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문화/탕평
영조의 통치이념 3대 원칙인 ‘계붕당’은 붕당을 경계한다, ’계사치‘는 사치를 경계한다, ’계숭음‘은 음주를 경계한다는 의미다.

특정 붕당에 권력이 집중됐고 영조는 이를 해결하고자 본격적으로 탕평책을 추진한다. 집권 초기, 소론이 주도한 이인좌의 난을 겪은 후 영조의 의지는 한층 강화된다. 영조는 ‘계붕당, 계사치, 계승음‘을 통치 이념 3대 원칙으로 여겼는데 무엇보다 붕당 정치를 경계했다. 영조의 탕평책을 보통 ‘완론 탕평‘이라 부르는데, 각 붕당의 온건파들을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조의 탕평책을 ‘준론 탕평‘이라 한다. 영조 집권 말기 탕평파가 형성되는 등 붕당 정치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작용을 낳았고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벽파, 시파 같은 새로운 파당 정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조는 각 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인사들을 등용하여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쟁명하며 합의를 구하고 본인의 의사를 관철해가는 더욱 적극적인 탕평책을 추진한다. 영조보다 정조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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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성장시키는 값은 먼 미래에나 만나볼 수 있는100이 아니라 첫걸음을 뗄 때 매겨지는 1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무엇보다 오류의 문화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여러분의 인생에 다채로운 경험이 담기는 것은 물론,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붐비는 이점까지 누리게 됩니다.
왜냐고요. 자신의 실패와 오류에 관대해질 때 우리는 타인의 실패에 대해서도 넉넉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 큰일을 해내는 꽃 같은 당신 곁에 나비와 벌들이 날아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랍니다.

일기를 쓴 지 20년 차로서 말씀드리면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기록하잖아요. 그럼 ‘큰일을 잘해내는 나‘만큼‘소소한 일에 집중하는 나‘도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두고도 차별을 하고 있어요. 제자들을 보면서도 이 점을 많이 느껴요. 말로는 자존감, 자존감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나를 차별하고 마음에 안 드는 나는 배척하는 식으로 ‘자존감의 평균‘을 깎아먹고 있더라고요.

해명하고 싶은 욕구의 방향을 살짝 틀어서 그들의 속내를 읽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쟤는 왜 나에게 저런 문자를 보냈을까?" 또는 "나를 응원한다고 해놓고 왜 지금은 내 성과를 후려치는 거지?"라는 질문의 답을 알려면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봐야 해요.
상대는 내가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본심을 숨기고 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되는거예요.

이미 지나간 일이 나에게 엄청난 후회를 남겼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든 경험은 교훈을남기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앞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임을 이때 또 한번 뼈아프게 깨달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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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유적•유물/도자기
임진왜란 때 일본은 조선을 파괴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하고, 많은 조선인을 해치고 여러 분야의 장인을 붙잡아 갔는데 그 중 특히 조선의 도공들을 대거 끌고갔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도공 이삼평, 뛰어난 솜씨로 일본 아리타 도자기의 시조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도공을 대거 끌고 간다. 인질로 끌려간 이삼평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고령토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아리타 자기를 비롯한 독자적인 도자기 발전을 이룬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매번 도자기를 수입하던 유럽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델프트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등 뒤늦게 제작에 성공하여 독보적인 자기 생산을이루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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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와 같은 슬로 스타터가 있다면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역사적주체(historian)‘라는 것을요. 역사라고 하면 흔히 거창한 왕조나 세계적인 사건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개인 한 명 한 명도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존재들이에요.

그러니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네. 난 애초에 안 될놈이다‘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역사는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으로 찍힌 ‘점‘이 아닌, 시간으로 이어진 ‘선‘이거든요.
과거의 나는 실수했을 수도 있고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 만나보지 않은 미래의 나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선의 감각‘이라고 부릅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말에 취해 ‘그래, 이제부터 변하면 돼.‘ 하는 마음을 갖는 건 좋아요. 그런데 왜 변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변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은 바로 거기에서 나오거든요.

어려운 말로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라고 하는데요. 우리는 나를 위해 변하겠다는 내재적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외부에서 오는 달콤한 보상들도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그건 ‘보너스일 뿐이에요.
외부의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 변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짝이는 힘을 잃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들어섰을 때 제일 중요한 건 그 선택 너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입니다. 실패로 인해 괴로워하는 얼굴이 먼저 떠올랐는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희망을 보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그 이미지는 우리의 감정을 바꿀 거고요, 감정이 달라지면 생각과 행동의 방향까지 달라질 거예요.
희망과 용기의 단서를 떠올렸다면 분명히 경로를 이탈했음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왠지 모를 반가움이 들 겁니다. 왜일까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잖아요. 이참에 진짜로 원하는 도전을 해보자며 용기를 낼 만한 여건이 주어진 거잖아요. 그러니 저는 부디 여러분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경로를 이탈했다면 희망과 용기의 단서를 떠올렸으면 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판타지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무노동‘으로 발견하는 게 판타지예요.

검색하지 말고 ‘사색‘하세요.
정적인 사색(나에 대한 기록)과 동적인 사색(우왕좌왕 비용을 적극적으로 허락)

단, 여기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눈꺼풀이 자동으로 떠질 만큼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매 순간, 행복하거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성공한 분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한 과정을 잘 참고 인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분들은 그업황의 희로애락을 잘 견디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지,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프레젠테이션만 잘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에요.

더 큰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면요.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허무한 이유는 뭘까요. 뚜렷한 목적 없이 목표만 가지고 달려들었기 때문이에요. 목표는 성취하면 종료되는 ‘단일한 사건‘이지만, 목적은 평생을 두고 좇아가야 하는 ‘방향성‘이거든요.

하지만 모든 결실에는 그만큼의 값어치가 매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시험에서 ‘대박‘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노력한 만큼의 합당한 가치를 인정받아 온전한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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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장소/경복궁(조선왕조의 정궁)
조선시대에 가장 먼저 세워진 궁궐이니 역사도 깊겠죠~
처음 지어진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지금의 경복궁은 흥선대원군때 다시 지어진 것이랍니다.
정도전은 전각 하나하나에 자신의 소망을 담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경복궁은 이성계의 의지와 정도전의 노력으로 탄생한 공간이지만, 세종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종만이 유일하게 평생 경복궁에서 성실하게 집무하면서 유교적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국왕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집무를 봤다.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광해군은 다른 궁궐을 열심히 복원했지만 경복궁 재건은 꺼리는 등 오랜 기간 버림받았다.
경복궁은 일제 강점기 때 또 다른 수난에 직면한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을 가로막는 형태로 지어졌고 편의에 따라 일부 건물을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광복50주년 기념으로 총독부 건물이 철거됐고 이보다 앞서 경복궁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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