지 새롭게 배워보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장하는 인간은 여섯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가 ‘안다’이다. 인식하는 것이다. 알기 위해서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본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직장에 취업하기 전까지 ‘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음은 ‘분석한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사실을 분석하고 이면을 발견한다. 분석을 통해 ‘아는 것’이 ‘아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게?하는 힘이다.
그리고 ‘해본다.’ 알고 분석한 것을 토대로 실천한다. 실천을 통해 아는 것을 검증해보는 것이다. 실천은 도전이며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행위다.
마침내 ‘성공한다.’ 해봐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의 희열을 맛보고서야 해보기를 잘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성과가 생긴다.’ 성과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다. 우리는 그 보답을 만끽하며, 보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은 ‘습관이 된다.’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분석하고 해보고, 성공하고 성과를 얻는 생활이 반복되어 마침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여섯 단계를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반복해온 사람이다. 단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면서 깨닫는 과정이 몸에 밴 사람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아는 것을 실천에 옮겨보고 성공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대부분은 ‘나도 알아’로 끝을 맺지 않았는지.
자세를 낮춰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보자. 분석하고 시도해보자.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IDEO(아이디오)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지.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이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P&G같은 거대 기업들에게 디자인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 회사의 고객이다.

아이디오 회의의 특징은 ‘작은 것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열정적인 회의를 통해 사소한 부분까지 파고든다. 회의에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구분이 없다. 누구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몰린다.

아이디오의 ‘작은 것에 대한 집중’에는 이유가 있다. 더 이상 ‘원래 그런 것’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란 판단에서다.

소비자들은 ‘작은 차이’에 민감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차이만 눈에 들어와도 어제의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아주 작은 차이’까지 감지하고 혁신을 이루어내는 ‘아주 섬세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이디오의 철학이다.

아이디오는 회의에 대한 충고로 ‘회의를 망치는 여섯 가지 방법’을 들었다.
1. 언제나 보스가 먼저 말한다.?2. 모두가 말해야 한다.?3. 전문가가 혼자 말한다.?4. 장소는 언제나 회의실이어야 한다.?5. 모두가 열심히 적어야 한다.?6. 농담금지. 진지한 말만 해야 한다.
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관심 있게 봐두어야 할 대목이다.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 없이 열매만 열린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꽃이 피기는 하지만 꽃받침과 꽃자루가 주머니 모양처럼 부풀어오르면서 꽃들을 안으로 감추는 것이다. 무화과 열매를 잘라보면 그 안에서 ‘작은 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꽃을 감추니까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고, 꽃은 보지도 못했는데 열매가 열렸으니, 어쩔 수 없이 ‘꽃 없는 과일 무화과’로 이름 붙여졌다.

지금껏 우리는 ‘크고 높은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이론과 계획을 세웠다. 확립된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것은 ‘비이성’, ‘비과학’으로 낙인찍었다. 이론과 과학을 맹신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과학적 이론들이 눈과 얼음을 불러와 세상을 꽁꽁 얼려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과학과 이론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헤맨다.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이론이나 완벽한 계획과 분석에서 나오지 않고, 실제로 행동하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가운데 나온다.

다른 눈으로 보자. 지금은 ‘감’을 발동할 때다. 무화과의 꽃들처럼 숨어 있던 다른 눈, 감은 유연성의 시작이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상에 대한 가장 빠른 직관적 대응책이다. 계획과 설계의 맹신에서 벗어나 직관적 능력을 발휘해보자.
모든 것은 감에서 시작된다. 이론 역시 처음에는 감에서 출발한다.

꿈의 사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는, 상징적 가치다. 상품의 경제적 가치 이외의 정신적이고도 심미적인 의미에서의 가치를 뜻한다. 그것은 감의 영역이다. ‘아는 것’으로 풀이되는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정답을 찾아내는 모범생보다 전대미문의 질문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모험생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는 시대다. 지금까지의 성공신화는 앞으로의 성공신화를 가로막는 장본인이 될 수 있다. 경험이 소중한 스승이기도 하지만, 경험이 또 다른 상상력과 지혜를 창조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경제 빙하기 시대는 훈풍이 세상을 따듯하게 녹이던 시대의 이론적 틀만으로는 전혀 해석되지 않는 특별함을 갖는, 전무후무한 시기다.

성공은 세상과의 연애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연애의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그 진리란 ‘주고받기’다.

