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도 별것 없었던 그 시절이 찬란하다 기억되는 것은 햇빛이 전해 준 따뜻한 생명력 덕분이다.

사사건건 따지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묘한 양가감정이 인다. 이악스럽게 발산하는 에너지에 피로감을 느꼈다가도, 옳고 그름을 한 올 한 올 가려내며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모양새에 나도 모르게 탄복하게 된다.

대부분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신들도 그렇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소속감이랄까. 나만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다가도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 본 덕에 안전장치가 깔려 있을 것만 같은 길로 돌아가게 된다. ‘대부분’이라는 말에서 얻는 동질감이 나에게 안락함을 주는 것이다.

어디선가 옅은 신문지 냄새가 나면 그날의 아버지와 나는 조각난 곳 하나 없이 옹글게 되살아나 덮어 두었던 기억을 들썩인다. 살아남는 기억은 많고 많은 날의 어느 하루였고, 그 흔하디흔한 하루가 결국 단 하나의 특별한 하루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무슨 일에서건, 나는 나만의 마감 기한을 세우는 버릇이 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기한에서 대체로 한두 주쯤 앞선 시기를 자체 마감 기한으로 정하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두 주 앞당겨 일을 모두 다 하려다 보니 촉박해진 시간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종일 나를 다그치게 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버릇인가. 그럼에도 나만의 마감 기한에 맞춰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순간의 쾌감을 느낄 때면 이 몹쓸 버릇의 재등장도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영화를 좋아한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면 좋겠고, 상처받은 연인들의 사랑이 종국에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처절하게 실패한 주인공이 당당히 일어서는 모습도 보고 싶다. 현실을 복사해서 붙여 놓은 듯한 매정한 결말 속에 주인공을 홀로 남겨 두고 나와야 하는 서느런 마무리는 영 마뜩잖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월이 갈수록 특정 인물이나 직업을 지칭할 때 점점 더 격조 높아 보이게 호칭이 달라지는 것 같다.

결국 호칭이란 가까운 가족이나 친인척 간의 호칭은 별 문제가 아니고,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불릴 때는 그 사람의 외형과 풍기는 인상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이게 맞나?’ 자신의 상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늙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점점 약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불편함은 제때 해소해야 살 것 같다.

그래, 난 지금 이걸 꼭 해결해야겠어. 불편한 건 못 참아! 나도 젊었을 땐 이런 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며 외국에서 살기도 하고 세계를 내 집처럼 휩쓸고 다니는 사람도 많단 말이지. 그러니 이런 젊은 사람들은 우주적 사고를 하면서, 좁은 나라 안에 갇혀 사는 우리하고는 영 다른 사고를 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젊은이들의 여러 삶의 형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형편이 못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싶다. 그러니 나는 이제 반성하고 다른 세대의 형태나 사고방식 그 외 다른 것들에 대해서 다시는 간섭할 마음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살면서 내가 저질러온 멍청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이불킥을 하게 되지만, 그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아마도 나이가 많아서 잊었거나 어쩌면 죽고 없는지도 모르고, 나 외에는 나에 대해 관심 가지는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요새 사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분부분 신경써서 관리하고, 온몸의 부위별로 근육도 키워야 하고, 어떤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 운동해줘야 한다는 여러 상식에다 간과 콩팥, 장과 심장, 위장, 폐까지 뭘 먹으면 좋고 혈행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 게 좋다는 것까지 다 알고 실천하려고 하니 사실 자기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일만도 하루해가 다 갈 판이니 어찌 바쁘지 않겠는가?

옛날에는 날씨를 좀 예견할 줄만 알아도 도사 대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만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 대단한 사람으로 봐줬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손 안의 폰 하나로 해결된다. 실시간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도 이것이 더 많은 혼란을 일으키는지, 요새 사람들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아는 만큼 더 많은 질병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제 모든 것은 변했고 다음 세대는 어떤 형태로 살아갈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와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여행을 가면 첫째로 집에서도 잘 못 자는 내가 잠자리가 바뀌니 더 못 자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위장이 좋지 않으니 낯선 음식에 소화도 잘 안 된다.

사람이 어쭙잖은 일로 이렇게 크게 영향을 받는구나 싶었다.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제발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세월이 오래 가고 보면 한때 친했던 사람도 이름이나 얼굴조차 가물가물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인간관계가 상당히 허망하다. 그러니 한때의 관계에 목매지 마라.

이젠 거의 다 정리가 되고 다들 모임 자체를 안 한다. 모두 다 챙겨입고 걸치고 어디 장소로 찾아가고 이런 것들이 귀찮단다. 그러니 아직 원기 충천하고 바쁘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친목모임을 하고 그러면서 사는 게 젊은 시절일 게다.

