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일을 한지 4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신입 경비원들이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는 주변에 엉거주춤 줄지어 서 있었다. 살짝 늦은 나는 서둘러 배치 사무실로 갔고 밥은 한참을 헤맨 다음 내 이름이 적힌 타일을 겨우 찾아냈다.

나는 오가는 잡담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입들을 자세히 살폈다. 푸른색 경비 근무복 위로 낯선 얼굴이 보이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것도 딱 일주일뿐이고 그 다음부터는 그 얼굴들이 사복을 입고 나타나는 게 더 이상해진다. 신입들 중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은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조셉은 참을성 있고 집중력이 뛰어나며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지만 마침내 낮은웃음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는다. "거짓말했어요." 그가 사과한다. "월 스트리트를 잘 알아요. 거기서 오래 일했거든요."

그 정보는 대단히 흥미로운 퍼즐의 첫 조각이었다. 나는 조셉이 토고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나가 뉴욕이라면 토고는뉴저지죠." 그는 설명한다. 그곳에서 금융쪽 일을 했고 뭔가 극적인 계기로 뉴욕으로 오게 된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행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뉴욕에 온 뒤에는 그가 얼버무리며 넘어가버린 또 다른 우여곡절 끝에 여기 나와 함께 서서 이 파사드를 바라보고 있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여기저기 빈 곳들을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걸로 메운다.

나는 조셉을 창문 쪽으로 데리고 가서 아메리카 전시관의 중정을 내려다본다. 조셉과 나는 지금 월 스트리트 파사드를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서 있는 이 사람과 편안한 유대감이 느껴지고 그 벅찬 마음이 내 판단력을 흐린다. 나는 평소에는 부끄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신념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빠른 말투로 이 일에 내가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토로한다.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사실 내 직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화가 난다. 이렇게 평화적이고 정직한 일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바보 같으며, 심지어 배신 행위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무 바닥과 천 년묵은 예술품에 감사하는 마음, 뭔가를 팔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포스기를 두드리는 등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쪽을 택할 것이다.

포인트는 미술관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사교적인일터다. 두 명의 경비원이 일부러 좁게 만들어놓은 입구 양옆에 상당히 가까이 마주보고 서서 온종일 수다를 떨 수 있다. 물론 전혀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안내도 해야하고 상습 위반자들을 꾸짖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대화에서 내 몫을 다하고자 의욕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리고 서서히 대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날마다 "산타나가 요즘 꽤 괜찮죠?" 같은 말을 건네기 위해 평소보다 야구 뉴스를 더 신경 써서 확인한다. 정치, 음악, 책, 직장 이야기를 나누고 특히 다들 즐겨하는 직장에 관한 불평을 할 때면 약간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바로 그런 불평이야말로 유대감을 형성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중 어느 것도 내 성격 자체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주파수대로 들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고의 대화 요령은 질문, 그중에서도 기나긴 대답이 필요한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건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일단 대답하기 시작하면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내 무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몰도바요? 믿지 못하겠지만 내가 몰도바에 관해 하나도 아는 게 없다는 거 알아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은 내가 몰도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믿는다. 경비원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지식에 난 커다란 구멍들을 잘 참아낸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이미 튼 셈이다.

그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예술과 거리가 먼 수십 명의 동료들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고, 축하하고, 웃고, 공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등을 툭 치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긍지 높은 경비원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내가 경비원 근무복 아래 비밀스러운 자아를 숨겨오고 있었던 것일까? 흠, 물론이다. 경비원이라면 누구라도 어두운 푸른색 근무복 아래 슬쩍 숨겨둔 비밀스러운 자아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다른 경비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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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명문장/언론자유수호선언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1.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1.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 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이 발표한 언론자유선언이다. 1972년 유신 체제 이후 박정희 정권은 극단적인 독재 정권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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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그로부터 불과 4개월 후, 타라와 나는 형이 누워 있는 침대곁을 번갈아 지키며 잠든 형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를 죽인 채 텔레비전을 봤다.
그런 밤 중 하나였다. 늦은 밤, 크리스타 형수와 미아, 타라 그리고 내가 형을 돌보고 있었다. 형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말이다. 배경 중간쯤 교회가 있고 그 뒤로 항구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아스라한 지평선까지 굽이쳐 펼쳐진다. 화면 앞쪽에는 큰 낫으로 곡물을 거두는 남자들과그것을 한데 묶느라 허리를 굽힌 여자가 보인다. 맨 앞쪽 구석에는 일을 하다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 명의 농부들이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애정을 담아 묘사되어 있다.