기업들이 ‘열려 있는 인재’를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울림을 통해 자신과 회사, 세상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조직력이나 자금력, 기술력, 마케팅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기업정신과 기업문화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다.
최고의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배려를 고객에게 전한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말한다. 아이를 인재로 키우려면 감성을 계발하는 데 집중하라고. 위대한 어머니의 표본 장병혜 박사는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큰 인물이 된다’면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일깨워줄 것을 항상 강조한다.
그러나 대다수 어머니들은 ‘그런 건 시간이 남아돌아서 한가할 때 생각해볼 문제’로 여기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우겨넣으면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가르친다. 인생에는 오르는 길밖에 없다면서 몰아붙인다. 아이들은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헛딛고 넘어지면서도 하염없이 오르기만 한다. 어머니도 불행하고, 아이도 불행하다.

자기 수준을 깨닫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발전의 기초다. 우리는 자기 수준도 모른 채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탈진하고 마침내 실패한다. 그러고는 가슴속 깊이 분노의 씨앗을 심어놓는다. 사실은 자기 수준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지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하니까.

왜 그렇게 분노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흐르는 대로 흐르면 되는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28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밑줄쳐주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이 짧은 문장이면서도 뭔가 깨달음이 느껴지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이야 2024-01-29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다 제게 하는 말 같아 의식적으로 힘을 빼고 천천히 읽었어요…고급스러운 문장들이거나 기교있지는 않지만 제 마음에도 충분한 울림이 있었는데 공감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도 건강하고 안전하시길 바래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1-29 08:25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홍합님이 밑줄쳐주신 것만 읽어봤는데도 굉장히 좋은 얘기들이 많아서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홍합님도 좋은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39.학문•철학/신화

한때는 신뢰를 역사와 대조되는 허무맹랑한 전설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신화는완벽한 사실은 아닐지언정 여러 역사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고대 폴리스 귀족들의 삶을 반영하듯 단군 신화를 비롯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여러 신화 역시 당시의 역사상을 반영한다.

20세기 들어 신화학이 발전하면서 신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창세 신화, 영웅 신화 등 신화의 성격을 분류하고 인도, 중국 유럽 등 지역에 따라 신화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신화‘ 같은 개념도 등장했다. 영응이 알에서 태어나거나 활을 잘 쏘는 등 전 세계 신화에는 반복되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인류 문화의 공통점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패는 모든 게 끝난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조개는 살아남기 위해 진주를 만들어낸다. 진주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로 생성된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활동할 때 왕모래 같은 이물질이 들어온다. 조개는 분비물을 내뿜어 이물질을 감싸기 시작한다. 이물질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자꾸 감싸는 것이다. 이것이 진주가 된다. 진주는 살아남기 위한 조개의 몸부림인 셈이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난데없는 침입자를 맞이한 것은 분명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개는 그런 순간을 받아들이고 품어내어, 마침내 자신보다 더욱 아름다운 진주를 창조해낸다. 자신의 고통을 ‘~때문’이라면서 탓하지 않고, 오히려 ‘~덕분’이라며 진주를 키워내는 셈이다.
고통을 ‘~덕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된 자세다.

성장은 완성된 목표를 향한 일사불란한 행진곡을 지향한다. 성장은 양적 발전을 추구한다. 당연히 속도를 중시한다. 반면 성숙은 미완성 교향곡이나 변주곡을 지향한다. 성숙은 질적 반전을 추구한다. 당연히 모든 순간의 밀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성장이 효율을 추구하면서 빠른 길을 찾는 데 반해 성숙은 우회축적을 통해 이른 길을 찾는다. 성장은 계획 대비 목표 달성과 실적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비해 성숙은 실적보다는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는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숙한 사람은 예기치 않은 변화에 휘둘리지 않으며 이익의 탈을 쓴 위험을 분간해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무한 성장을 잠시 멈추고 내면적 성숙을 기할 때다. 성숙을 통해 성장도 의미변화를 겪는다. 무엇이 성장이고 왜 성장하려고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물어보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들은 어떤 사태든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최악, 그 이상의 상황도 닥칠 수 있다고 마음에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가능성을 열어두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처하고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잡초는 어떤 상황에도 버티면서 자란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든, 거기서 희망의 싹을 틔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그다음 자신의 생존을 모색한다.
잡초는 위로 자란 줄기와 가지보다 아래로 자란 뿌리가 훨씬 깊다. 잡초들의 질긴 생명력, 그 원천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땅속 뿌리에 있다. 2할이 겉모습이라면 8할이 뿌리다. 식물들은 고산지역으로 올라갈수록 덜 자라면서 뿌리를 깊게 내린다.