예전에는 밥을 밖에서 먹더라도 가까운 집에 가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아무도 자기 집을 제공하고 싶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러니 친지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극히 줄어들었는데, 집의 인테리어에 들이는 관심은 또 왜 그렇게 요란한지 알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무렵 자신의 주인공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세 가지 요소로 유머, 친절함, 자기 억제를 들었다. 이 세 가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것이라는 거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는 모순, 자아, 공포 따위는 쓰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구태여 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한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부정적인 요소는 잠시 접어두고, 유머와 친절함, 자기 억제라는 덕목으로 가볍게 날아올라보는 건 어떨까? 심각한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 곰곰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들이다.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남자 종족과 여자 종족은 전혀 다른 종이라고 본다. 그런데 외형이 같은 인간 형태라고 이 둘을 한집에 몰아넣고 같이 살아라 하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를 인식 하고 상호 간에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미리미리 교육을 받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아무도 이런 인식이 없다.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부부간의 예의나 남녀 간 생각의 차이 등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정황을 묘사하느냐 하면 누군가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게 인생이다. 끝에 별게 없다. 심오한 깨달음이 오거나 50년 가까이 같이 살았던 사람과 마지막 인사라도 살갑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허망하게 끝이 나버린다.

그러면 사는 것이 헛되기만 했는가? 어차피 태어났으니 삶은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남자가 내게로 와서 같이 살면서 진객珍客인 아이들도 낳고, 살아가는 터전도 만들고, 사회의 일원으로 주눅들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필요 부분도 남편 덕분에 마련되어 있다.

결혼 생활에는 해피엔딩이 없지만, 인생의 끝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노쇠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왔을 때 인생의 끝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우리가 보기에 지나치게 아끼고 절약하는 게 몸에 배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우리를 보면 아이들은 또 답답한 부분들이 있겠지. 그래도 어머니가 그렇게 아껴 모아서 목돈을 만들었다가 자식들이 필요한 때 쓰라고 주면 답답해한 건 잊어버리고 좋아하기만 한다.

비싼 거라도 지금 나에게 많이 쌓여 있으면 자연히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과 모아둔 재산을 가늠해서 재산이 너무 많은 사람은 각티슈처럼 쓰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볼 만하다.

침대 옆에 둘 협탁을 살 때는 비싸고 번듯한 것을 살 뻔하다가 이제부터 사는 살림살이는 내가 죽고 난 후 아이들이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싸고 가벼운 것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자랑이었던 자개장롱을 버릴 수밖에 없었을 때 마음이 오래 안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노인이 되면 구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살다보면 아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에 내는 세금(어머니는 친구분이 국가에서 주는 노령생계비를 지원받는 걸 시샘하더니 나중에는 세금을 내는 처지가 훨씬 떳떳하다고 말씀하셨다)과 병원비라고. 그러니 아낄 수 있는 곳에서는 아껴야 한다 하셨다.

사우나나 온탕에서 몸을 데우고 냉탕에 들어가면 어디서도 대체할 수가 없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반신욕을 하면서 목을 돌리고,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냉탕에서는 짧지만 수영도 한다. 어쨌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기대로 매일 목욕탕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보니 목욕탕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감지하고, 세상의 민심이 변하는 것도 목욕탕 사우나에서 더 잘 느낀다.

외모를 가꾸고 살기도 참 힘들구나. 대책이 없던 시대에는 늙으면 늙는 대로 사는 줄 알았는데, 늙어도 대책을 잘 세우고 돈을 들이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시대가 되고 보니 선택하기도 간단치가 않다.

세태라는 게 어찌나 빨리 변하는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서울서 직장생활하는 아들 부부가 다가오는 명절에 못 올 일이 생겼다고 연락하면 못 보게 돼서 섭섭하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 잘됐다 싶단다. 가족이어도 항상 같이 살지 않는 이상 완벽한 손님이고, 손님 접대에는 부담이 많이 생긴다.

얼마 전만 해도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 어쩌고 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한해 한해 가면서 양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편 60대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엄마는 자기는 남편에게 음식물쓰레기는 절대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직접 한다며,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아주 현모양처 같아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기는 딸과 며느리에게도 음식물쓰레기는 남자들에게 맡기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내가 그러면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것은 지저분하고 천한 일이라 귀한 남자들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러니 지금은 모든 가치가 혼재되어 있고 오히려 여자들이 더 살기 어려워져가고 있는 것 같다.

목욕의 마지막 코스로 어떤 사람들은 얼굴에다 팩을 하는데, 오이, 들깻가루, 우유, 요구르트, 녹차 가루, 레몬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 자신의 피부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전국 목욕탕에서 흘러나가는 물에 먹어도 좋을 음식물 성분으로 범벅된 오수가 얼마나 될지 심히 우려스럽다.

목욕탕에 가서 씻고 약간의 운동도 하고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개운해진다.

두세 시간 동안 핸드폰이나 다른 매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게 해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고 사람들 안에서 사는 이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다양한 세대를 관찰할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

생각해보면 운동은 고통이고 목욕은 일종의 쾌락이었다. 온탕이나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고 찬물탕에 들어가는 시원함을 어디다 비하겠는가. 이후에 이곳의 헬스장이 폐쇄됐는데도 나는 목욕탕을 계속 다녔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본다.