브뤼헐의 이 명작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소작농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평생 노동을 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휴식을 취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피터르 브뤼헐은 일부러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의 맨 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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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학문•철학/3S정책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문화 정책, 스크린(screen, 영화), 스포츠(sport), 섹스(sex)를 통칭하여 3S라고 부른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과 정반대의 문화 통치 전략을 구사한다. 박정희 정권기, 특히 유신 정권기에는 문화적 박해가 대단했다. 당시 유행하던 남성의 장발과 여성의 미니스커트를 규제했고, 노래 가사부터 영화 장면까지 검열을 자행했다. 길 가던 남자들을 잡아서 현장에서 가위로 머리를 자르거나자를 들고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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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가 "쇼"라고 부르는 이런 특별 전시회에서 근무하는 것을 대부분의 동료들은 꺼린다. "너무 서커스 같아." 누군가가 투덜거린다. 쇼를 경비한다는 것은 서로를 밀치거나 구시렁대면서 몰려드는 끝없는 관람객 무리를 관리하는 것인데 이건 대개 위엄 있는 분위기에 익숙한 B구역 경비원들에게는 악몽 같은이야기다. 나는 예외다. 특별 전시회에서 나는 전시실 안의 에너지, 작품이 종종 기대 이상이거나 혼란스러울 때 나오는 반응들,
"청색 시대!"라고 외치듯 속삭이는 사람들에게서 뭔가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다. 나는 B구역 대장에게 내키는 만큼 나를 특별전에 배치해달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그는 수락했고 그렇게 4개월 남짓한 기간에 200시간은 거뜬히 피카소의 드넓은 머릿속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몇 주 후 나는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근무 구역이 배정되기를 기다리며 《뉴욕타임스》 신문을 펼쳤고 파리에서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레제, 모딜리아니 작품이 도난당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다. 어느 도둑이 야밤에 혼자 창문을 깨고 침입해 총액 1억 달러 상당의 근대 예술품들을 챙겨 파리 16구로 사라져버렸다. 이 사건은 겉모습으로는 어떤 혼란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미술관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재차 상기시켜준다. 이곳은 자물쇠가 달린 금고가 아니다.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 한 미술관은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모든 약점과 속임수에 맞서야 한다.

사람들은 화려한 옷차림의 바빠 보이는 사람들한테는 취하지 않을 태도로 경비원들을 대한다. 전시가 마음에 들 때는 곁으로 다가오며 우리가 평생 이토록 아름다운 걸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전시가 예술인 척하는 콧대 높은 헛소리라고 생각할 때는 ‘당신과 나 빼고 모두가 이 개똥 같은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메시지를 담은 눈빛을 보낸다. 아무래도 이건 유니폼 때문인 것 같다. 유니폼은 우리를 부자에게든 서민에게든 누구에게라도 공감해줄 것 같은 허름한 신사 정도로 보이게 한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관심을 구걸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쓰인 천박한 배지를 옷깃에 달고 있었다면 방문객들은 우리를 업신여겼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술관 경비원들은 그런 배지 따위와는 정반대다. 우리가 침묵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다가가서 방해해도 괜찮다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관람객이 미동도 하지 않는 조지아의 얼굴 사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갖다 대고 있다.
목격하는 순간에는 이것이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카메라 뒤의 남자는 그가 현실을 더 꽉 움켜쥐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손 틈새로 금세 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 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 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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