닌텐도는 히트작을 개발한 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주는 일이 없다. 스타 직원을 키워 대외적으로 홍보하지도 않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임기업의 태생적 한계와 위험성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뼛속 깊이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오르막길을 신나게 오르고 있다고 해서 남들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 오를 때부터 최악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붙박이 의자에 앉은 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거품이 부풀든 터지든 그들 자리는 항상 일정하다. 그들은 언제나 꿋꿋하다.
이런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최악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기 때문이다. 최악, 그 이상을 염두에 놓고 리스크를 관리해온 결과가 오늘의 생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 웬만한 위험이 다가와도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여유는 위험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까지 챙길 수 있게 해준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해 위험을 돌파할 지혜를 모아낸다.

만족으로 뾰족한 것을 감싸지 않으면, 내면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공포에 질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결국에는 밧줄을 놓아버리는 비이성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염없이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시기, 자책은 스스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행위나 다름없다. 우리는 내려가면서 마음 연습을 해야 한다. 만족하자고 말이다. 만족으로 아픔을 감싸면 언젠가 진주처럼 영롱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먼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목표에 집착하지 말자. 천천히 한 걸음씩 옮겨도 충분하다.
잡초처럼 질기고 강하게 살아남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하자. 마음속의 마지막 뚜껑을 열자. 최악의 가능성을 열어두자. 우리는 그 속에서 잡초처럼 성숙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난초가 되지 말고, 잡초가 되자.
잡초는 힘겨울수록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먼동이 터오는 것이 보인다. 이제 곧 아침이다. 덩달아 희망도 터온다.

약속을 칼처럼 지키는 정확한 사람은 일을 진행할 때 실수가 드물고 매듭도 잘 짓는다. 그들은 회사의 구조조정 때문에 안절부절 떠는 경우가 없다.

시간관념이 흐린 것은, 위험을 불러들이는 습관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은 공교롭게 돈과도 맞물려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셈에도 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공은 ‘시간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시간을 잘 활용한 것이 성공이고, 성공은 그 대가로 보람찬 시간을 선물해준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시간을 아까워한다. 남의 시간 역시 소중하게 생각한다. 양측의 시간들이 어우러지면서 더욱 성공적인 시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나의 성공에 대한 포기다. 약속시간에 늦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 시간만큼을 어디선가 생산적으로 활용한 다음에 나타나는 법이란 없다.

지각습관은 나의 성공에 대한 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시간을 도둑질함으로써 남의 성공적 시간을 방해하는 행위다. 상대방이 성공한 사람일수록 그 타격을 매우 크게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패는 우리가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쌓였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의 복수극’이다. 나의 시간 외에, 내가 낭비했던 남들 시간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최악의 상황은 최악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매 순간이 기적이고 경이로운 감동의 순간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살면서 타성에 젖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마주침에도 감탄하는 시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습관의 덫에 걸려 살아가는, 의미와 감동을 잃은 사람도 많다.

빙하기는 성공과 위협이 민감하게 교차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성공보다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거의 모든 위협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관계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높았던 내 시간에서 낮았던 남의 시간으로 내려가자. 남의 시간에서 바라본 내 시간이 그동안 얼마나 높았는지 깨닫자. 우리는 시간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
평상시에는 적이 많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빙하기다. 모두가 생존 스트레스로 눈이 벌겋다. 예전의 게임 규칙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온갖 반칙이 난무할 수도 있다.

자존심. 물론 중요하다. 자아를 떠받치는 정신적 주춧돌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리다가 엉뚱한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자존심을 유예하기로 규칙을 정했다.

로스 컷은 우리말로 ‘손절매’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손절매를 뜻하는데, 주가가 떨어질 때 과감히 팔아 손해를 보더라도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길 기다리다가 오히려 경영의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규칙이다.
"본전 생각을 손절매하고, 남을 치켜세워주어라. 그러면 위험은 피할 수 있다."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본전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본전’ 생각하다 ‘본질’까지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본전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다. 본전은 이해타산으로 얽혀 있는 경제적 가치지만, 본질은 근본과 핵심이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가치다. 본전의 경제적 가치보다 본질이 내포하고 있는 본연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본질은 나목(裸木)처럼 모두 버리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선에 설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빙하기는 어쩌다 재수 없게 찾아온 환경적 위협이 아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첩첩산중 내리막길이다. 올라갈 때는 정상만 보고 가뿐하게 움직였지만, 내려갈 때는 눈보라까지 휘날려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세상이다.
빙하기 세상은 눈과 얼음에 덮인 하얀 세상이다. 튀면 쉽게 눈에 띈다.

성공한 사람들은 최단 거리로 질주해 지금 그 자리에 이르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을 관리해왔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성공이란 위험 관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언제나 최악을 염두에 두자. 방심으로 인한 실패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손절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싸움을 내주고 큰 싸움에서 이기는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더욱 더 내려가보아야 한다. 지혜는, 이겨서 오를 때보다 패배하고 내려갈 때 비로소 얻어지는 법이라고 선현들은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