어느 의사가 말하기를 자세를 항상 긴장 상태로 오래 유지하다보니까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단다. 그러니 지나치게 유난을 떨 필요는 없겠다. 다만 우리는 자세에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편한 자세로 돌아가고 싶어지니까 마음속에서 한 번씩 ‘자세를 꼿꼿하게 한다’라는 주문을 외워두는 게 좋다. 나이는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자세에서 드러난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아무도 널을 뛰지 않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대문을 허물고, 그곳에 새 이층 양옥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그 집에서 70세 무렵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84세가 될 때까지 지내시다가 자식들이 많은 서울로 옮기셨는데, 우리가 새집이라고 인식하던 그 집도 거의 50년 구옥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좋았던 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지만, 그런 날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외에도 유익한 방송이 차고 넘친다. TV처럼 일방적으로 나오는 방송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이런 방송들이 있다는 게 너무 맘에 든다. 문제는 이렇게 유익하고 정성 가득한 채널에는 사람들이 별로 접속하지 않고 별 시답잖은 일회성 연예인 뉴스 같은 데는 조회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가 살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와서 새로운 것들을 다 수용하기는 불가할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기계문명이 발전할 테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해 불가의 상황까지 가게 될 것이다.

제대로 못 먹고 살던 시대에야 부모의 임종 전 병원에 가서 비싼 주사라도 한 대 맞혀 보내드려야 마지막 효도를 다 한 것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죽음은 이미 병원에서 맞닥뜨리는 일이다. 나는 죽을 때가 되면 집에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러려면 이제 아무도 안 볼 때 갑자기 죽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무튼 나는 요즘 유튜브로 세상을 보고 배우고 같이 놀기도 한다.

비단 부부간의 신의만이 의리가 아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면 내 부모의 안부를 묻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까지는 안 하더라도 근황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마땅한 조처를 취하는 게 사람됨의 근본일 터이다.

의리를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유능해야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서로를 돌보는 면에서도 여자들이 유능하다. 알고 보면 의리라면 여자인 것이다.

내가 살아온 동안이 바로 우리나라가 발전되어온 적나라한 세월이어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이 아득하고 마치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으로 이민 온 사람처럼 정체성에 혼란이 올 정도라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들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주문을 외우며 어쨌든 이해하고 수용해보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요새는 뭐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부터 켜본다. 온갖 게 다 있다. 참 무슨 이런 시대가 도래했나 싶다.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가 중요하다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의리에 있다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배움과 방법이 유튜브에 다 있다고 해서 배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이러니 옛날만큼 책이 안 읽힌다. 다 늙은 나도 그런데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을 잘 읽겠나 싶다. 단순히 책을 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게 너무 많아서 남들도 하는 것은 어쨌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이니 조용히 책을 읽고 있을 환경이 못 된다.

나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고 나면 거의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인상 깊은 꿈을 꾼 적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그쪽에 별 관심이 없고 복채를 자주 갖다주지 않으며 이 나이까지 살아온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 탈 없이 살던 사람도 아이들이 진학할 때나 남편의 진급이나 개업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해져서 점집에 가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니, 불확실한 시대의 불안이 우리를 이런 곳으로 이끄나보다. 사람이 살면서 왜 앞날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우리 어머니 세대는 신년이 되면 당연한 수순으로 신년 운수나 토정비결 등을 보러 갔고, 점집들은 이때가 제일 손님이 많아 운수가 대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 사주 봐준 사람들(어머니가 한 곳에만 간 것이 아닐 거라는 뜻)이 했던 말이 틀리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방비를 단단히 한다 하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올 일은 오고야 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그렇다면 미리 알고 전전긍긍할 것도 못 되니 차라리 맘 편하게 내 꿈은 개꿈이려니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거침없고 씩씩하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또한 남녀 불평등의 산 증거인 남편을 쳐부술 수 있는 용감한 전사였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나니 사회정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없이 비겁해져서 남편의 부당한 처신도 감싸안고 내 바운더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만 강해져갔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다.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살아보니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 말했듯이 가족이라 다 좋아 사는 건 아니고, 타인은 어차피 견디어주는 거라고 했다.

글을 쓰면서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또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을 대변하는 글들이야 차고도 넘치지만, 그냥 보통의 주부 노릇을 오랫동안 해온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뭔가 할말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변명합니다.
선처 부탁드립니다.

결국 이 모든 전통이니 가풍이니 하는 것들이 남의 집 딸들 데려다가 자기네 조상 섬긴 것밖에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실감나게 느낀 덕분이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시간이 한정 없이 많을 것 같지만 나는 항상 바쁘다. 저녁에 어떻게 하다보면 그냥 자정이 넘어 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니까 하루가 짧고 밥도 두 끼밖에 못 먹는데도 배는 여전히 나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를 많이 먹고 나면 밥을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데, 젊어서는 그렇게 빼빼하던 나도 지금은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하니 인체라는 게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아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할머니가 되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 이 시기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기 마련인지라 나의 독서 생활 역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젊었을 때는 지지부진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인생에서 중대한 뭔가를 빠뜨렸거나 어딘가에 더 중요한 인생의 알갱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갈등한 시기도 있었다. 하나 중대한 것은 바로 그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일상이 깨어져봐야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지금 나로서 사는 일보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나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