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이 왜 그렇게나 무한하게 길어 보이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은 희망을 지니고 살고 그러한 희망은 한없이 무한한 것이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므두셀라(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므두셀라는969세까지 살았던 인물로 장수의 상징임-옮긴이)마저 너무 일찍 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여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겪었던 지난 몇 년을 인생의 잣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은 무엇이든 그것을 의미 있게 보이게 하기 때문에 별로 길지 않은 짧은 인생의 추억은 언제나 새롭고 신기해 오랫동안 겪었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나중에 떠올리고 회상하면서 기억 속에서 반복되고 그것이 기억에 새겨진다.

서른여섯 살까지 우리는 활력이라는 면에서 그 활력의 이자로 살아간다. 활력이 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내일이면 다시 생긴다. 하지만 서른여섯이 지난 이후부터는 자신의 자본을 조금씩 파먹기 시작하는 연금수급자의 생활과 같아진다.

사람이 보고 행동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과 정신에 더 적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젊었을 때만 완전히 의식적으로 살며, 노년기에는 반쯤만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즉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덜 의식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대상과 사건이 새롭고 신기하므로 모든 것을 의식한다. 그래서 하루가 헤아릴 수 없이 길게 느껴진다. 우리는 여행을 할 때도 똑같은 일을 경험한다. 한 달 동안의 여행 기간이 집에서 보낸 넉 달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사물이나 주위가 신기하게 느껴지더라도 어린 시절이나 여행할 때 길게 느껴지는 두 시간은 종종 노년기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실제로 ‘더 길어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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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장소/명동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코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한 극한 정오다.
-이상, <날개> 중

이 글에서의 ‘미쓰코시‘는 미쓰코시백화점, 오늘날 명동 신세계백화점을 말한다. 이상은 당대 유명한 모던보이였다고 한다. 그는 돈이 없어도 명동 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낭만을 누렸다.
일제 강점기 때 명동은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로 ‘메이지마치‘라 불렸다. 근처 충무로 역시 일본인 거주지였는데 ‘혼마치‘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명동과 충무로, 을지로 일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상업이 번창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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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인물/최남선

최남선은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썼고, 이광수와 함께 1910년대 2인 문단 시대를 이끌었다. 더불어 조선광문회를 만들어 고전을 간행했고,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쓰기도 했다. 문학, 언론, 역사 연구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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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사건/만민공동회

독립협회가 러시아의 이권 침탈에 대응하여 일으킨 대중 집회. 1896년 미국에서돌아온 서재필과 정동파 관료(친미· 반일 관료)들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진다. 초기 독립협회는 개혁적이고 반일적인 관료들의 모임이었다. 고종의 후원을받아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간행하고, 과거 청나라 사신을 맞는 영은문과 청나라 사신이 숙소로 썼던 모화관을 해체하고 독립문과 독립관을 만들었다. 또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고 있던 고종의 환궁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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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명문장/여자 광복군

우리 여성의 임무가 어찌 집안에서 아해(아이)나 양육하고 밥이나 해주고 길쌈이나 하는 것이겠음니까? (...) 광복군은 남자의 전유물이 않이오. (...) 우리는 우리 혁명을 위하여 또는 광복군의 전도를 위하여 우리 여성 자신의 권리와 임무를 위하여 이 위대한 광복군 사업에 용감히 참가합시다. 그리고 총과 폭탄을 들고 전선에 뛰어 나아가서 우리 여성의 피를 압록 두만강 연안에 홀리며 이 선혈 위에 민족의 자유화가 피고 여성의 평등 열매를 맺게 합시다.

여자 광복군 오광심이 광복군 기관지 <광복>에 밝힌 입대 동기다. 오광심은 일종의 이중혁명론을 주장했다. 1차적으로 일제를 몰아내는 민족 혁명을 취한 후, 2차적으로는 남녀가 절대적으로 평등한 새로운 사회 혁명을 이룩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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